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없는 해, 한국 영화는 어디로 갔나 [2025 영화결산]
입력 2025. 12.17. 07:00:00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2025년 한국 영화계는 그 어느 해보다 냉혹한 숫자와 마주했다. 연간 ‘천만 영화’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고, 외국 영화가 매출 규모에서 한국 영화를 압도하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팬데믹 이후 관객 감소와 투자 위축이 이어진 가운데 극장가는 콘텐츠 경쟁을 넘어 ‘관람 경험’ 자체를 둘러싼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화가 한국 영화를 넘어서다…숫자로 확인된 판세 변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5년 1월~11월 기준 외화 매출액은 5292억원으로 한국영화 매출액(4058억원)을 1234억원 차이로 앞섰다. 한국 영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00억원 이상 급감하며 부진이 장기화되는 모습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2024년에는 ‘파묘4’(감독 이상용) ‘범죄도시4’(감독 허명행) ‘베테랑2’(감독 류승완) ‘파일럿’(감독 김한결) 등 흥행작들이 잇따라 등장하며 한국 영화 매출이 외화를 2000억원 가까이 웃돌았다. 그러나 올해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당길 만큼 확실한 흥행 동력을 갖춘 한국영화가 사실상 부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문제는 단순히 흥행작이 없었다는데 그치지 않는다”라며 “한국 영화의 공백을 외화, 그중에서도 팬덤이 공고한 애니메이션이 구조적으로 대체한 한 해였다”라고 진단했다.



해외 애니메이션의 해…팬덤이 매출을 만들다

2025년 극장가의 주인공은 단연 해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올해 국내 박스오피스 매출 1위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으로 600억원을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일본 영화 최초로 국내 연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뒤이어 ‘F1: 더 무비’ ‘주토피아2’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등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상위 5위권 가운데 한국 영화는 ‘좀비딸’(감독 필감성)이 유일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작품들이 단순한 ‘관객 수’가 아니라, 반복 관람을 통한 매출 확장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이다. ‘귀멸의 칼날’과 ‘체인소 맨’은 원작 만화와 TV 시리즈를 통해 이미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고, ‘주토피아2’ 역시 9년 만의 속편임에도 브랜드 파워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실제로 ‘주토피아2’는 개봉 일주일 만에 240만 관객을 돌파했고, 최단 기간 500만 관객 기록도 세웠다.

한 극장 관계자는 “팬덤이 탄탄한 콘텐츠일수록 관람 만족도가 높고, 재관람 비율도 눈에 띄게 나타난다”라며 “극장 입장에서는 흥행 리스크가 낮은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왜 극장이어야 하는가’…특별관이 만든 생존 공식

관객 감소 국면 속에서 극장이 선택한 해법은 명확했다. 집에서 대체할 수 없는 경험, 즉 기술 특별관이다. 4DX, 아이맥스(IMAX), 스크린X, 돌비 시네마 등 특별관은 올해 극장을 찾을 명확한 이유로 자리 잡았다.

메가박스에 따르면 2025년 1~11월 기준, MX4D와 돌비시네마 등 기술 특별관의 매출 비중은 14.4%로,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F1: 더 무비’는 돌비시네마에서 94일간 장기 상영되며 관객들의 체험 욕구를 자극했고,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은 특별관 관람객의 88%가 MX4D를 선택할 정도로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CJ CGV 자회사 CJ 포디플렉스 역시 성과를 냈다. 4DX와 스크린X를 중심으로 한 2025년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증가하며 기술관 전략의 유효성을 입증했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일반 상영관 중심의 경쟁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라며 “이제 극장은 영화를 ‘보는 곳’이 아니라, 오감을 쓰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관객은 더 신중해졌다…‘실패 없는 선택’의 시대

2025년 관객의 선택 기준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했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일상화되고 티켓 가격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관객들은 ‘아무 영화나’ 극장에서 보지 않는다. 대신 브랜드 신뢰도가 높거나, 특별관 체험을 통해 확실한 만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관객은 단순히 새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극장에 가지 않는다”라며 “집에서 볼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거나, 최소한 만족도가 검증된 작품이어야 선택을 받는다. 이 구조에서는 IP 확장성과 팬덤을 이미 확보한 애니메이션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분석했다.

한국 영화가 마주한 질문

결국 2025년은 한국 영화에 뼈아픈 질문을 던진 해였다. ‘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가’, ‘왜 비싼 돈을 주고, 굳이 이 공간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 작품들은 연말 성수기마저 외화에 내주며 설 자리를 잃었다.

한 제작자는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불황이 아니라, 구조 재편의 신호”라며 “IP 확장, 팬덤 구축, 극장 체험 요소를 염두에 둔 기획 없이는 중·대형 영화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천만 영화의 실종’, ‘한국 영화 매출 급감’, ‘해외 애니메이션의 약진’, ‘기술 특별관의 성장’ 이 네 가지 키워드는 2025년 영화계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위기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동시에 극장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전환기이기도 하다.

2025년은 끝났지만, 이 해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영화와 극장은 이 변화에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그 선택이 2026년 극장가의 풍경을 가를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 ENM('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어쩔수가없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주토피아2'), NEW('좀비딸'), 롯데시네마, CGV, 메가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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