[Ce:포커스] “OTT는 되고 방송은 안 된다”…K콘텐츠 발목 잡는 뒤처진 심의
입력 2025. 11.17. 10:12:00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청소년과 청년층의 사실상 ‘1번 미디어’로 자리 잡은 시대, 여전히 방송만 옥죄는 심의 기준이 도마 위에 올랐다. OTT에서는 자유롭게 등장하는 흡연·음주·폭력·협찬 등이 방송에서는 금지되거나 제재 대상이 되면서 “OTT는 되는데 방송은 안 된다”는 모순이 심각한 형평성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디어 소비 지형이 완전히 바뀐 지금, 방송에만 적용되는 심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K콘텐츠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OTT 드라마의 94.4%에 ‘흡연 장면’…10대 OTT 이용률은 97.7%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국내 주요 OTT 7개사의 인기 드라마 상위권 작품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드라마 18편 중 17편(94.4%)에 흡연 장면이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80%에서 매년 등락을 거듭하던 비율은 2024년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OTT 영화 역시 40.6%가 흡연 장면을 포함해 점차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는 세대가 10대와 20대라는 점이다. 조사에 따르면 10대의 OTT 이용률은 97.7%, 20대는 97.5%로 거의 전국민 수준이다. OTT가 청소년의 주요 미디어 소비 창구가 된 상황에서 ‘교복 흡연’ ‘전자담배 사용’ 등 장면이 걸러지지 않은 채 노출되고 있지만 현재 이와 관련한 정부 차원의 관리·규제는 사실상 전무하다.

반면 방송에서는 흡연 장면이 엄격하게 제한되며 청소년 시간대에는 사실상 금지에 가깝다. 이 같은 불균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라는 비판을 부르고 있다.

협찬 브랜드는 OTT에선 반복 노출, 방송에서는 제재

OTT에서 협찬(PPL)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반복 노출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OTT는 글로벌 자본과 제작사의 선택을 받아 자유로운 협찬 구조를 구축하며 높은 제작비와 빠른 기획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과도한 광고효과라는 다소 모호한 기준이 적용되며 ▲제품이 ‘반복적으로’ 노출됐는지 ▲소비자가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지 ▲화면 점유율이 ‘과도’한지 등 수많은 해석 여지가 심사위원들마다 다르게 판단된다.

그 결과 광고 효과를 의도하지 않아도 제재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방송 제작 현장에서는 “도대체 어느 선까지 허용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콘텐츠 자체보다 심의를 먼저 고려하는 ‘기획 단계의 자기검열’이 일상화 됐다.

학계·업계 “방송만 아날로그식 심의…현실과 동떨어져 경쟁력 뒤처져”

최근 열린 한국방송학회 2025 가을철 정기학술대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는 핵심 이슈로 다뤄졌다. 발제를 맡은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은 “시청 환경이 인터넷 기반으로 완전히 재편됐는데 방송에서만 20년 전 기준의 엄격한 심의가 적용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방송심의 규정 중 ‘과도하게’ ‘반복적으로’ ‘구체적으로’ 등 주관적 해석이 가능한 표현이 너무 많고,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제작사들이 심의를 피하기 위해 과도하게 자제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OTT와 방송 간 경쟁이 심화된 지금, 방송만 옥죄는 규제는 K드라마와 예능의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 소장은 심의체계 전환의 방향으로 자율 규제 중심 구조, 이용자 선택권 확대, 매체 특성에 따른 차등 심의, OTT·TV를 아우르는 확장된 미디어 법제를 제안했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



전문가들 “심의 완화 필요하지만 청소년 보호는 유지해야”

학술대회 토론에서도 규제 완화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했지만 무조건적 완화가 답은 아니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명희 배재대 교수는 “공정성은 보도뿐 아니라 아동·청소년 보호, 광고 심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작동한다”라며 “일부 사례 때문에 전체 조항을 없애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영국 오프콤처럼 채널 특성에 맞춘 ‘핀셋형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원 한양대 교수는 “젊은 세대는 이미 광고와 콘텐츠를 구분해 비판적으로 소비할 능력이 있다”라고 말하며 OTT와 방송 간 ‘규제 격차’가 같은 유로 서비스 소비자에게 정당한 소비 제한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다만 청소년 대상 콘텐츠에서는 음주·흡연 장면에 대한 보호 장치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J ENM 김연희 부장은 현업의 고충을 짚었다. 김 부장은 “방송은 ‘과도한 노출’이라는 모호한 기준 때문에 법적 기준 안에서도 제재를 받을 때가 있다”라며 “단 한 명의 민원으로도 심의가 개시되는 현 시스템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심의가 허위정보, 불법·음란, 폭력 등 명확한 기준에 집중해야 함을 역설했다.

규제 사각지대 OTT VS 과한 규제의 방송…이제는 ‘균형’ 잡을 때

OTT는 사실상 흡연·음주·협찬·폭력 등 대부분의 표현 규제에서 자유롭고, 방송은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에 묶여 경쟁력을 잃고 있다. 그렇다고 OTT를 그대로 놔둘 수도 없다. 청소년 보호 차원에서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매체의 특성을 반영하되 규제는 명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방송만 규제하고 OTT는 방치하는 구조에서는 방송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 제작비와 제작 환경의 격차 확대, 청소년 보호 정책의 실제 무력화라는 삼중의 문제가 발생한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확장된 미디어 법제’, 심의 방향을 ‘통제’에서 ‘신뢰’로 전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그리고 시청자의 선택권을 기반으로 한 자율 규제 모델 구축이 요구되고 있다.

OTT에서는 되고, 방송에서는 안 되는 이 기형적인 규제가 계속되는 한, 한국 미디어 산업은 지금의 속도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규제의 목적을 다시 세우고, 현실과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반영한 ‘균형 있는 심의 체계’로 재편해야 할 때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방송 캡처, 한국케이블TV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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