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체성을 넘어 공감으로…연극·뮤지컬이 성소수자를 다루는 이유[Ce:포커스]
- 입력 2026. 03.18. 16:00:00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뮤지컬 '킹키부츠', '렌트',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꾸준히 관객의 선택을 받는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성소수자의 서사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킹키부츠'
뮤지컬과 연극을 포함한 공연예술은 문화예술 전반에서 성소수자 캐릭터가 비교적 빈번하게 등장하는 분야다. '킹키부츠' '헤드윅' '렌트'와 같은 작품은 오랜 전부터 전 세계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고, 최근에도 다양한 신작들이 비슷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무대 위에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관람하는 일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그렇다면 공연예술은 왜 이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무대 위에 올려왔을까. 이는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공연예술이라는 장르가 지닌 구조와 오랜 흐름 속에서 비롯된 결과에 가깝다.
'헤드윅'
◆ '성소수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
먼저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공연예술을 둘러싼 창작 환경을 살펴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를 중심으로 한 공연계는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성소수자 창작자들이 활발히 활동해온 공간이었고, 이들의 시선과 경험은 자연스럽게 무대 위 서사로 이어졌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과 같은 작품이 20세기 말부터 사회적 낙인에 정면으로 맞서온 것도 이러한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공연예술이 성소수자의 서사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특정 집단의 삶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공연예술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정체성'과 '소외'의 문제와 깊이 맞닿아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사회의 중심보다는 주변에 위치한 경우가 많고, 그러면서 내면의 갈등, 사회적 소외, 자기 수용과 같은 서사가 핵심이 되어 왔다.
이후 이러한 문제의식은 연극에서 뮤지컬로 확장되며 보다 대중적인 형태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뮤지컬은 감정을 노래로 확장한다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인물의 고뇌와 갈등을 더욱 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렌트'는 주변부에 있는 인물들로 연대와 상실을 말하고, '헤드윅'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성소수자 서사는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됐고, 결국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기능하게 됐다.
또한 공연예술은 방송, 영화 등 다른 매체에 비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다뤄왔다. 공연은 상업성과 검열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환경 속에서 제작됐고, 자연스레 무대는 쉽게 내기 어려운 목소리를 담아내는 역할을 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 서사를 많이 다룰 수 있는 분야가 됐고, 이로써 공연예술이 시대와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
'렌트'
◆ 공감에서 위로로, 관객이 만나는 방식
최근 공연 시장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반복되고 있다. 뮤지컬 '킹키부츠', '베어 더 뮤지컬', 연극 '프라이드' 등 성소수자 서사를 중심에 둔 작품들이 재공연을 거듭해 관객과 만나고,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 뮤지컬 '모리스' 등 최근 새롭게 올랐던 초연 작품들 역시 이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흥행이 검증된 소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관객은 작품에 각자의 경험을 투영해 해석을 확장하고, 이러한 공감이 재관람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성소수자 서사를 특정한 소재로 한정해 보지 않는 추세"라며 "관객들 역시 작품 속 인물의 특성보다 감정과 서사 자체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들의 서사는 관객에게 위로로 기능하기도 한다. 무대 위 인물들이 겪는 갈등과 선택의 과정은 특정 정체성이 아닌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되며, 각자의 삶을 비춰보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와 함께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 역시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성소수자 서사를 받아들이는 환경이 점차 확장되면서, 공연예술뿐 아니라 영화, 방송 등 미디어에서도 관련 이야기를 다루는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는 성소수자 서사가 더 이상 일부 장르에 국한된 특수한 소재가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서 공유되는 하나의 이야기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공연예술계는 성소수자 서사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되고, 어떤 감정으로 관객과 만나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무대 위에서 반복된 성소수자의 이야기는 다른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로부터 찾는 감정과 공감, 그리고 자신의 삶을 비춰보게 하는 하나의 거울로 남게 됐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 ENM, 쇼노트, 신시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