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세고, 더 리얼하게" 스턴트 배우가 본 여성 액션의 진화[Ce:포커스]
- 입력 2026. 07.01. 10:00:00
-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 한때 여성 액션 캐릭터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에 가까웠다. 액션이 있더라도 우아한 동작이나 몸의 선을 살리는 연출이 주를 이뤘고, 서사 역시 남성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K-콘텐츠 속 여성 액션은 확연히 달라졌다. 여성은 더 이상 구출의 대상이 아니라 직접 싸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됐다. 액션 역시 화려한 동작보다 묵직한 타격감과 현실성을 앞세우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 네임'에서 배우 한소희는 처절한 복수극의 중심에서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했고,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에서는 전도연이 킬러라는 설정을 설득력 있게 구현했다. 영화 '마녀' 시리즈,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 영화 '파과: 인터내셔널 컷' 역시 여성 캐릭터가 서사의 중심에서 액션을 이끄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여기에 오는 7월 31일 첫 방송되는 MBC 새 금토드라마 '유부녀 킬러'까지 평범한 워킹맘과 킬러를 오가는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며 여성 액션 서사의 흐름을 이어간다.
다양한 작품 속 변화만큼 현장도 달라졌다. 여성 스턴트 배우들의 역할은 커졌고, 관객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춰 더 강렬하고 현실감 있는 액션을 구현하기 위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 "1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여성 액션의 중심 이동
20년 넘게 현장에서 활동해온 여성 스턴트 배우 홍남희는 최근 여성 액션의 변화를 "10년 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표현했다.
그는 "예전에는 여배우들의 액션이 지나가는 장면 정도이거나 연약함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액션이 있어도 우아하거나 무용 같은 선을 강조하는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다"며 "'미옥'을 시작으로 '악녀', '언니', '마녀' 시리즈, '길복순', '발레리나' 등 힘 있고 파워풀한 여성 액션이 등장하면서 대중들도 여성 액션을 재미있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만큼 스턴트우먼들의 대역 비중도 커졌고 배우들과 감독들의 의존도도 높아졌다"며 "배우들도 직접 액션을 하고 싶어 하지만 이후 촬영 일정과 안전을 고려해 적절한 선에서 조율한다. 스턴트 배우들이 사전에 콘티 작업과 현장 테스트를 거쳐 안전을 확인한 뒤 배우들이 촬영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현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고 했다. 홍남희는 "10~15년 전만 해도 '대역 배우가 왔구나' 정도의 인식이었다면 지금은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이 먼저 반갑게 맞아준다"며 "그만큼 스턴트우먼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3년 차 여성 스턴트 배우 이가희 역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보호받거나 맞기만 하는 여성 캐릭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남성보다 앞장서 싸우거나 기술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캐릭터가 많아졌다"며 "현실적으로 작은 체격의 여성이 건장한 남성을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영화적 허용 안에서 설득력 있게 표현되면 관객들은 통쾌함을 느끼고 즐긴다"고 말했다.
이어 "액션 아카데미만 봐도 여배우들의 비중이 남성보다 높다. 아직 작품이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미리 액션을 배우러 오는 배우들이 많다"며 "그만큼 여성 액션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것을 현장에서 체감한다"고 덧붙였다.
11년 차 여성 스턴트 배우 이혜미는 여성 액션의 변화가 단순히 작품 수의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고 봤다. 그는 "예전에는 여성 캐릭터가 다소 단순하게 소비됐다면 지금은 성격과 환경, 성장 과정까지 입체적으로 그려진다"며 "평범한 직장인, 언니, 누나, 동생처럼 일상적인 여성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액션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는 점도 큰 변화"라고 말했다.
◆ "우아함보다 타격감"…달라진 여성 액션의 문법
최근 여성 액션은 동작의 아름다움보다 현실적인 타격감과 힘을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홍남희는 작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주문은 "더 힘 있게, 더 세게"라고 말했다. 그는 "현실적인 액션을 원하는 감독도 있고 영화적인 아이디어를 선호하는 감독도 있어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루즈한 동작보다는 시청자가 '와 시원하다', '진짜 아플 것 같다'고 느낄 수 있는 힘 있는 액션을 많이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이가희 역시 "배우들은 '이 캐릭터라면 이런 행동을 할 것 같다'는 감정과 연기에 집중하는 반면, 연출 감독은 화면에서 설득력 있게 보이는지, 무술감독은 액션의 완성도와 타격감이 잘 살아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며 "결국 현장에서는 힘이 느껴지는 액션을 만들어내는 것이 공통된 목표"라고 말했다.
이혜미는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대인 것 같다"며 "공감은 되지만 현실성을 완전히 벗어나서는 안 되고, 동시에 그 아픔은 관객에게 확실히 전달돼야 한다. 작품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양해지면서 하나의 액션 문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 AI·CG 시대에도 필요한 것은 결국 '리얼리티'
CG와 와이어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액션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진짜처럼 보이는 움직임'이다.
홍남희는 "실제로는 굉장히 강하게 부딪혔다고 생각했는데 모니터에서는 평범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원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세고 더 임팩트 있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의 눈이 빨라지고 액션의 편집도 빨라지면서 더 강한 액션을 요구하는 추세"라며 "하지만 100%를 구현하려 하면 사고가 난다. 늘 안전과 리얼리티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가희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국내외 콘텐츠의 퀄리티가 계속 높아지면서 관객들의 눈높이도 함께 올라갔다"며 "1분도 안 되는 장면을 위해 수없이 합을 맞추고 콘티를 수정한다. 촬영 직전까지도 '어떻게 해야 더 실제처럼 보일까'를 고민하며 액션이 계속 바뀌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준비를 완벽하게 해도 현장 상황이나 시간 때문에 원하는 만큼 구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모니터에서는 잘 나왔다고 해도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혜미는 "액션 연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연기"라며 "우리는 몸의 움직임뿐 아니라 아픔과 감정까지 표현하려고 한다. 액션 역시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의 일부라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액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
액션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가장 중요해지는 것은 안전이다. 홍남희는 "체력과 기본기, 테크닉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자신과 주변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액션팀은 서로 눈만 봐도 합을 맞출 수 있지만 배우들은 감정 연기까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스턴트 배우들이 더 많은 센스와 경험으로 맞춰준다"고 설명했다.
이가희는 "배우들은 작품에 들어가기 전 기초 체력과 액션 기본기, 작품에 필요한 액션 합을 집중적으로 훈련한다"며 "특히 얼굴이 나오는 장면은 배우가 직접 소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타격감과 동선을 반복해서 연습한다"고 말했다.
또 "무술팀은 로케이션 리허설부터 촬영이 끝날 때까지 배우와 스턴트 배우 모두의 부상 위험을 관리한다"고 덧붙였다.
이혜미는 "여성 액션 배우는 더 거칠고 힘든 액션을 해야 한다는 시선 속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기 때문에 체력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과 집중력을 갖추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 "인식은 달라졌다…이제는 전문성으로 증명할 차례"
세 사람은 여성 액션 작품이 늘어나면서 스턴트 배우를 바라보는 현장의 시선도 크게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홍남희는 "함께했던 배우들이 다음 작품에서도 다시 찾아주고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스턴트우먼도 전문성을 인정받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환경 개선을 요구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현장에서 더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후배들을 잘 이끌고 팀 전체가 전문성을 증명할 때 우리의 목소리도 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가희 역시 "촬영이 끝난 뒤 현장에서 박수를 받고, '멋있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무엇보다 다시 함께 작업하자는 연락을 받을 때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은 늘 변수가 많은 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경험과 센스를 갖춘 프로가 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이혜미는 "여성 액션 작품이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좋은 제작 환경과 안정적인 현장 시스템이 함께 갖춰졌으면 한다"며 "여성 스턴트 배우들도 더 큰 책임감과 애정을 갖고 전문성을 키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액션의 변화는 단순히 여성 캐릭터가 싸우는 장면이 늘어난 데서 그치지 않는다. 여성이 서사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배우와 스턴트 배우, 제작진이 함께 현실성과 안전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K-콘텐츠 속 여성 액션은 이제 '보호받는 존재'를 넘어 서사를 움직이는 주체로 자리매김하며 또 한 번 진화를 이어가고 있다.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해당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