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럽이슈] ‘별세’ 김지미, 누구? 원조 팜므파탈 ‘韓엘리자베스 테일러’
- 입력 2025. 12.10. 12:16:53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고,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린 원로배우 김지미가 85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
고 김지미
10일 영화계에 따르면 김지미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최근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몸이 약해진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김지미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김기영 감독이 길거리 캐스팅으로 김지미를 발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지미는 ‘토지’ ‘육체의 약속’ ‘길소뜸’ 등 60년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1950~90년대를 아우르는 여성 배우로 활약했다. 김지미는 2017년 기자회견에서 “아마 700편 이상에 출연했을 것”이라며 “700가지 인생을 살았던 만큼 역할에 미련은 없다”라고 말했다.
‘길소뜸’으로 제24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티켓’으로 제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마지막 출연작은 이장호 감독의 ‘명자 아끼꼬 쏘냐’다.
김지미는 윤정희, 문희, 난정임이 우리나라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형성하기 전부터 활동했으나, 선후배 배우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1980년대까지 꾸준히 활약했다.
특히 김지미는 전형적인 한국 여성의 이미지와 달리, 입체적인 얼굴로 당대 최고의 미녀로 꼽혔다.
또 김지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해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맡는 등 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힘을 기울였다. 2010년에는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김지미는 1958년 홍성기 감독과 결혼했으나 4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 당대 인기 배우였던 최무룡과 간통혐의로 구속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김지미는 최무룡이 배우 강효실과 이혼할 때 위자료 400만원을 지불하기도 했다. 김지미는 최무룡과 재혼했으나 1969년 이혼했다. 최무룡과 강효실의 아들인 최민수는 성장 후에도 김지미를 어머니처럼 모신 것으로 알려졌다.
1976년에는 한국 가요계 전설 나훈아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1982년까지 동거해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으나, 결국 헤어졌다. 1991년에는 심장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 결혼했으나, 2002년 다시 이혼했다.
화려한 이력으로 인해 그에게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칭이 붙었다. 김지미는 2003년 한 인터뷰에서 “나이 많은 남자, 어린 남자, 능력 있는 남자, 다 살아봤는데 남자는 별 거 아니더라. 그렇지만 함께 자녀를 낳아 길렀던 최무룡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인근에서 거주해 왔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을 준비 중이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셀럽미디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