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면·해녀·선배까지, 英옥스퍼드 사전에 새겨진 K단어의 힘 [셀럽이슈]
- 입력 2026. 01.08. 13:06:1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한국의 일상과 문화에서 출발한 단어들이 세계 최고 권위의 영어사전에 이름을 올리며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라면(ramyeon)’, ‘해녀(haenyo)’, ‘선배(sunbae)’를 비롯한 한국 문화 관련 표현들이 옥스퍼드영어사전(OED)에 새롭게 등재되며 한류가 언어의 영역까지 깊숙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갈무리
영국 옥스퍼드대가 펴내는 OED에는 최근 ‘라면’, ‘해녀’, ‘선배’를 포함해 ‘빙수(bingsu)’, ‘찜질방(jjimjilbang)’, ‘아줌마(ajumma)’, ‘코리안 바비큐(Korean barbecue)’, ‘오피스텔(officetel)’ 등 총 8개의 한국 문화 관련 단어가 추가됐다. 지난해 ‘달고나(dalgona)’, ‘막내(maknae)’, ‘떡볶이(tteokbokki)’ 등 7개 단어가 등재된 데 이어 2년 연속 한국어 기반 단어들이 사전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1884년 처음 출판된 OED는 현재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운영되며 영어권에서 실제 사용되는 단어와 표현을 뜻과 어원, 용례를 근거로 정기적으로 갱신한다. 특정 언어권의 단어가 등재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번역어를 넘어 영어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는 충분한 기록이 필요하다. 한국 관련 단어가 2000년대 이후 급증한 배경에는 K팝과 K드라마, K푸드로 대표되는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확산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 이름을 올린 단어들 역시 한류의 영향과 맞물려 사용 빈도가 크게 늘어난 사례로 꼽힌다. ‘라면’은 일본식 ‘라멘(ramen)’과 구별되는 한국식 발음과 문화적 맥락이 영어권에서 점차 자리 잡으며 독립 항목으로 인정받았다. 넷플릭스 콘텐츠 속 장면을 통해 한국 여행의 ‘필수 음식’으로 언급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찜질방’과 ‘빙수’ 역시 K드라마와 예능, SNS를 통해 한국적 라이프스타일과 음식 문화를 설명하는 단어로 자연스럽게 사용돼 왔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해녀’의 등재는 특히 상징적이다. 제주 지역의 고유한 직업이자 여성 노동의 역사성을 담은 이 단어는 오랫동안 영어권 자료 부족으로 사전 등재가 쉽지 않았던 표현이다. OED 한국어 컨설턴트인 지은 케어(한국명 조지은)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교수는 “몇 년 전에도 해녀 등재를 시도했지만 영어권 연구와 언급이 충분하지 않았다”라며 “최근 해녀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다큐멘터리가 나오며 인지도와 사용 사례가 늘어 등재가 가능해졌다”라고 설명했다.
관계와 호칭을 나타내는 단어들도 꾸준히 사전에 자리 잡고 있다. 영어의 ‘시니어(senior)’와는 결이 다른 의미를 지닌 ‘선배’는 한국 사회 특유의 위계와 관계 문화를 담은 표현으로 이미 등재된 ‘누나(nuna)’, ‘형(hyung)’, ‘막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단어 하나에 담긴 문화적 배경까지 함께 수용하는 것이 OED의 특징이다.
음식 분야에서는 기존의 ‘갈비(galbi)’, ‘삼겹살(samgyeopsal)’, ‘불고기(bulgogi)’에 이어 ‘코리안 바비큐’가 처음으로 등재됐다. OED는 1938년 하와이 일간지에 실린 “코리안 바비큐 저녁이 제공 됐다”는 문장을 초기 사용 사례로 제시하며 이 표현이 비교적 오래전부터 영어권에서 쓰여 왔음을 보여준다.
케어 교수는 “옥스퍼드영어사전에 한 번 들어간 단어는 시간이 지나 사용 빈도가 줄어들어도 삭제 되지 않고 남는다”라며 “글로벌 언어인 영어 속에 한국 문화의 흔적이 기록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한국 관련 서적 출판과 연구, 콘텐츠가 영어권에서 꾸준히 생산돼야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일상 언어가 세계인의 언어 자산으로 축적되는 과정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문화의 지속성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 ‘라면’과 ‘해녀’, ‘선배’가 사전에 남긴 흔적은 한류가 이제 콘텐츠를 넘어 언어와 사고방식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