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별에 필요한'→'순례자'…K-애니메이션, 배우 더빙의 새로운 문법 제시 [Ce:포커스]
- 입력 2026. 06.12. 06:00:00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비던 배우들이 애니메이션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캐릭터를 완성해야 하는 더빙 작업에 전문 성우 대신 배우를 기용하는 흐름이 K-애니메이션 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이 별에 필요한-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최근 K-애니메이션이 전문 성우 대신 배우 더빙을 잇따라 선택하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에는 이하늬, 진선규, 이병헌이 목소리 연기에 참여했다. 넷플릭스 첫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이 별에 필요한'에는 김태리·홍경, 애니메이션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는 김향기·박지후·이주영 등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줄줄이 더빙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에도 유명 배우를 더빙에 내세운 사례는 적지 않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작사들이 배우를 쓰면 마케팅에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활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배우 더빙은 업계에서 티저 공개 단계부터 대중의 이목을 끌고, 팬덤을 잠재 관객으로 흡수하는 효과가 크다고 여겨졌다.
배우 더빙은 이제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잡았다. 업계에서는 성우냐 배우냐를 두고 이제 정답은 없다는 시각이 중론이다. 성우는 캐릭터와의 완전한 동화, 안정적인 발성, 오랜 숙련에서 나오는 기술적 완성도가 강점인 반면 배우는 마케팅 측면과 관객과의 정서적 연결이 무기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비교는 더 이상 무의미하고, 작품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배우 더빙에 있어 성우 더빙과 완전히 차이점을 두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목소리 연기를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본연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목소리에 담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김태리, 홍경이 참여한 '이 별에 필요한'이다. 두 배우는 단순히 목소리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콘티에 맞춰 손을 잡고, 뛰고, 음료수 캔을 따는 등 실제 몸으로 연기를 하며 캐릭터와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쳤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애니메이션에 녹여냈다.
최근 개봉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허평강 감독은 녹음 당시 김향기, 박지후, 이주영에게 애니메이션 더빙이 아닌 드라마 후시 녹음에 임하는 마음으로 접근해달라고 주문했다.
가장 큰 장점은 감정의 증폭이다. '이 별에 필요한' 한지원 감독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배우들이 더 감정을 터뜨릴 수 있었고, 역동적인 목소리 연기가 나왔다"라고 밝혔다. 이 결과 배우가 가진 색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애니메이션에 스며들었고, 이색적인 느낌을 줬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허평강 감독 역시 각 캐릭터가 가진 내면의 결핍과 미묘한 감정선을 가장 자연스럽고 현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직업군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탁했다.
물론 관객의 호불호는 크게 갈렸다. '이 별에 필요한' 관람평에서는 "김태리, 홍경의 목소리 연기 덕분에 감정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는 반응이 나온 반면, "캐릭터 목소리가 배우 본인 이미지와 겹쳐 몰입이 깨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성우 더빙을 선호하는 입장에서는 "전문 성우가 맡았다면 캐릭터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제기됐다.
더빙 방식의 다양화는 K-애니메이션의 독자적인 문법을 구축하는 의미 있는 시도로 보인다. 새로운 형식의 배우 더빙은 단순히 마케팅 효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배우만이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을 끌어내며 '왜 배우 더빙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또 다른 대답을 내놨다. K-애니메이션이 스스로 새로운 문법을 써 내려가고 있는 셈이다.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영화특별시S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