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호, '태풍' 속에서 찾은 돌파구[인터뷰]
- 입력 2025. 12.03. 07:00:00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배우 이준호가 '태풍상사'로 원톱 주연으로서 합격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태풍상사' 식구들이 있어 가능했다고 공을 돌렸는데, 이러한 '함께'의 힘은 이준호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이준호
지난 2일 이준호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카페에서 셀럽미디어를 만나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태풍상사'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30일 종영한 '태풍상사'는 1997년 IMF를 배경으로, 직원도, 돈도, 팔 것도 없는 무역회사의 사장이 되어버린 초보 상사맨 '강태풍'의 고군분투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다. 이준호는 흔들림 없는 강단, 돈보다 사람을 우선으로 여기는 온정을 가진 '강태풍' 역을 맡아 청춘의 얼굴을 보여줬다.
이날 이준호는 "준비부터 촬영까지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애정을 많이 쏟은 작품이다. 지금의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여러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돼서 즐거웠고, 태풍이라는 캐릭터를 만나서 행복했던 한 해였다"라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태풍상사'는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던 IMF를 시대적 배경으로 과감히 선택, 직격탄으로 영향을 받은 '태풍상사'의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준호는 "IMF란 이야기 풀어내 보고 싶은 이야기였고, 과거의 그 시절을 겪었던 분들과 그 시절을 전혀 모르는 분들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이야기이고, 그 시절의 낭만과 사랑을 잘 표현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작품을 선택한 결정적 계기는 1부 엔딩이었다고. 이준호는 "1부 엔딩이 강태풍이 아버지를 잃고, 동시다발적으로 IMF 뉴스가 나오는 장면이다. 그 시작이 굉장히 크게 울림이 있었다. 잘 소화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극중 강태풍은 이름처럼 끊임없이 태풍에 휩싸인다. 아버지의 죽음, 한순간에 풍비박산 난 집안, 계속되는 태풍상사의 위기 속에서 그는 인물의 감정에 온몸을 맡긴 채 연기했다.
"13부쯤 표현준한테 장갑을 달라고 하다가 거절당하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소주 마시는 장면이 있어요. 원래는 그런 감정 신이 아니었어요. 눈물을 흘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1부 때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소주 마시는지 생각해 보다가 막상 내가 처해있는 걸 보니까 자연스럽게 감정 연기가 나오더라고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디테일이 있느냐고 묻자, 이준호는 "강태풍의 솔직함"이라고 답했다.
"화가 날 땐 화를 내고, 웃고 싶으면 웃고. 주위에는 잘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에요. 이 사람이 감정 표현에 숨김이 없고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서 (다른 사람들)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성격이지 않을까 했어요. 그래야만 지켜봐 주시는 시청자분들도 응원해 주고, 태풍상사 직원들도 강태풍을 믿게 되는 계기가 될 것 같았거든요. 그런 다채로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작업하고자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이준호는 큰 애정을 쏟아 강태풍을 빚어냈다. 감정 표현이 풍부한 강태풍의 연기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게 어떤 포인트에서 힘을 빼고 줘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또한 '슈박'을 못에 쳐보는 등 장면은 SNS에서 영감을 얻어 아이디어를 내는 등 적극적으로 살을 붙여갔다.
"태풍이는 그래도 될 것 같았어요. 캐릭터가 굉장히 솔직하고 숨기지 않잖아요. 그래서 심각하지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애드리브 던질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편안해졌죠."
1990년대 후반을 재현한 스타일링에도 자신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쿨 이재훈 선배님 머리랑 '미스터큐' 김민종 선배님 헤어스타일을 토대로 재현했다. 의상도 그때 유행했던 가수분들 시안을 찾고, 없으면 제작했다"라며 "은행에 갔는데 그 당시 을지로에서 근무하셨던 분에서 '어쩜 이렇게 똑같이 했냐' 말씀하셔서 뿌듯했다"라고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은 태풍상사가 기회를 잡으면 표현준(무진성)의 방해로 다시 위기에 빠지는 플롯이 반복돼 지루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준호는 이에 대해 " 연기 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방해할 수 있다 생각했다"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표현준과 표박호의 당위성이 뭘까 생각했을 때, 별 이유가 없는 게 당위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태풍상사'가 눈엣가시였던 거죠. 반복되는 플롯이 없잖아 있었다는 게 사실이지만, 반년에서 1년 사이의 시간을 16화에 풀어내다 보니까 커다란 사건들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과 작가님과 얘기했을 때 진짜 빌런은 어떤 인물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 IMF라고 하셨어요. 여러 각도에서 모든 사람의 관점을 녹여내고자 했던 뜻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1990년생인 이준호는 IMF에 대한 자세한 기억은 없다는데, 그는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난다. 부모님과 대화했을 때 '힘들었다'라고 하셨다"라고 운을 뗐다.
"부모님께서는 'IMF라는 걸 처음 겪었기 때문에 어찌할지 몰라 하면서도 모두가 이겨내려고 노력했던 시기'라고 말씀하셨어요. 오히려 멋모를 때 잘 해낼 수 있는 게 있잖아요. 그 시절 부모님의 이야기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정신이 그런 지점이었겠구나 알게 됐고, 그러한 것들을 토대로 IMF를 공부하고 연기했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어느 때나 그런 위기 속에 있는데, 결국 이겨낼 힘은 옆 사람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오는구나 알게 된 계기였어요."
그 시절의 낭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정'이라고 답했다. 그는 "부모님 두 분 다 맞벌이하셔서, 어렸을 때 혼자 있거나 누나랑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때는 앞집, 아랫집 이웃 간의 정이 많아서 어머님들한테 (아이들을) 편히 맡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IMF 이후에도 다양한 어려움이 사회를 덮쳐왔다. 그 속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이준호는 '태풍상사'를 통해 '함께'의 힘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태풍이가 갑자기 모든 걸 잃게 되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미선과 태풍상사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또 아버지의 추억들이 있죠. 결국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주위에 누가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태풍상사'가 저 혼자 이끌어가는 극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도 상사에 함께 있는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함께였기 때문에 해피엔딩을 얻을 수 있었죠. 시청자분들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혼자가 아니다', '안전한 울타리가 있다'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이준호는 '태풍상사'가 자신에게 남긴 의미에 대해 "한 꺼풀 저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연기할 때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됐기 때문이라는데, 그는 "그냥 솔직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제 부족한 점과 장점을 되돌아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 인물이 가진 성격 때문인 것 같다"라고 부연했다.
시청률 두 자릿수가 될 듯 말 듯 애태우던 시청률은 마지막 화가 돼서야 10%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와 관련해 이준호는 "드디어 넘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라며 후련함을 표했다.
"사람인지라 당연히 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죠. 시청률 상관없이 우리 메시지를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을 더 많은 분이 보시면서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끝까지 언제 넘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는 10%를 넘어서 뿌듯했어요."
이로써 이준호는 제대 이후 선보인 '옷소매 붉은 끝동' '킹더랜드' '태풍상사' 모두 시청률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3연타를 쳤다. 군대가 이준호에게 전환점이 된 모양새다.
"군복무를 하면서 20대와 30대가 나뉘었어요. 그전에는 악착같이 무언가 이루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면, 이후에는 조금씩 내려놓고 여유를 갖고 싶었어요. 또 그게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 갖춰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했어요. 군복무 마치고 했던 작품 모두 큰 사랑 받은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감사드리죠. 내년에도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더 생각하는 마음이 유연해졌으면 좋겠어요."
이준호는 이 기세를 몰아서 오는 26일 넷플리스 '캐셔로' 공개를 앞두고 있다. 그는 "시청률 많이 나온 작품이 있으니까, (시청률이) 없는 걸 하는 것도 좋다고 하더라. 근데 웬걸. 이건 성적이 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킹더랜드'도 넷플릭스 순위가 잘 나와서 많은 사랑 받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 '캐셔로'는 완전 넷플릭스 시리즈니까 어떻게 보여질지, 전 세계에서 공감해 주실지 궁금증이 있어요. 1등을 바라는 게 아니고 제가 하는 연기와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많이 보는 거랑 1등이랑) 똑같은 말이기는 한데, 우리가 K-히어로라는 문화 보여주는 입장이니까 많이 보는 게 좋겠더라고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보니까 기대하고 있어요."
연말을 맞이해 2025년이 어떤 해였냐고 묻자, 이준호는 '태풍 같은 한 해'라며 "저에게 있어서 새출발도 겪게 된 의미 있는 한 해였고, 작품 속에서도 많은 감정들을 얻게 된 한 해였다"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준호는 올해 4월 17년간 몸담았던 JYP를 떠나 1인 기획사를 직접 설립했다. 강태풍처럼 사장이 된 이준호에게 강태풍의 어떤 모습을 닮고 싶냐고 물었다.
"태풍이처럼 하면 쉽진 않겠다는 생각은 했죠. (웃음)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저도 너무나도 공감하는 바에요. 강태풍의 그런 모습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시작해서 1인 기획사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혼자 있을 생각은 없어요. 기회가 주어지고 뜻이 같은 분들이 계시면 그분들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에요."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O3 Collective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