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피스', 심장 박동이 겹치는 순간 시작되는 불편한 질문[리뷰]
입력 2026. 04.14. 17:40:35

'마우스피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공연을 본다는 건 관객들의 심장 박동이 맞춰지는 일이야."

연극 '마우스피스'의 명대사 중 하나로, 이는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행위가 설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짧게는 90분, 길게는 200분 가까이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같은 것을 공유한다는 것. 공연예술이 매력적인 이유다.

하지만 '마우스피스'는 이처럼 신성하고 아름다운 예술의 이면에 숨겨진 폭력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은 진정으로 자신의 이야기가 이렇게 소비되길 바랐을까, 관객으로서 우리는 무대 위에 올라온 그의 이야기를 어떻게 소비해야 할까.

'마우스피스'는 스코틀랜드 극작가 키이란 헐리(Kieran Hurley)의 작품으로, 2018년 에든버러 초연 당시 사회적 불평등과 예술의 책임을 첨예하게 그려내 '우리 시대의 정치극'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2020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친 국내 공연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슬럼프에 빠진 중년의 극작가 리비는 우연히 언덕에서 소년 데클란을 만나게 된다. 데클란은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졌지만 환경적 제약으로 이를 펼칠 수 없는 인물이다. 리비는 데클란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풀어낸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말을 두고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관객의 관점에서 결말을 바라보는 리비와 자신의 현실을 생각하는 데클란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고, 결국 타협하지 못한 채로 데클란의 이야기는 무대 위에 놓이게 된다.



'마우스피스'는 리비와 데클란 사이에 실제로 일어난 일과 그것을 소재로 쓰인 작품이 동시에 전달되는 메타씨어터 형식으로 진행된다. 두 배우는 극 중 인물로서 행동하지만, 중간중간 무대 뒷편의 전광판에 그들의 대화가 극본 속 대사처럼 타이핑되어 나타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 속 현실과 극중극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리비와 데클란은 각자 다른 결핍을 겪고, 그렇기에 서로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비가 데클란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으나, 결말을 두고 두 사람은 대립하게 된다.

"한땐 예술과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서 그랬다고 하면, 믿을래?"

리비가 슬럼프에 빠진 이유는 자신의 신념과 현실의 충돌 때문이었다. 그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녹여낸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현실에서는 관객들이 원하고 성공할 수 있는 이야기를 요구했다. 그렇기에 리비에게 데클란의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리비도 어느 순간 타협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가 쓴 결말은 데클란의 바람과 달리 비극적이었다. 그러면서 리비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를 극적으로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데클란에게 폭력적이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논리다. 실제로 관객들은 극을 통해 크고 극적인 이야기를 경험하길 바라고, 그래야만 관객들에게 더욱 직관적으로 작품이 전달된다.

"내 목소리 듣고 싶다고 했잖아. 내 이야기, 듣고 싶다고 했잖아."

하지만 이야기가 '실존 인물'이라는 틀 안에 들어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데클란은 극단적인 결말을 원치 않았지만, 리비는 이야기를 그대로 동의 없이 무대 위에 올린다.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했던 리비는 결국 소외된 데클란을 외면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결말을 두고 대립했던 리비와 데클란은 서로 다른 엔딩으로 향한다. 리비는 자신이 써 내려갔던 결말을, 데클란은 또 다른 결말을 무대 위에서 동시에 풀어낸다. 이때 '마우스피스'는 어느 하나의 결말을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이야기 모두를 병치함으로써, 극 안의 현실과 극중극 사이의 경계를 더욱 흐릿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경계의 붕괴는 고스란히 관객에게로 넘어온다. 공연이 끝난 뒤에 남는 "그래서 데클란은 어떻게 된 걸까"라는 의문은 단순한 열린 결말이 아니라 관객을 향한 불편한 질문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무대 위에 올라온 그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더 극적이고 선명한 결말을 원한다. 어쩌면 그 순간 우리들도 리비가 데클란에게 가했던 폭력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지점은 극 초반 리비가 데클란을 데려갔던 미술관 장면과도 맞닿아 있다. 리비는 그곳에서 "여긴 정말 너를 위한 곳이야. 우리 모두를 위한 곳이야"라고 말하며 예술의 개방성과 접근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데클란의 이야기가 올라간 극장은 그렇지 않다. 데클란의 삶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공간에 놓여 소비된다. 리비는 데클란의 이야기를 예술로 풀어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주인공인 데클란이 그 공간에조차 속하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마우스피스'는 묻는다.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소비할 수 있는가.



이번 시즌 '마우스피스'에는 리비 퀸 역에 김여진, 우정원, 김정, 데클란 스완 역에 전성우, 이재균, 문유강이 캐스팅 됐다. 방대한 대사량과 밀도 높은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의 호흡으로 인해 단 한순간도 느슨해지지 않는다.

특히 데클란 역을 맡은 전성우와 이재균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소년의 결이 남아 있는 두 배우 모두 보호받지 못한 채 흔들리는 인물의 상태와 그 이미지가 맞물려 감정선에 깊이 이입할 수 있었다. 또한 두 배우는 감정을 천천히 쌓아 올리며 인물이 처한 상황의 절박함을 무대 위에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배우가 정교하게 쌓아 올린 데클란의 비극을 목격하며 우리는 박수를 보내지만, 동시에 그 박수 소리가 누군가의 삶을 잔인하게 소비한 대가는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극장을 나서는 순간 시작되는 불편함은 예술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우리의 안일함을 파고든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연극열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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