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다미, 모성애도 감정도 설계했다…‘대홍수’가 만든 전환점 [인터뷰]
- 입력 2025. 12.24. 15:26:31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영화 ‘대홍수’(감독 김병우)는 인류 멸망이라는 거대한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 중심에는 한 배우의 치열한 통과 과정이 있다. 인공지능 연구원이자 여섯 살 아들의 엄마 안나를 연기한 김다미는 이 작품을 통해 감정의 부재에서 사랑을 학습해가는 인물을 구축하며 배우로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았다.
'대홍수' 김다미 인터뷰
김다미는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 공개 후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홍수’는 대홍수가 덮친 지구의 마지막 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건 이들이 물에 잠겨가는 아파트 속에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SF 재난 블록버스터다.
김다미가 ‘대홍수’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빈 공간이 많고 상상해야 할 지점이 많았다. 이게 과연 구현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김병우 감독의 연출을 떠올리며 그 공백이 어떻게 채워질지를 상상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웠다는 설명이다.
“감독님이 연출하신다면 어떻게 구현될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기로 했죠. 실제로 완성된 작품을 봤을 때 시나리오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많은 것들이 구현됐다고 느꼈어요. 처음 봤을 때 신기했고, 감독님의 ‘파티클’이나 ‘이모션엔진’ 등 감정 표현하신 것들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이번 작품은 김다미에게 물리적으로도 가장 혹독한 촬영 중 하나였다. 115회차에 달하는 촬영은 체력과 집중력을 동시에 요구했다. 그는 “어떤 작품보다도 분량이 많았다”라며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건 맞지만 해내고 나니 뿌듯함이 컸다”라고 말했다.
특히 물속 촬영은 배우로서 새로운 감각을 요구했다. 기술적 환경에 맞춰 연기 방식을 조율하는 과정 역시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마주한 과제였다. ‘물’이라는 환경은 기존의 연기 방식이 통하지 않는 지점이었고, 김다미는 이를 스스로 조정해나가야 했다.
“물속에서 연기할 때 실제 지상에서 연기할 때랑 얼굴이 되게 다르게 나오더라고요. 조금 더 과하게 해야 표정이 드러나는 느낌이 있었어요. 수영장에서 찍어보기도 하고, 모니터를 계속 보면서 그런 것들을 연구하려고 했어요.”
감정적인 접근 역시 이전과는 달랐다. 김다미는 감정이 쌓이는 서사 구조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여섯 살 아들을 지키려는 엄마이자, 동시에 인공지능 연구원으로서 인류의 책임을 짊어진 안나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처음에 ‘모성애’라는 감정 때문에 고민했어요. 결국 모성애도 사랑의 한 형태라고 생각했죠.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 많이 사랑하는 감정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모성애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모성애는 경험하지 못해서 아들의 눈을 보며 의지했던 것 같아요.”
촬영을 거치며 배우 개인의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현장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스태프들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참고했고, 작은 행동 하나까지 현실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님도 주의에 많이 여쭤보셨다고 하더라고요. 현장에서 자식을 둔 스태프들도 많았어요. 모니터를 보면서 분장팀 언니들에게 아이를 안을 때, 아이를 달랠 때,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하는지, 이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맞는지 많이 얘기했죠. 결국에는 사랑의 한 형태니까 자인이(권은성)를 많이 사랑하려고 했어요. 몸이 바로 가버리는 것들, 그런 것들을 느끼려고 노력했죠.”
이번 작품에서 김다미는 감정을 직관에만 맡기지 않았다. 그는 김병우 감독과 함께 장면마다 감정의 ‘레벨’을 세분화하며 연기를 설계했다. 특히 ‘2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친 안나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감정의 흐름을 그래프로 정리하며 접근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거의 테이크를 10번 이상 갔어요. 난이도가 있었죠. 모든 것들이 들어맞아야 해서 모든 컷들이 그랬어요. 감독님과 많이 한 이야기는 ‘레벨1은 이랬는데, 레벨2는 처음 겪는 거예요? 여러 번 겪는 거예요? 레벨1의 대사는 이렇게 했는데 레벨2는 이렇게 할까요?’ 등 세세한 지점에 토론했죠. 2만 번의 시뮬레이션 장면도 거의 다 다르게 정했어요. 제 나름의 그래프로 감정이 없는 안나, 감정이 있는데 서툴거나, 어떨 땐 유려하지만 마지막에는 인간다워지는 걸 정했죠. 감독님에게 ‘여기서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물으며 정하기도 했어요.”
박해수와의 호흡 역시 긴 촬영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인공지능 연구소의 인력보안팀 희조 역을 맡은 박해수는 안나를 구하는 작전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작품에서 처음 뵀는데 오랜 기간 혼자 있어야 했던 적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해수 선배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렸죠. 스케줄 표를 보면서 ‘언제 오시지?’ 하면서 같이 있으면 분위기를 웃겨주시고, 제가 힘든 걸 알아서 농담도 하시고. 저는 그럴 힘이 없으니까 선배님에게 의지하며 배웠어요. 연기적으로써는 따로 선배님과 얘기할 것도 없이 믿고 갔어요. 선배님 눈만 보면 됐거든요. 너무 감사했던 것 같아요. 선배님이 아니었다면 이걸 잘 못 끝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김다미는 ‘대홍수’를 의도적으로 ‘전환점’이라 생각하고 선택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촬영을 마친 지금, 이 작품이 자신에게 남긴 의미만큼은 분명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배우로서, 인간적으로 큰 전환점이 된 작품이에요. 3년 전에 촬영했을 때도 많이 배웠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보다 더 전에는 하나가 안 되면 혼자 자책도 많이 했거든요. ‘대홍수’를 찍을 때 많이 배우고 여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또 다른 것 같아요. 현장에서 제 역할, 배우로서 많은 성장을 해서 한 컷을 만들기 위해 모든 분들이 집중하고, 거기에 쏟아 부어야 하잖아요. 예전에는 제가 안 되면 스스로 자책했던 것들을 조금 더 내려놓게 됐어요. 그런 걸 ‘대홍수’에서 배웠기에 그런 마음으로 현장을 대하는 것 같아요.”
‘대홍수’는 김다미가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에서 감정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배우로 나아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남아낸 기록이다. 재난이라는 극한의 장르 속에서 그는 또 하나의 성장을 조용히 완주해냈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UAA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