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욕심 버린 ‘윗집 사람들’ [인터뷰]
입력 2025. 12.03. 15:02:48

'윗집 사람들' 하정우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2013년 영화 ‘롤러코스터’의 연출을 맡으며 감독으로서 첫발을 뗀 하정우. 이후 ‘허삼관’ ‘로비’ 등을 연출하며 배우와 감독을 오가던 그는 네 번째 연출작 ‘윗집 사람들’로 다시 관객을 만난다. 흥행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이번 영화는 하정우 본연의 배우적 감각을 연출로 녹여내며 일상의 미묘한 긴장과 유머를 섬세하게 담아냈다. 전작들과 차별화를 뒀다는 ‘윗집 사람들’은 하정우의 흥행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을까.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하정우를 만나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윗집 사람들’은 매일 밤 섹다른 층간소음으로 인해 윗집 부부(하정우&이하늬)와 아랫집 부부(공효진&김동욱)가 함께 하룻밤 식사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 이야기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하정우는 지난 4월 개봉된 ‘로비’에 이어 ‘윗집 사람들’로 다시 한 번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황당해요. 하하. 제가 개봉을 한 게 아니고, 개봉을 당한 거니까. 투자배급사에서 결정하는 거라 이것도 운명이겠거니 생각해요. (연출) 네 번째 작품은 나아져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흥행에) 깨져봤으면 발전을 해야 하는 게 자연의 법칙이 아닐까 생각해요.”

‘윗집 사람들’은 일상 속 익숙한 층간소음이라는 소재를 출발점 삼아 부부의 관계, 인간의 욕망, 타인과의 불편한 거리감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이면을 깊고도 재치 있게 풀어낸다. 특히 단 한 공간, 단 하룻밤이라는 제한된 설정 안에서 네 인물의 감정이 엇갈리고 충돌하는 순간들을 탁월한 리듬감과 말맛으로 그려내며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잡는다.

“저의 유머에는 짓궂음이 있어요. 예상치 못한 답을 하는 걸 좋아하죠. 뜬금없는 걸 좋아해요.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지는 것 말고, 집에 가서 신발을 벗다가 터지는 걸 좋아하죠. 하하. 그런 걸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윗집 사람들’에서는 극 초반 쉬운 코미디를 넣어 즉각적인 것들을 가져가고자 했죠.”



그렇게 탄생한 말맛 대사 중 가장 강력한 웃음을 주는 건 ‘피카츄’의 등장이다. 뜬금없이 언급되는 피카츄는 엔딩크레딧에도 감독의 이름으로 등장, 웃음 포인트로 작용한다.

“블라인드 시사를 했어요. 저는 피카츄에서 웃을 줄 몰랐거든요. 그러나 잔재미는 줄 거라 생각했어요. 이상했던 건 현장에서 서로 연기하며 아무도 웃지 않았어요. 그게 과열됐던 것 같아요. 집중도와 밀도가 너무 세고, 스케줄도 타이트하다 보니. 하늬는 심지어 촬영 마지막 날에 ‘우리 영화 웃긴 영화였어’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런 것에 대해 인지를 안 하고 있었던 거죠. 저는 마음속으로 ‘피카츄 터질 건데’라고 생각했지만 효진이와 하늬는 유치하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블라인드 시사를 했는데 피카츄에서 다 터졌어요. 블라인드 시사에 오는 분들은 얼음장 같은 사람들이거든요. 냉혈한들이 웃기 시작하니 ‘피카츄는 살려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엔딩크레딧에 ‘감독 하정우’가 아닌, ‘감독 피카츄’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작사에서 ‘이 영화가 장난도 아니고’라며 난리가 난 거예요. 저도 제작자인데. (웃음) 그럼 부산영화제 때 한 회만 ‘감독 피카츄’를 넣을 기회를 달라고 했어요. ‘감독 피카츄는 분명 터질 것이다’라고 했는데 터지더라고요. 그렇게 허락을 받았어요. 개봉 땐 감독 피카츄에서 감독 하정우로 바꿔달라고 절충했고요. 피카츄는 끝까지 멸시 받고, 핍박을 받았어요.”

영화는 스페인 영화 ‘센티멘털’을 원작으로 한다. ‘동거인’ ‘미지와의 조우’ ‘나이로비 사파리 클럽’ ‘강강수월래’ ‘매치 포인트’, 5개의 챕터로 구성된 ‘윗집 사람들’은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짧은 저녁 시간을 그려낸다.

“원작을 보고선 찡했어요. 생각을 안겨주는 작품이었죠. 여운이 굉장히 많았어요. ‘윗집 사람들’보다 원작 ‘센티멘털’은 더 담백하게 흘러가요. 속닥속닥한 느낌이었죠. 그런데 울림의 파장은 굉장히 컸어요. 수많은 나라에서 왜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려 했는지 알게 됐죠. 드라마의 힘이 굉장히 셌는데 여기에 저의 어떤 것을 가미하면 충분히 재미있게 탄생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서 소개된 워딩들이 ‘섹스코미디’라고 알고 관객들이 오실 텐데 숨겨진 저만의 비장의 카드는 관계회복에 대한 드라마가 관전 포인트가 될 거라 생각해요.”



원작에서는 남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나 하정우는 이번 영화에서 아랫집 아내 임정아(공효진)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설정해 새로운 관점을 도입했다.

“‘센티멘털’을 보고 영화하기로 결정한 후 누구의 눈으로 바라봐야 할까 생각했어요. 여자의 눈으로 바라봐야겠다가 단순히 재밌겠더라고요. 또 공효진 배우가 이걸 해야 일반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효진이는 어떻게 보면 특성이기도 한데 매번 테이크가 다르고, 말 리듬이 일정하지 않아요. 무슨 단어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야생적인 화술을 가지고 있죠. 극사실적이라는 느낌을 줘요. 윗집에서 나온 말들에서 당황하는 효진이와 동욱이, 현실적인 커플 리액션이 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키포인트라 생각했어요. 이 연기를 잘할 배우가 누가 있을까 고민했을 때 공효진 배우였어요. 여성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지만 효진이를 받아들인다면 쿠션이 돼 공감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영화는 표면적으로 ‘스와핑’ ‘섹스리스’ 등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다.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겐 불편한 소재로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터.

“‘불편하지 않을까?’라고 하는 지점은 워딩인 것 같아요. 그런 단어들인 거죠. 막연하게 여자들이 들으면 이 이야기가 불편할까? 그런 것이요. 그걸 연기하는 공효진, 이하늬 배우가 주체적으로 했기에 불편함이 없을 수 있는 거예요. 제가 말씀 드리는 건 막연한 거예요. ‘효진이랑 같이 하는 요가 장면이 불편할까?’ 했을 때 어떤 반응과 의견이 나오는 게 다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하정우에게 ‘윗집 사람들’은 연출자로서 변화와 배움을 준 영화다. 그동안 다수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었던 그가 이번 영화에서는 4명의 주인공을 내세운 변화를 주며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표현의 도구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재밌는 영화를 만들까가 고민이에요. ‘로비’까지 내가 생각하는 코미디가 제일 웃기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걸 마련해야겠다 싶었어요. 쉽고, 어렵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어요.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세상을 둘러보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선 작품은 수많은 캐릭터를 통해 많은 걸 얘기하고 싶었거든요. 이번엔 4명을 통해 ‘내가 욕심이 과했구나, 많은 이야기를 설정하고 심어놓았구나’ 거기서 정리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중력과 밀도가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이것도 확실히 깨달은 게 아니라 짐작하는 부분이지만요. 후반 작업 때 감독들은 수백 번 영화를 보잖아요. 이번엔 피로도가 없었어요.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후 사람들의 반응을 봤을 때 다르다는 차이를 느꼈던 것 같아요. 앞으로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한국에 개봉되지 않은 제3세계의 영화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어쭙잖게 시나리오 쓰지 말아야 승률이 높겠다 싶었죠. 하하.”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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