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이 작품?" 재연 가속화, 대학로 공연의 새로운 고민 [Ce:포커스]
- 입력 2025. 11.18. 16:35:20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최근 대학로 거리에서는 익숙한 포스터를 다시 마주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이로 인해 '작년에 봤던 작품이 벌써?'라는 관객들의 반응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올해 뮤지컬 '등등곡', '시지프스', '이터니티',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 등 작품이 1년 만에 돌아왔다. 대학로 공연의 재연 주기가 눈에 띄게 짧아지고 있는 것.
보통 연극·뮤지컬들은 2~3년 주기로 돌아오지만, 최근에는 1년 혹은 반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로 전체가 '재연 가속화'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빠른 제작비 회수…안정적인 재연이 답
"다른 작품 올리려다가 엎어진 거 아니야?"
예상보다 빠른 주기로 작품이 돌아올 경우, 다수의 관객들은 이와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작품의 재연이 빠르게 돌아오면 최근에 올렸던 작품을 급하게 다시 빠르게 올려 메꾸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항상 나오게 된다.
업계에서는 재연 주기가 빨라진 핵심 원인으로 '안정성'을 꼽았다. 최근 제작비 부담이 커지면서 제작사들은 리스크가 낮은 콘텐츠를 다시 올리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
먼저 초연 작품은 재연 작품보다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세트, 소품, 조명 플롯 등 모든 구성을 아예 새롭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초기 설계 비용'으로 인해 수익을 얻기 더 어려운 구조가 된다. 또한 초연은 마케팅에도 더 많은 비용도 크게 들여야 한다. 재연에 비해 시장 반응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공격적으로 홍보를 진행해야 한다.
이 가운데 관객층의 소비 패턴도 빠른 재연의 원인이 된다. 하나의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는 일명 '회전문 관객'들이 많은 대학로 특성상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은 재연에서도 더욱 안정적으로 흥행이 보증된다. 출연 배우나 작품 자체에 애정을 가지고 작품을 소비하는 관객들이 늘어나면서 재연의 수요가 보장되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배경에 암묵적인 '이월 정산 구조'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한 관계자는 "출연 배우들의 개런티는 비교적 잘 지켜지지만, 스태프 분야는 사정이 다르다"며 "실제로 일부 공연에서는 개런티의 100%가 지급되지 못하고, 70~80%만 먼저 지급한 뒤 나머지는 '재연 시 정산하겠다'며 이월하는 방식이 관행처럼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결국 재연을 올려야 정산이 완료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제작사 입장에서는 빠르게 재연을 진행할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 재연 가속화…떨어지는 작품 가치, 높아지는 관객 피로도
하지만 재연 주기가 짧아지면서 가장 먼저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 됐다. 예전에는 2~3년을 기다려야 볼 수 있기에 기대감이 존재했지만, 이제는 공연들이 빠르게 돌아오면서 반가움이 사라졌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관객 A씨는 "재연이 언제 올라올지 몰라서 열심히 봤는데, 생각보다 금방 오게 되니 바보가 된 기분"이라고 털어놓았다.
또한 같은 작품을 빠르게 반복해 올리면 연출이나 구성에 충분한 보완이 이루어지기 어려워진다. 이에 관객 B씨는 "작년에 본 공연보다 올해 재연을 덜 신경 쓴 것 같았다"며 오히려 작품 퀄리티가 떨어지고 가치가 훼손되는 느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특히 다수가 입을 모아 얘기했던 것은 배우 인기에 의존해 재연을 반복하는 구조에 대한 불만이었다. A씨는 "가끔 잘 만들어진 작품이 아닌데, 배우 인기로 흥행해 다시 올라온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결국 작품의 완성도보다 티켓 파워가 있는 캐스팅에 의존해 단기간 재연을 반복하는 구조 자체에 관객들은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셈이다.
◆ 제작사·관객, 모두가 만족하는 재연 올리려면?
결국 빠른 재연 주기 속에서도 제작사와 관객 모두가 만족하고, 작품의 가치가 오를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제작사 차원에서는 작품의 완성도를 충분히 보완한 후 재연에 나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재연은 초연 관객의 피드백을 찾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언급됐던 보완점을 쉽게 분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표면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이 이뤄져야 작품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제작사들은 관객들이 즐길만한 다양한 부가 콘텐츠도 고려할 수 있다.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더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전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학로 전반에서 창작 초연과 재연의 적절한 비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꾸준히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익과 관객 확보, 작품성 유지라는 목표를 모두 달성해야 하는 바, 한쪽에 집중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초연과 재연이 상호 보완되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나인스토리,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오차드뮤지컬컴퍼니, 알앤디웍스, 셀럽미디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