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현과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필연적 만남 [인터뷰]
입력 2026. 01.29. 16:49:12

박강현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배우 박강현의 연기에는 언제나 소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순수하기에 더욱 단단한 태도, '라이프 오브 파이' 속 파이는 그런 박강현의 얼굴과 가장 닮은 캐릭터였다.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는 얀 마텔 작가의 스테디셀러 소설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태평양 한가운데에 남겨진 파이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227일간의 대서사시를 담은 작품이다.

박강현은 2017년 '나쁜자석' 이후 8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르게 됐다. 그는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도전이었다. 제게 큰 도전이었고, 내가 언제 또 이렇게 퍼펫들과 함께 하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었다.저는 경험주의자라서 꼭 이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작품이) 힘들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기존에도 힘든 작품을 많이 해봐서 겁 없이 도전했다"면서도 "그런데 확실히 다른 힘듦은 있었다. 뮤지컬은 노래가 장면을 정리해주는 장점이 있다면, 여기는 에너지, 대사, 움직임으로 그것들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힘들었다. 그렇지만 굉장히 값진 도전 중이라고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원작인 '파이 이야기'는 맨부커상을 거머쥐었고, 영화화된 작품은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으로 당해 최다 수상작이 된 바 있다. 박강현은 "영화가 나왔을 당시에 영상미가 굉장히 아름답다고 해서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보면서 정말 바다가 표현되는 그 영상이 너무 이쁘다고 생각했다"며 "그때 처음으로 접했고, 작품을 제안받은 뒤에 또 한 번 봤다. 그리고 대본을 받아서 읽었는데 완전히 다르더라. 영화의 제일 끝부분과 연결돼서 다시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었다. 그 이후에 원작인 책을 찾아봤는데, 책을 토대로 각색을 해서 대본을 쓴 걸 알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공연을 보고 나면 관객들은 입을 모아 정교한 퍼펫에 대한 호평을 늘어놓는다. 동물의 골격과 근육, 움직임을 바탕으로 제작된 퍼펫을 퍼펫티어들이 소리, 움직임을 통해 표현하며 리얼함을 더한다. 박강현 역시 '라이프 오브 파이'의 매력으로 퍼펫을 1순위로 꼽았다.

"어렸을 때 인형을 갖고 놀면 거기에 인격을 부여해서 놀고는 한다. 그 놀이를 할 때도 진짜라고 믿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퍼펫들과 연기하는 데엔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퍼펫티어들이 항상 퍼펫을 잡고 있지만, 어느 순간 퍼펫티어가 아닌 퍼펫만 보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명확해지면 어렵다기보다는 재미있는 경험이 된다. 퍼펫티어들의 마음이 안 맞으면 그게 퍼펫의 움직임에서 바로 드러난다. 발의 움직임 같은 부분이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정말 퍼펫티어들은 기존 콜 시간보다 한두 시간씩 일찍 와서 몸도 먼저 풀고 맞춰가며 열심히 연습했다."



작품 속 파이가 진술하는 227일간의 생존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동물과 함께 생존했던 '첫 번째 이야기'와 인간들이 서로를 해치며 살아남은 '두 번째 이야기'. 두 이야기가 모두 밝혀진 뒤에도 작품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를 규정짓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박강현은 두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며 연기할까.

"연습할 때 외국 협력 연출께서 어떤 이야기를 믿는지는 배우의 몫이라고 말하더라. 왜냐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 모두 명확하게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논리적으로 말이 될 법한 것을 믿고 가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 생각을 계속 가로막는 게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싶었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겠더라. 그래도 저는 첫 번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고 가려고 하고, 그걸 오카모토와 루루 첸, 그리고 관객들에게 설득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임한다. 그래서 저도 매일매일 다르다. 제가 그렇게 열심히 설득해도 두 번째로 믿어지는 날이 있고, 첫 번째가 진짜 같은 날도 있다. 그걸 보고 있는 관객들, 듣고 있는 상대 배우들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저는 매번 첫 번째를 택하지만 사실 결과는 매번 다른 것 같다."

그러면서 박강현은 스스로를 "100명 중 99명이 아니라고 해도 1명이 맞다고 하면 맞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겪은 경험 안에서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따지긴 하지만 엄청 논리적이진 않다. 열려있는 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하는 데에 많이 도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열어두는 그의 태도는 어쩐지 작품 속 파이와 닮아 보였다. 박강현 역시 "삶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쉽게 단정 짓지 않고 굉장히 오픈 마인드라는 점이 저랑 약간 비슷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또한 박강현이 갖고 있는 굳건한 믿음도 작품 속 파이를 연상시켰다. 극 중 파이가 끝내 놓지 않는 믿는 힘은 배우 박강현이 연기를 대하는 태도와도 닮아 있었다. 그는 매 순간의 상황과 감정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을 믿음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다.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첫 병실 장면에서 침대 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순간의 상황, 이 이야기를 정말 해주고 싶다는 호기심,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 등을 가지고 집중하려고 한다. 믿음은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서 깨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믿음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생각이 못 들어오게 그 순간을 되뇌며 집중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믿음도 굳건해진다."

그 믿음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진실성에서 비롯됐다. 박강현이 흔들리지 않는 무대를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선택을 먼저 믿는 태도에 있었다.

"정민이형 공연을 볼 땐 재밌었는데, 이걸 어떻게 사람들이 볼지 궁금해서 초반에 살짝 (반응을) 봤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제가 아직까지 갇혀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가끔은 지난 공연에서도 맞다고 생각한 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최선의 선택이 맞았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그게 진심이고 진실이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관객들에게 제가 더 당당할 수 있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믿음인 것 같다. 사실 취향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이 연기가 좋을 수도, 별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 안의 믿음과 진실성이 충만하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저는 고통의 역치도 높은 편이다. 웬만해서는 '이 정도는 뭐', '이것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을 텐데'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세뇌해와서 웬만한 고통과 힘듦으로는 쉽게 스크래치가 나질 않는다. 그때마다 안 아팠던 건 아닐 건데, 그렇게까지 힘든 적은 없었다. 저는 항상 그런 순간이 와도 좋은 쪽으로 흘러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살았다. 믿는 대로 살아진다고 하지 않나. 어쩌면 믿음에 세뇌가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015년 뮤지컬 '라이어 타임'으로 데뷔한 박강현은 이후에 '광화문 연가', '엑스칼리버', '웃는 남자', '하데스 타운', '알라딘', '멤피스' 등 대극장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어느덧 데뷔 12년 차 배우가 됐지만, 오랜만의 연극 무대인만큼 배워나간 부분도 많았다고. 그는 "음악이 없을 때 작품을 끌고 나가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감정을 매끄럽게 연결시키는 부분들, 그리고 말의 전달을 많이 배웠다"며 "말할 때 어떤 에너지를 어느 정도 써야 하는지, 노래 없이 상대방의 대사를 온전히 들으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와 같은 움직임을 많이 배웠고, 퇴장 없이 큰 호흡을 끌고 가는 무대 위에서의 지구력도 계속해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라이프 오브 파이'는 그에게 배우로서의 감각을 재정비하는 과정이 됐다. 익숙함을 내려놓고 다시 배운 이번 경험은 배우 박강현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조금 더 좋은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에도 힘든 작품은 있었고, 그런 작품을 할 때마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는데, 이건 저를 '딴딴'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체력적으로도, 연기적으로도, 그리고 무대에서 기술적으로 행하는 부분도 모두 포함이다. 매 작품마다 조금씩 성장함을 몸소 느끼고 있다. 이러한 경험들을 가지고 다음 작품을 하면 조금 더 향상된 능력치의 박강현을 관객분들도 알아봐주지 않을까 싶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메인스테이, 에스앤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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