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BTS'를 기다리며…K팝 정점론에서 취한 전략은 [Ce:포커스]
- 입력 2026. 05.04. 07:00:00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K팝 정점론' 'K팝 위기론'은 산업이 주춤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K팝 산업은 그러한 순간 예기치 못한 다크호스의 등장으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며 성장해왔다.
방탄소년단-블랙핑크
그리고 위기의 순간은 또 돌아왔다. '포스트 BTS' '포스트 블랙핑크'가 필요한 시점, 앞으로의 K팝은 어떤 전략으로 다음 스타를 기다려야 할까.
◆ K팝 정점론, 왜 대두됐나
'K팝 정점론'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K팝은 코로나 기간인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팬데믹으로 비대면 기술, 온라인 플랫폼이 보편화되면서 K팝은 글로벌 시장에서 저변을 크게 확대하는 계기를 맞았다.
그러나 2024년 K팝 산업이 역성장을 기록하며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0년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던 국내 4대 기획사 매출 성장이 2024년 처음으로 전년 대비 감소했으며, K팝 인기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 음반 판매량 2023년 1억 1578만 장에서 2024년 9328만 장으로 주춤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업계는 K팝 성장세가 멈춘 이유로 크게 새로운 아티스트의 부재, 팬덤 소비 피로 축적, 사업 확장 과부하 등을 꼽았다. K팝의 글로벌 확장을 주도한 그룹 방탄소년단의 군백기로 확장세가 한풀 꺾였고, 팬데믹으로 대면 경험이 줄어들고 MD 소비 문화가 주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팬덤의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증권사들 역시 K팝 산업에 대한 부정적 전망의 리포트를 내놓기 시작했고, 주주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며 주요 엔터사들의 주가도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싸이
◆ K팝 성장 둔화?…새로운 히어로는 등장한다
K팝 정점론이 제기된 이후, K팝은 정말 성장을 멈췄을까? 대답은 'NO'다.
국내 4대 기획사의 매출은 2025년 상반기 전년 대비 평균 22% 증가하며, 빠르게 회복했다.
특히 2025년은 예기치 못한 K팝 글로벌 신드롬이 휘몰아친 한 해였다. 블랙핑크 로제의 솔로곡 '아파트'가 전 세계 차트를 제패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세계관을 글로벌 콘텐츠로 확장하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대중문화 산업은 본디 예측 불가능한 다크호스가 판세를 뒤집는 시장이다. BTS가 없었다면, 블랙핑크가 없었다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K팝은 없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아티스트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K팝은 항상 위기의 순간에 새로운 스타의 등장으로 성장 추진력을 받아왔다. 그것이 K팝이 지금껏 성장해온 방식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산토스 브라보스-캣츠아이-니쥬(시계방향)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한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요행'에 기대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K팝 산업은 스스로 지속 가능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업계는 아티스트, 음악, 콘텐츠 수출에서 시스템 수출로 눈을 돌리고 있다. K팝을 만들어내는 제작 시스템과 방법론을 현지에 이식하는 전략이다. 한국인 멤버 없이도 K팝의 DNA를 가진 그룹을 현지에서 직접 육성하는 방식으로, 'K팝 방법론'이라고도 불린다.
CJ ENM, 하이브 등 기획사들은 현지 레이블을 설립하고 현지 인적 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K팝 그룹을 제작하고 있다. 핵심은 T&D(Training & Development) 시스템이다. 원석을 발굴해 댄스·보컬·무대 매너·팀워크까지 전방위로 트레이닝하는 K팝 고유의 육성 방식을 현지에 그대로 심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시도됐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이미 2020년 일본인으로만 구성된 니쥬(NiziU)를 제작했고, CJ ENM이 요시모토 흥업과 합작 설립한 라포네 엔터테인먼트 소속 JO1 등을 론칭했다. 이들은 현지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한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는 활동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현지화 전략도 K팝 확산세에 맞춰 아시아를 넘어 다른 대륙으로 진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캣츠아이(KATSEYE)다. 하이브와 미국 게펜 레코드가 넷플릭스 오디션 프로그램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를 통해 선발한 다국적 걸그룹으로, 미국·스위스·필리핀·한국 출신 멤버 6인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빌보드 핫100에 3곡을 동시 진입시키며 미국에서 '로컬K' 전략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K팝 시스템이 장르를 넘어 하나의 프로덕션 모델로 기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러한 방식은 아시아, 북미 등을 넘어 새로운 블루오션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으로 여겨지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중동 등은 K팝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으나, 물리적 거리 등의 제약으로 직접 진출에 한계가 있다. K팝 시스템 수출이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다면, K팝이 한층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하이브 인디아 오디션 포스터
◆ 'K의 정체성'은 남겨진 숙제
물론 K팝 시스템 수출이 풀어야 할 문제는 앞으로 더욱 혹독해질 것으로 보인다. 'K' 없는 K팝이 통할 수 있는가?
K팝 요소를 줄일수록 현지 팝과의 차별점이 흐려지고, K팝 요소를 살릴수록 "굳이 이걸 왜 들어야 하나"는 반응이 나온다. JYP의 미국 현지화 그룹 비춰(VCHA)가 사실상 고전을 면치 못한 것도 이 딜레마를 끝내 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다른 아티스트들과 차별화하는 지점이 뭔지 흐릿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로컬K는 K팝도, 현지 팝도 아닌 어중간한 지점에 설 위험을 안고 있다.
또한 K팝 시스템이 타 문화권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도 관건이다. K팝 시스템의 핵심인 장기 합숙 트레이닝, 강도 높은 외모 관리, 연애 금지 조항 등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문화적 맥락 안에서 작동해온 모델이다. 현지 인재를 이 시스템에 편입시키는 순간, 미성년 연습생 인권, 개인의 자유 억압, 노동 착취 논란이 훨씬 직접적으로 제기된다. 한국에서는 관행으로 묵인됐던 것들이 서구의 법체계와 미디어 환경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K팝의 외연을 넓힐수록 K팝의 '다크 사이드'는 더 이상 한국 내부의 문제로 봉합되지 않는다.
'팬덤'이라는 소비 생태계가 현지화될 수 있는가 역시 문제다. K팝 팬덤은 앨범 다량 구매, 팬사인회 응모, 총공 문화 위에서 작동하는 구조다. 그러나 서구 시장에서 아직까지 이 방식은 비주류다. 현지화 그룹이 현지에서 얼마나 K팝식 팬덤을 모을 수 있을지는 예측 불가능한 범위다. 즉, 이들의 수익 구조가 K팝 아티스트와 같은 구조로 형성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결국 현지화 전략은 K팝 산업의 다음 챕터인 동시에, K팝이 지금까지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질문 앞에 서 있다. 과연 K팝 시스템은 다른 문화권을 설득할 수 있는가. 그 답이 K팝의 다음 장을 써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하이브(방탄소년단, 산토스 브라보스, 하이브 인디아 포스터), YG엔터테인먼트(블랙핑크), JYP엔터테인먼트(니쥬), 게펜 레코드(캣츠아이), 셀럽미디어DB(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