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텐츠보다 놀이가 먼저…‘밈’이 바꾼 2026 엔터 소비법 [Ce:포커스]
- 입력 2026. 06.21. 07: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엔터테인먼트 소비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좋은 노래나 작품이 먼저 흥행한 뒤 챌린지, 패러디, 2차 콘텐츠로 확산됐다면 최근에는 순서가 뒤집히고 있는 모양새다. 대중이 먼저 ‘밈’으로 갖고 놀고, 그 놀이가 숏폼과 커뮤니티를 타고 확산된 뒤 원곡과 아티스트, 영화가 재소비되는 구조다.
아일릿, 리센느, 코르티스, '와일드 씽'
지난해 말, 그룹 AOA ‘짧은 치마’의 역주행을 이끈 ‘골반통신’ 밈은 이 같은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2014년 발매된 ‘짧은 치마’는 SNS에서 인플루언서 퐁귀의 ‘골반통신’ 콘텐츠 배경음악으로 쓰이며 다시 주목받았다. 이후 여러 인플루언서와 아이돌이 관련 챌린지에 참여하면서 밈은 확산됐고, 원곡 역시 음원 차트에 재진입했다. 발매된 지 10년이 넘은 곡이 숏폼 놀이를 통해 다시 소비된 것.
이 흐름은 2026년 상반기 들어 더욱 뚜렷해졌다. 아이오아이(I.O.I)의 ‘갑자기’는 후렴구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가 두산 베어스 양의지 선수 응원가와 닮았다는 반응에서 출발했다. 팬들 사이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양의지”라는 밈이 만들어졌고, 이후 각종 리믹스와 숏폼 영상으로 확산됐다. 온라인 유머였던 밈은 실제 양의지 선수와 아이오아이 멤버들의 챌린지, 시구 등으로 이어지며 음원 흥행에 힘을 보탰다.
아일릿의 ‘잇츠 미(It's Me)’ 역시 비슷한 경로를 탔다. tvN ‘놀라운 토요일’에서 나온 추임새와 테크노 비트가 숏폼에서 재가공됐고, 이정현의 ‘와’와 결합한 매시업 영상이 화제를 모으며 곡의 소비가 확대됐다. 이후 아일릿이 이정현과 함께 챌린지를 진행하면서 온라인 밈은 공식 프로모션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중소 기획사 소속 리센느의 사례는 밈이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리는데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멤버 미나미가 자체 콘텐츠에서 외친 “거제 야호”와 ‘파라파라 댄스’가 SNS에서 확산되면서 지난해 발매된 ‘러브 어택(LOVE ATTACK)’이 멜론 TOP100에 재진입했다. 해당 곡은 6월 초 멜론 차트에서 20위권까지 상승하며 팀의 ‘커리어 하이’를 경신했다. 특정 멤버의 화제성이 팀의 음악 재조명으로 이어진 셈이다.
실제 2026년 6월 아이돌그룹 브랜드평판에서도 이 흐름은 수치로 나타났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 따르면 리센느는 6월 아이돌그룹 브랜드평판 4위에 올랐고, 전월 대비 브랜드평판지수가 450.80% 상승했다. 코르티스 역시 같은 조사에서 2위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90.96% 상승했다. 앞서 5월 라이징 스타 브랜드평판에서는 코르티스가 1위, 리센느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코르티스는 밈이 하나의 세대 언어로 확장된 사례다. 수록곡 ‘영크리에이터크루(YOUNGCREATORCREW)’의 줄임말인 ‘영크크’는 젊고, 트렌디한 분위기를 뜻하는 신조어처럼 쓰였고, 반대 의미인 ‘늙크크’, ‘올크크’까지 파생됐다. 타이틀곡 ‘레드레드(REDRED)’의 “팔랑귀 팔랑귀”, “도가니 사리기” 같은 가사도 숏폼에서 반복 소비되며 그룹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이 같은 현상은 음악에만 머물지 않는다. 영화 ‘와일드 씽’(감독 손재곤)의 오정세의 극중 캐릭터 최성곤 역시 하나의 밈처럼 소비됐다. 영화의 대표곡 ‘니가 좋아’와 최성곤의 비주얼, 설정이 온라인에서 회자되며 캐릭터 팬덤이 형성됐고, ‘성곤탄신일’ 특별 상영회와 무대인사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관객들은 핑크색 아이템과 응원 플래카드를 들고 극장을 찾으며 영화 관람을 캐릭터 놀이의 장으로 확장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콘텐츠 소비가 놀이 참여형 소비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과거 챌린지는 기획사가 안무와 동선을 설계하고, 아티스트 간 교류로 노출을 만드는 방식이었다면 최근 밈은 대중이 먼저 발견하고 변형한다는 점에서 출발점이 다르다”라며 “중요한 것은 밈을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긴 흐름을 얼마나 빠르게 포착하고 자연스럽게 공식 콘텐츠로 연결하느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숏폼 플랫폼에서는 완성도 높은 콘텐츠보다, 따라 하기 쉽고, 변형하기 쉽고, 웃을 수 있는 포인트가 더 빠르게 퍼지는 경우가 많다”라며 “대중이 ‘나도 해볼 수 있겠다’라고 느끼는 순간, 소비자는 홍보 대상이 아니라 확산의 주체가 된다”라고 짚었다.
특히 밈은 중소 기획사에도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막대한 광고비나 대형 프로모션 없이도 하나의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타면 팀 전체의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밈의 발생은 예측하기 어렵고, 인위적인 연출이 강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사 대응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제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온라인 반응을 실시간으로 살피는 일이 중요해졌다”라며 “밈이 생겼을 때 무리하게 통제하기보다 팬들과 대중이 노는 방식에 맞춰 유연하게 올라타는 감각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결국 2026년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핵심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서 ‘대중이 어떻게 갖고 놀 수 있게 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그 콘텐츠가 얼마나 쉽게 재가공 되고, 공유하며 놀이가 될 수 있는지가 흥행의 또 다른 기준이 됐다. 이제 엔터테인먼트의 흥행은 기획사가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만든 흐름을 얼마나 빠르게 발견하고 함께 키우느냐에 달려있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셀럽미디어DB, 인스타그램, 롯데엔터테인먼트('와일드 씽')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