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VS.] '매드해터'·'프라테르니테', 모자와 깃발 사이에 선 두 소년의 혁명
- 입력 2025. 11.18. 14:02:49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1851년 런던과 1792년 파리. 같은 극장의 위아래층에서 시대도 배경도 다른 두 소년의 혁명이 동시에 울려 퍼진다.
'매드해터'-'프라테르니테'
뮤지컬 '매드해터'와 '프라테르니테'가 링크아트센터드림 2관과 3관에서 비슷한 시기에 막을 올렸다. 굴뚝청소부 소년, 2인극, 혁명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졌지만 각 작품이 선택한 방식과 톤은 극명하게 다르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를, 다른 하나는 연대의 힘을 이야기한다. 같은 극장의 위아래층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는 혁명의 이야기 속에서, 관객은 두 소년의 혁명이 남긴 성장과 선택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 '매드해터', 자유를 외치는 미친 모자장수
뮤지컬 '매드해터 : 미친 모자장수 이야기'(이하 뮤지컬 '매드해터')는 동화 '이상한 나라 앨리스' 속 캐릭터인 미친 모자장수의 기원을 두 소년의 여정으로 풀어나간다.
굴뚝 청소부인 14살 소년 노아는 몸이 커졌다는 이유로 한순간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후 노아는 헥터의 모자 공장에 취직하게 되고, 친구 조슬린을 만난다. 하지만 노아는 펠트 제작 중 나오는 수은 증기가 직원들의 건강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사장 헥터를 찾아가 개선을 요구하지만 결국 공장에서 쫓겨난다.
회사에서 쫓겨난 노아는 거리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들을 만나게 된다. 노아는 이들과 함께 '정해진 모자'가 아니라 각자가 '쓰고 싶은 모자'를 함께 만들어 팔기 시작하고, 모자는 입소문을 타고 불티나게 팔린다. 하지만 이와 같은 소식이 헥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면서 모자가게는 철거당한다. 더 이상 모자를 팔 수 없게 된 노아는 자신이 꿈꿔온 세계를 다시 그려낼 수 있을까.
'매드해터'는 조명과 세트 연출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확장성이 뛰어나 2인극임에도 무대가 결코 비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장면 전환마다 배우들이 직접 세트를 움직이는 방식은 단순한 무대 장치가 아니라, 캐릭터가 직접 노동하며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연출이 된다. 이로 인해 작품은 작은 무대 안에서도 생동감을 잃지 않고, 이 작품이 말하려는 메시지 중 하나인 끝없는 노동의 굴레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의 넘버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캐릭터를 모티브로 했듯 전반적으로 밝고 동화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만, 실제 서사는 가볍지 않다. 수은 중독, 노동 착취, 생존을 위한 투쟁처럼 무거운 논제를 다루는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음악적 톤은 역설적인 매력으로 몰입감을 더한다. 현실의 어두움을 그대로 비추기보다 소년이 바라본 세계의 순수함을 통해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메시지가 많이 담긴 만큼 '매드해터'는 1회 관람만으로는 채 다 읽히지 않는 결이 있는 작품이다. 두 번째 관람까지 이어간 결과, 같은 장면이라도 배우에 따라 전혀 다른 정서와 리듬이 만들어졌다. 이번 시즌에서 본 네 명의 배우는 각기 다른 결의 노아와 조슬린을 만들어냈다. 노아를 연기한 이한솔은 현실의 잔혹함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밝음을 잃지 않으려는 소년의 결을 세밀하게 살려냈고, 이봉준은 순수함에서 비롯된 단단한 힘을 보여주며 다른 방향의 캐릭터를 구현했다. 조슬린 역에서는 박영수가 부드럽고 따뜻한 성향을 앞세워 친구로서의 모습을 강화했다면, 송유택은 틱틱거리면서도 챙겨주는 듯한 매력으로 까칠하면서도 따뜻한 조슬린을 만들었다.
작품에서 '모자'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다. 극 중에서 말하듯 모자는 곧 신분, 생존 방식, 사회 구조를 상징하는 표식이다. 누군가는 정해진 모자를 쓰고 있을 때, 다른 누군가는 모자조차 쓰지 못한 채 착취의 구조 속에 묶여 있다. 노아가 이 굴레를 깨부수고 '쓰고 싶은 모자'를 만들기 시작하는 순간, 그는 사회 전체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혁명가가 됐다. 하지만 그 순수함은 결국 짓밟히게 된다.
조슬린이 모자장수 이야기를 반복하는 연출은 이 굴레가 여전히 현재까지 반복되고 있다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최근 청년 과로사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듯, 현실에서도 정당함을 외치는 이들이 짓밟히는 구조는 사라지지 않았다. '매드해터'는 반복되는 사회적 비극을 동화적 외피 속에 담아낸, 놀라울 만큼 현실적인 작품이다.
◆ '프라테르니테', 혁명 속에서 성장한 소년과 어른
뮤지컬 '프라테르니테'는 18세기 말 프랑스, 한때 '형제'였지만 본격적인 혁명 이후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두 남자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변호사 빅토르의 저택에 그의 연설에 감명 받았던 굴뚝청소부 소년 제르베가 찾아온다. 빅토르는 제르베를 자신의 목표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이를 모르는 제르베는 자신의 친구를 위해 열심히 선두에 서서 혁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빅토르는 제르베와 함께 하며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점점 변화하게 되고, 부르주아 동료들과도 이념에서의 작은 충돌을 빚게 된다. 결국 정치적 이념의 풍랑 속에서 빅토르와 제르베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다른 길을 선택하고, 몇 년 뒤 국회의원이 된 빅토르를 찾아온 제르베에게 숨겨져 있던 목표를 털어놓는다.
'프라테르니테'에서는 조명 연출이 돋보인다. '혁명'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는 만큼 두 인물이 다수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잦은데, 그때마다 조명이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준다. 무대 위 한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조명은 배우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혁명의 온도가 가장 뜨겁게 끓어오르는 순간마다 조명이 감정의 축을 만들어주는 데에 큰 몫을 더해준다.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는 이 작품의 관객 소통형 구성이다. 관객은 때로는 굴뚝청소부의 친구가 되고, 때로는 부르주아가 되며, 어떤 때는 함께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나가는 민중이 된다. 이로 인해 배우들은 관객의 눈을 직접 바라보며 말을 건네는데, 그 순간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흐려지며 몰입도가 확연히 높아진다.
넘버는 이 작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동일한 선율을 응용해 만든 곡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그 반복이 오히려 장면의 감정선을 견고하게 쌓아간다. 각 장면의 온도에 맞게 변주된 편곡 덕분에 관객들은 극의 흐름에 따라 더욱 깊이 몰입하게 된다. 또한 두 인물이 서로의 가사를 주고받는 넘버들이 빅토르와 제르베 사이에서 쌓여가는 연대의 결이나 갈등의 흐름을 음악적으로 잘 풀어냈다.
또한 '프라테르니테'는 분명 뮤지컬이지만 그 안에 강한 연극적 리듬이 자리한다. 두 사람이 관객을 향해 연설하듯 외치는 장면이 많고, 장면의 중심이 말에 실린 에너지로 굴러가는 경우가 많다. 극 배우들이 가진 발성·호흡·대사 텐션의 강점이 유난히 빛나는 작품이다. 이로 인해 노래 뿐만 아니라 연기의 결을 세밀하게 보고 싶은 관객에게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프라테르니테'는 두 배우의 연기에서 작품의 핵심 정서가 가장 진하게 드러났다. 먼저 제르베 역의 김기택은 초반부부터 밝고 생기 있는 에너지로 관객을 단번에 설득했다. 웃으며 내뱉는 말 한마디, 무대 위를 종종거리며 움직이는 작은 제스처들이 빅토르의 변화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후반부에 이르러 감정이 고조된 장면에서는 소년이 혁명의 한가운데서 성장해버린 순간이 고스란히 드러나 제르베의 서사를 섬세하게 완성시켰다.
빅토르 역의 안재영은 초반부터 선생님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제르베를 바라볼 때 문득 새어 나오는 미소 같은 작은 결들이 시시각각 드러나 빅토르의 내면이 관객에게 서서히 드러났고, 배우 개인이 만든 디테일은 빅토르의 캐릭터를 더욱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두 배우가 '여신님이 보고 계셔', '히스토리 보이즈', '보이즈 인 더 밴드'에 이어 네 번째로 함께 호흡한다는 점도 무대 위의 케미를 완성하는 중요한 축으로 작용했다.
결국 '프라테르니테'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함께 목소리를 내고 연대할 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 이 작품은 연대의 힘이 어떻게 세계를 바꾸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혁명의 끝에서 마주하는 빅토르의 선택은 그의 개인적 성공이 아닌, 모두가 꿈꾸던 자유를 향한 연대의 결과로 작용한다.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질문을 던진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홍컴퍼니, 엠비제트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