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 역사’ 안성기, 74세 일기로 별세…스크린에 남긴 발자취 [셀럽이슈]
- 입력 2026. 01.05. 10:23:5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배우 안성기가 한국 대중문화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며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아역 시절부터 쉼 없이 스크린을 지켜온 그의 필모그래피는 곧 한국 영화사의 축약본이었다.
고 안성기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는 5일 “안성기가 2026년 1월 5일 오전 9시 별세했다”라고 밝혔다. 지난달 말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2019년 혈액암 진단 이후 투병과 치료를 병행해온 끝이었다.
안성기의 이름 앞에는 늘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특정 장르나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시대가 요구하는 얼굴로 존재해온 배우였다. 그의 연기는 언제나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시대를 향해 있었다.
1952년 영화제작자 안화영의 차남으로 태어난 안성기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다섯 살의 나이에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10여 년간 7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에 보기 드문 ‘아역 스타’로 자리 잡았다.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입증했다.
청소년기를 거치며 잠시 영화계를 떠났던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수석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전역한 뒤,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로 다시 스크린에 복귀했다. 이후 ‘바람불어 좋은 날’, ‘고래사냥’, ‘만다라’, ‘안개마을’ 등을 통해 청춘의 초상부터 시대의 방황까지 담아내며 성인 배우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1980~90년대는 안성기의 시대였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철수와 만수’, ‘하얀전쟁’, ‘성공시대’ 등 사회의 그늘과 인간의 내면을 응시하는 작품들에서 그는 늘 중심에 서 있었다. 액션, 멜로, 사회극을 가리지 않는 폭넓은 스펙트럼은 안성기를 한국 영화의 ‘기본값’을 만들었다.
2003년 ‘실미도’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이 작품은 산업적 성취와 함께 안성기가 여전히 현역의 중심에 서 있음을 증명했다. 박중훈과 함께한 ‘투캅스’, ‘라디오스타’는 대중성과 연기력을 동시에 인정받은 대표작으로 남았다.
안성기의 존재감은 스크린 밖에서도 이어졌다. 스크린쿼터 수호 활동, 유니세프 친선대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 그는 배우라는 직함을 넘어 영화인의 책임을 실천해왔다. “영화인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랐다”라는 그의 말은 삶의 태도이자 신념이었다.
2017년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 특별전에서 그는 “한 눈 팔지 않고 영화만 바라봤다”라고 회고했다. 스스로를 엄격히 다스리며 살아온 시간은 ‘안티 없는 배우’라는 희귀한 평가로 돌아왔다. 신뢰와 품격은 그의 연기만큼이나 중요한 유산이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동료 영화인들이 운구로 마지막 길을 함께한다.
안성기가 남긴 것은 단순한 작품 목록이 아니다. 한국 영화가 성장해온 시간, 대중문화가 축적해온 기억 그 자체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스크린 위에 남은 발자취는 앞으로도 한국 영화사의 기준점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셀럽미디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