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우, 가발 하나로 시작된 ‘메이드 인 코리아’ 황국평 [인터뷰]
입력 2026. 02.04. 13:00:00

'메이드 인 코리아' 박용우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배우 박용우는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등장하는 순간 공기의 밀도를 바꾼다. 중앙정보부 국장 황국평. 그는 단순히 권력을 쥔 인물이 아니라, 시대의 욕망과 불안이 뒤섞인 얼굴로 극의 중심에 서있다. 날 선 눈빛과 느긋한 태도, 그리고 가발과 빗, 거울이라는 상징적인 소품까지. 황국평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박용우는 이 인물을 처음 대본으로 접했을 때를 “가장 고민이 많았던 순간”이로 기억한다. 제안 자체는 특별할 것 없었다. 대본을 읽고, 감독과 상대 배우를 확인했다. 그러나 캐릭터는 쉽게 보이지 않았다고.

“대본만 봤을 때는 누군가의 상사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이었어요. 이 사람이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어떤 서사가 있는지 잘 안보였죠. 그게 제일 걱정됐어요.”

그 고민의 실마리는 뜻밖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우민호 감독은 박용우를 따로 불러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른 작품과 겹쳐 머리스타일에 변화를 줄 수 없다는 점, 그래서 가발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아마 거절할 줄 아셨던 것 같아요. 외적으로 멋있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배우들이 싫어할까봐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너무 좋았어요. 가발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됐다고 느꼈죠.”



박용우에게 중요한 건 ‘멋’이 아니었다. 그 사람만의 스토리가 보이는가, 그렇지 않은가였다. 탈모라는 외적 콤플렉스는 황국평이라는 인물의 욕망과 불안을 설명하는 가장 직관적인 장치가 됐다.

“외적인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 그래서 욕망을 더 과하게 드러내는 사람. 그 설정이 들어가니까 인물이 확 살아났어요. 저는 그런 캐릭터가 좋더라고요.”

황국평은 단순한 악역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메이드 인 코리아’가 그리는 세계 안에서 그는 가장 시대적인 얼굴에 가깝다. 박용우 역시 이 인물을 ‘악인’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연약함이 먼저 떠올랐어요.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 불쌍하고 안됐다고 생각하죠. 시스템이 만든 괴물들 같았어요.”

그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 자체에 오래 전부터 의문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주어진 프레임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이란 것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그런 착각이 어떻게 인간을 변형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해석했다.

“사람들은 질문을 안 하면서 살아가요. 익숙한 프레임 안에서 선택하면서 자유롭다고 착각하죠. 저는 이 작품이 사회 시스템 때문에 괴물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봐요.”



그래서 황국평의 잔혹함도 비열함도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일 뿐이라고.

“절대 권력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도 결국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죠. 그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게 재밌었어요.”

황국평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인 고문실 장면 역시 현장에서 확장된 결과물이다. 피 묻은 LP판을 닦으며 클래식 음악을 듣는 설정은 대본에 없던 장치였다. 권력의 폭력성과 개인적 취향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이 장면은 황국평이라는 인물의 기묘한 결을 단번에 각인시켰다.

“원래 대본에는 그냥 백기태가 사무실에 들어오는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사무실 말고 고문실에서 나오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거기에 평온하게 클래식 음악을 듣는 설정을 붙였어요. 촬영장에 빗과 거울이 있길래 리허설을 해봤는데 자연스럽게 묻어 있어야 말이 될 것 같았죠. 그래서 ‘튀었네’라고 대사를 했고,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 이후로 ‘인사 똑바로 안 해 새끼야’ 같은 대사들도 대부분 현장에서 만들어졌죠.”

박용우는 이처럼 대본에 갇히지 않는 작업 방식을 오히려 자신의 연기에 잘 맞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장면과 상황에 따라 인물이 확장되는 경험은 배우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그는 현장에서 만들어진 리듬과 감정이 오히려 인물의 본질에 가까이 닿는다고 느꼈다.

“현장에서 대본을 짜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저는 그게 너무 좋았어요. 대사를 미리 완벽하게 외우기보다는 맥락을 이해하고 있다가 상황에 맞게 반응하는 편이거든요. 그렇게 하면 훨씬 핵심을 관통하는 순간이 나와요. 어떤 분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는데 저는 그런 방식이 잘 맞아요.”



노골적으로 부패한 권력자를 연기하면서 느낀 감정에 대해 박용우는 솔직했다. 황국평은 폭력과 욕망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지만 그 표현 방식에는 배우의 선택이 분명히 담겨있다. 그는 악역이기에 가능한 감정의 해방과 동시에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놓치지 않았다.

“불편한 지점은 요즘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 피곤한 것 말고는요. 평상시에 못하던 욕도 하고, 폭력적인 행위도 하고. 그런 것들에 해방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에요. 게다가 돈도 주니까요. (웃음) 표현을 못 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다행히 저는 현장에서 그 감정을 즐기는 편이에요.”

다만 그는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보다는 일부러 남겨두는 연기를 택한다. 시청자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게 100이면 다 표현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어요. 한 70~80 정도만 보여주는 게 좋아요. 그래야 저 사람이 또 언제 나오나 궁금해지거든요. 개인적으로 악역이라는 건 자유롭지만 동시에 절제가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 같은 역할이 늘 인상 깊어요.”

데뷔 30년을 넘긴 지금 박용우는 더 이상 ‘변화’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대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연기를 이어가는데 집중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움보다는 진실함이다.

“제가 다른 색깔을 보여줘야겠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에요. 이 일은 자기 위로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소통하려고 하는 거죠. 하나의 작품은 감독과 배우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물이지 혼자 만드는 게 아니거든요.”

연기에 대한 태도 역시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욕망보다는 지속 가능함, 성취보다는 즐거움이 앞선다는 박용우다.

“이제는 욕망이라기보다는 그냥 연기가 재밌어요. 이렇게 연기하다가 늙어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죠. 확장되는 느낌이 좋아요. 앞으로 또 어떤 얼굴이 나올지 저도 궁금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프레인TPC,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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