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싫었지만…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안나 카레니나'[인터뷰]
- 입력 2026. 02.19. 16:20:21
-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처음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을 때 소설 속 그녀가 너무 싫었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화가 났다. 하지만 다른 시점에서 그녀를 이해해 보려 했고, 그 과정에서 사랑하게 됐다"
알리나 체비크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후반 러시아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사랑과 결혼, 가족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대표작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사랑’, ‘행복’, ‘선택’, ‘갈등’이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화두를 유려한 음악과 품격 있는 무대 미학으로 풀어내며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공연을 세울 때 작품을 통해 어떤 의미를 전할 것인지 먼저 고민한다. 소설이 워낙 방대해 맞게 함축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덜어냈다. 현대사회에 남성 중심적인 사회가 뭔지 아실 거로 생각한다. 지금은 평등하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사회 내면에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남아있는 거 같다. 남성이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여성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큰 비난을 받기도 한다. 안나가 그 사회에서 대응하는, 즉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 대립적으로 서서 그들을 저항하는 입장이다. 19세기 작품이긴 하지만 사회적인 시선이나 이야기하는 것들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연출을 맡은 알리나 체비크는 다른 남자와 불륜을 벌이고 그의 자식까지 낳는 주인공 안나를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관객이 안나를 어떻게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인물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안나는 부정적인 느낌이 있었다. 소설을 읽었을 때 주인공이 너무 싫었다. 공연을 한다고 하면 여주인공을 모두가 이해가 가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는데 소설 속 그녀는 싫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싫었지만 이런 자식을 내가 또 떠안아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사실 내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카레닌과는 사랑 없이 결혼했고, 브론스키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사랑과 행복을 위해 행동을 시작한 인물이다. 그 선택이 모두에게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라면 저렇게 대립해서 갈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슬픔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어느 순간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나아가 그는 '누군가의 실수를 비난하는 일은 쉽지만, 과연 우리가 그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를 묻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범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적인 부분에서의 이야기다. 작품은 '행복을 향해 나아간다'는 주제를 가지고 시작한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다'라는 성경 구절이 등장한다. 오늘날 미디어를 통해 한 사람을 쉽게 단죄하는 사회 분위기 속 우리가 한 번 이야기해 볼만한 뜨거운 주제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만 생각 안 하셨으면 좋겠다"
7년 만에 돌아오는 이번 시즌을 준비하며, 그 시간 동안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만큼 러시아 고전을 다시 무대에 올리는 데 대한 고민은 없었을까. 알리나 체비크는 오히려 작품을 통해 예술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예술이라는 게 사람을 뭉치게 하고, 문화도 합쳐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세계의 정치적인 것과 달리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딜가나 언어는 다를지언정 느끼는 감정, 공감하는 것들은 오히려 똑같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준비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연락을 주고받고 함께 작업하면서 '우린 비슷하구나'라는 걸 느꼈다"
오랜 시간을 지나 다시 무대에 오르는 이번 시즌은 그간의 제작 노하우를 집약한 무대다. 안나 역에는 옥주현, 김소향, 이지혜가 이름을 올렸고, 브론스키 역에는 윤형렬, 문유강, 정승원이 캐스팅됐다.
"러시아에서는 더블 캐스팅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오디션을 통해 더블이나 트리플 캐스팅으로 결정되는데 좋은 배우들이 있으면 거절하기 힘들다. 세종문화회관이 되게 크다. 비록 50회 공연이라고 하지만 일반공연장에 가면 100회 되는 분량의 관객이 오시는 거다. 관객입장에서는 다양한 배우의 선택지를 드리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안나가 마음에 든다. 세 안나가 다 다르다. 그 점을 공연에 와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안나뿐만 아니라 브론스키도 각각 다르다. 어떤 커플이냐에 따라 공연이 다르게 느껴지실 거다"
다만 그 과정에서 총 38회 공연 중 옥주현이 23회 무대에 올라 독식 논란이 불거졌다. 김소향의 경우 7회 중 5회가 낮 공연으로 배정됐으며, 저녁 공연은 단 2회에 불과해 캐스팅 내 역할 분배가 지나치게 불균형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알라나 체비크는 배우들간의 협의로 결정된 것이며, 옥주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마치 '안나 카레니나' 속 안나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내부적인 것에 대해선 자세히 모르지만 연출자로서 배우에 대해 평가한다면 옥주현은 프로패셔널하고 큰 성량, 목소리,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옥주현이 저희 작품에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결정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옥주현이 저희 작품 속 안나가 될 수 도 있을 것 같다. 소문이 조금 부풀려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작품 속 안나 처럼 다들 사회가 그렇다고 하니까 공격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돌을 던지기는 쉽지만 왜 던지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러한 캐스팅 잡음에도 '안나 카레니나'는 1차 티켓 오픈과 동시에 랭킹 1위를 기록하며 흥행 청신호를 밝혔다. 공연은 오는 20일(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해 다음달 29일(일)까지 5주간 이어진다.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쇼온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