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기동 프렌즈’가 보여준 느슨한 연결…‘1.5가구’ 시대 열렸다[Ce:포커스]
- 입력 2026. 04.30. 14:32:20
-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 1인 가구의 확산 이후, ‘함께 살되 간섭은 최소화하는’ 새로운 주거 방식이 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1.5가구’로 불리는 형태다. 개인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느슨한 연결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미디어 콘텐츠 전반에도 반영되는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예능 콘텐츠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포착돼 왔다. 지난해 3월 방송된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공개된 윤은혜의 일상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15년째 함께해온 매니저와 7년째 동거 중인 생활을 공개하며, 혈연이나 전통적 가족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두 사람은 식사, 외출 준비, 운동까지 함께하며 사실상 가족과 다름없는 밀도를 형성하고 있지만, 동시에 각자의 역할과 경계를 유지하는 관계를 이어간다. 이는 법적·제도적 가족은 아니지만 정서적으로는 가족에 가까운, 이른바 ‘조립식 가족’ 혹은 확장된 의미의 공동체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완전한 독립을 유지하면서도 신뢰 기반의 타인과 삶을 나눈다는 점에서 ‘1.5가구’의 초기적 형태로 읽힌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더욱 본격적인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tvN 예능 '구기동 프렌즈'는 이러한 관계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다. 오랜 기간 혼자 살아온 동갑내기 싱글들이 한 공간에서 동거를 시작하며, 각자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같이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기존 가족 중심 서사나 완전한 1인 가구의 고립된 일상과는 결이 다른 지점을 조명한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합가’나 ‘공동체 생활’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관계 설정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출연진인 장도연, 이다희, 최다니엘, 장근석, 안재현, 경수진은 같은 집에 살지만, 각자의 루틴과 취향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관계를 만들어간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필요할 때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반복되며 ‘거리 조절이 가능한 관계’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상의 소소한 충돌과 조율 역시 프로그램의 주요 재미 요소다. 생활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어색함, 서로를 배려하며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지는 웃음 포인트들은 마치 각본 없는 시트콤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현실판 시트콤 같다”는 반응이 이어지며, 기존 관찰 예능과 차별화된 재미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구기동 프렌즈’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현대인의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혼자만의 시간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유지하면서도, 완전한 고립이 주는 외로움은 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프로그램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혼자인 건 좋지만 외로운 건 싫은’ 감정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드러난다. 이는 ‘1.5가구’가 단순한 주거 형태를 넘어, 감정적·심리적 욕구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드라마 역시 이 같은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 혹은 커플 중심의 공동체가 주요 서사였다면, 최근에는 취향과 조건이 맞는 개인들이 모여 느슨하게 관계를 맺는 형태의 콘텐츠가 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이미 드라마에서도 선행적으로 포착된 바 있다. 2019년 방영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친구 사이인 세 여성이 한 집에 모여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혈연이 아닌 관계 기반 공동체를 그려냈다. 각자의 삶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을 공유하는 이들의 모습은 ‘함께 살되 간섭하지 않는’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1.5가구’는 최근 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서도 주요 키워드로 언급된다. 해당 개념은 1인의 독립성을 기반으로 하되, 0.5 수준의 연결을 더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즉, 고립은 지양하면서도 과도한 간섭 역시 원치 않는, 유연하고 느슨한 연대에 방점을 찍는다.
이러한 흐름은 사회 구조 변화와 맞물려 확산되는 양상이다. 1인 가구 증가와 더불어 개인화된 생활 방식이 보편화됐지만, 동시에 완전한 단절에서 오는 정서적 고립에 대한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필요에 따라 연결되고, 다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적 관계’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최근 콘텐츠는 개인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느슨하게 연결되는 관계가 주요 서사가 되고 있다”라며 "1인 가구의 삶 뿐만 아니라 '구기동 프렌즈'처럼 일상 속 관계의 거리와 균형을 다루는 콘텐츠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tvN, MBC 제공, jTBC '멜로가 체질'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