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죽였다' 이유미의 외유내강[인터뷰]
- 입력 2025. 11.19. 12:34:18
-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배우 이유미가 '당신이 죽였다'를 통해 폭넓은 스펙트럼과 연기 내공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데뷔 17년 차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앞으로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유미다.
이유미
지난 7일 공개된 '당신이 죽였다'는 죽거나 죽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살인을 결심한 두 여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공개 2주차에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며, 7,800,000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국내외에서 인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극 중 이유미는 한때 촉망받는 동화 작가였지만, 끔찍한 폭력의 수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조희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내가 감히 피해자 입장을 완벽히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이유미는 이정림 감독이 건넨 자필 손편지를 받고 출연을 결심했다.
"희수라는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 실제 피해자분들이 계시니까 내가 감히 연기적으로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이 자필로 시를 써서 보내주셨는데 '유미야 해낼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감독님께서 제가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내적으로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셨다더라. 희수와 그 부분이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또 희수의 원래 색이 얼마나 강했을지를 알고, 무채색이 됐을 때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를 느꼈다. 그런 점들이 희수의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이유미는 '희수는 왜 도망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캐릭터에 접근했다. 특히 희수를 '무채색의 인물'이라고 해석하며 섬세한 감정선을 쌓아갔다.
"희수가 진표(장승조)와 결혼을 하게 된 이유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말하면 한 번은 믿을 수 있다. 그런데 반복되면서 오는 혼돈들이 컸다. 그 안에서 도망치려고도 해봤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을 텐데 왜 노진표의 손에 가로막혔는지 생각해 봤다. 시나리오에도 어느 정도 나와 있었지만, 그 안에서 더 많은 상상을 해봤는데 결국 희수는 정말 갇혀있다고 생각했다. 노진표라는 사람과 그 집이라는 감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무기력한 사람이 되지 않았나. 희수는 무채색의 느낌이었다. 이전에 다양한 색이 있는 친구였다면 지금은 다 빠진 모습으로 잘 표현되기를 바랐다"
직접적으로 대사를 쏟아내기보다는 표정으로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외적 변화에도 신경 썼다. 이유미는 희수의 공허함을 진실되게 보여주기 위해 체중감량은 물론, 의상과 메이크업까지 세심하게 조정했다.
"촬영 들어갈 때쯤 36kg까지 감량했다. 노진표가 정해놓은 규칙대로 살아온 것뿐이지 내가 먹고 싶어서 무언가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까 외적으로 할 수 있는 표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장도 푸석하게 하고 촬영할 때 립밤도 안 발랐다. 희수가 진표의 집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얼마나 공허한지에 대해 내가 진짜 이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진실되게 표현하려고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잘 맞아서 진짜처럼 보였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임했다"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 역할을 연기하는 만큼 심리적인 부담도 컸을 터. 이유미는 본인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현장에서 '이유미'와 '희수'를 명확히 분리하려 노력했다.
"현장에서는 희수라는 캐릭터와 이유미를 분리하려고 애를 썼다. 카메라 밖에서도 희수인 상태로 있다 보면 이유미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분리하는 게 스스로의 건강도 그렇고 희수에게도 그렇고 제일 건강한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평소엔 억지로 분리하려 하지도 않고 굳이 그 상태를 유지하려 하지도 않는 편인데 이번엔 의도적으로 거리두기를 했다"
현장에 상주해 있던 상담 선생님의 도움도 컸다. 덕분에 두려움 없이 마음껏 연기할 수 있었다는 이유미는 악몽 같은 현실을 버텨내는 희수의 복잡한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내며 몰입감을 높였다.
"선생님이 계셔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더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니까 그 안에서 마음껏 표출하고 두려움 없는 상태가 됐던 것 같다"
가정폭력 가해자 노진표를 연기한 장승조와의 연기 호흡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드러내며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평상시의 다정한 선배님의 모습과 연기할 때 간극이 너무 컸다. 그걸 연기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배우로서 너무 존경하는 마음이 들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선배님이 현장에서 합을 맞출 때 항상 제 의견을 먼저 물어봐 주시고 배려해 주셨다. 또 다양한 아이디어를 얘기해주셔서 저는 열심히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후배가 된 느낌이었다"
긴 머리로 등장했던 희수는 마지막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타지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감독님이 희수의 자유로운 모습이 외관적으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희수의 긴머리는 진표가 원했기 때문에 자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머리를 자른다는 게 이제 진표를 끊어낸다는 저만의 의미 부여를 했다. 진표로부터 희수를 해방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후 타지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언어, 문화로 일하는 순간 희수는 본인 그 자체로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이처럼 희수의 새로운 여정과 함께 이유미 또한 배우로서 한층 더 성장하고 단단해졌다.
"희수라는 캐릭터하면서 희수가 단단해지는 과정을 느낀 거 같다. 희수가 가지고 있던 색깔이 다 빠져서 무채색이 됐는데 이 색을 하나하나 본인이 예전과는 또 다른 색으로 만들어가는 느낌으로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을 살인하고 친구의 상처도 보고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또 새로운 색을 얻어가게 되고 단단하게 성장해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저도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 또한 새로운 색깔을 찾고, 그 색이 진해지면서 단단해짐을 느낀 것 같다. 희수를 통해서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스스로 모든 걸 놓아버리는 순간이 올 수 있다. 하지만 비워진 것뿐이지 다시 채워나갈 수 있다는 용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저한테 단단함이라고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런 그의 목표는 궁금함을 유발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란다. 어느덧 데뷔 17년 차에 접어든 이유미는 연기의 즐거움과 부담을 함께 품은 채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것을 다짐했다.
"'오징어 게임' 이후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주연으로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 같다. 아직도 배워나가는 중이지만 한 작품 한 작품 완벽하려고 노력한다. 작품에 대한 재미와 부담이 동등한 것 같다. 부담감이 있어야 잘 해내고 싶은 욕구와 원동력이 생기는 것 같다. 그 좋은 원동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17년이면 고등학생을 키운 건데 와닿지 않지만 내가 이 길을 지키고 있고 잘 걸어가고 있는 스스로가 가끔은 뿌듯하다. 더 나은 연기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할테니 앞으로도 기대해달라"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