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체’, 머리는 복잡한데 심장은 안 뛴다 [씨네리뷰]
- 입력 2026. 05.21. 10:06:13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영화 ‘군체’(연상호)는 분명 욕심이 큰 작품이다. 단순히 “또 하나의 좀비 영화”로 남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야심이 끝내 관객의 몰입까지 완벽히 끌고 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군체'
서울 도심의 초고층 빌딩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한다. 건물은 순식간에 봉쇄되고,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고립된다. 처음엔 짐승처럼 바닥을 기어다니던 감염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진화하기 시작한다. 두 발로 걷고, 사람을 구별하며 무리를 이뤄 조직적으로 생존자들을 추격하는 감염체들의 변화는 생존자들을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는다.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은 자신의 몸에 백신을 주입했다고 주장하는 인물 서영철(구교환)을 찾아야만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다고 판단한다. 구조대가 기다리는 옥상을 향해 이동하던 생존자들은 층을 올라갈수록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진화하는 감염자들과 마주한다. 여기에 감염체들을 이끄는 듯한 서영철의 존재까지 드러나며 건물 안은 혼란에 빠진다.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옥상으로 향해야 하는 생존자들, 그리고 인간을 넘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려는 감염체들의 위협 속에서 사투가 펼쳐진다.
연상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기존 K좀비 문법을 넘어선 ‘진화형 감염체’를 꺼내든다. 감염자들은 단순히 물고 뛰는 존재가 아니다. 일종의 상위 개체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정보를 공유하고, 점점 업데이트된다. 설정만 놓고 보면 꽤 흥미롭다. 하지만 막상 극이 진행될수록 “그래서 정확히 어떤 룰로 움직이는 건데?”라는 의문이 반복된다.
감염체들은 분명 진화한다는데 어떤 순간엔 집단처럼 움직이다가 또 어떤 순간엔 너무 쉽게 무너진다. 영화가 공들여 설명한 시스템이 장면마다 다르게 작동하는 듯한 느낌도 적지 않다. 결국 관객은 공포에 압도되기보다 “지금 저건 왜 가능한 거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좀비물에서 가장 중요한 직관적 긴장감이 중간중간 끊기는 이유다.
그럼에도 비주얼적인 볼거리는 확실하다. 특히 다수의 감염체가 떼로 움직이는 장면들은 확실히 공이 들어갔다. 집단으로 기괴하게 뒤틀리고 달려다는 감염체들의 움직임은 기존 좀비물과 결을 달리하려 한 흔적이 선명하다. 대형 스크린에서 봐야 체감되는 압박감도 존재한다. 다만 영화가 기대한 만큼의 ‘신선한 좀비’라는 인상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새롭다’보다는 ‘조금 변형된 익숙함’에 가깝다.
이야기 구조 역시 의외로 정석적이다. 초반부는 전형적인 재난·생존물 문법을 따라간다. 감염 발생, 집단 이동, 갈등 유발 인물 등장까지 익숙한 흐름이 반복된다. 특히 이른바 ‘발암 캐릭터’의 행동은 지나치게 답답하게 설계돼 있다. 긴장감을 위한 장치라는 건 알겠지만 몇몇 선택은 개연성보다 억지 전개에 가깝게 느껴진다. 관객 입장에선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는 피로감이 먼저 쌓인다.
배우들의 연기는 전반적으로 무난하다.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구교환은 영화 안에서 가장 독특한 온도를 만들어낸다. 인간과 감염체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듯한 불안한 분위기를 특유의 얼굴과 호흡으로 밀어붙인다. 등장할 때마다 영화의 결이 잠시 달라진다. 지창욱 역시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과 감정 연기로 극의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생존을 위해 끝까지 버티는 인물의 절박함을 비교적 설득력 있게 가져간다.
반면 전지현은 다소 애매하다. 캐릭터 자체가 액션 히어로인지, 현실형 브레인 캐릭터인지 끝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배우가 가진 스타성과 장르적 쾌감을 생각하면 훨씬 더 과감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을 텐데 영화는 계속 어정쩡하게 브레이크를 건다.
결국 ‘군체’는 새로운 좀비 세계관을 만들고 싶어 했던 영화다. 그리고 그 시도 자체는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설정의 확장에 비해 장르적 쾌감과 감정 설계가 충분히 따라오지 못한다. 머리로는 복잡해졌는데 정작 심장은 덜 뛰는 좀비 영화에 가깝다.
오늘(21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은 122분.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