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만’이 살리고 ‘체험’이 키웠다…극장가 바꾼 다섯 장면 [2026 상반기 결산]
- 입력 2026. 07.06. 06: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올해 상반기 한국 영화계는 오랜만에 회복이라는 단어를 자신 있게 꺼낼 수 있었다. 지난해까지 이어졌던 극장 침체와 한국 영화 위기론을 뒤로하고, 관객들은 다시 극장을 찾기 시작했다. 1700만 관객을 돌파한 ‘왕과 사는 남자’를 중심으로 ‘살목지’, ‘군체’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영화가 흥행을 이어갔고, 투자·배급사 쇼박스는 보기 드문 연속 흥행 기록을 써 내려갔다. 여기에 한국 영화의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복귀, 정부의 영화 할인 정책, 촬영지를 찾아가는 스크린 투어리즘까지 더해지며 상반기 영화계는 단순한 흥행을 넘어 산업 전반의 분위기를 바꾸는 전환점을 만들었다. 올해 상반기 극장가를 움직인 다섯 가지 키워드를 돌아봤다.
'왕과 사는 남자', '군체', '호프'
◆ ‘왕과 사는 남자’가 열어젖힌 천만 시대…극장이 다시 웃었다
상반기 극장가를 대표하는 작품은 단연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였다.
설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이 작품은 개봉 이후 꾸준한 입소문을 타며 장기 흥행을 이어갔다. 가족 단위 관객은 물론 젊은 세대까지 폭넓게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누적 관객 1690만 명을 돌파, ‘명량’(감독 김한민)에 이어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팬데믹 이후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최다 관객 기록도 새로 썼다.
흥행의 의미는 숫자 이상이었다. 한동안 “관객들이 더 이상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우려가 이어졌지만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면 여전히 극장 관람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체 극장 매출액은 3180억원, 관객 수는 3190만명으로 코로나19 이후 1분기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 영화 매출 점유율도 73.4%까지 치솟으며 시장 회복세를 이끌었다. 특히 ‘왕과 사는 남자’는 매출액 1518억원으로 역대 박스오피스 매출 1위에 오르며 상반기 전체 영화 시장을 견인했다.
◆ 장르 달라도 통했다…쇼박스가 만든 흥행 릴레이
올해 상반기 투자·배급사 가운데 가장 큰 웃음을 지은 곳은 쇼박스였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멜로 영화 ‘만약에 우리’(감독 김도영)를 시작으로 사극 ‘왕과 사는 남자’, 공포 영화 ‘살목지’(감독 이상민), 좀비 액션 ‘군체’(감독 연상호)까지 네 편이 잇달아 흥행하며 보기 드문 ‘4연속 흥행’을 완성했다.
주목할 부분은 장르가 모두 달랐다는 점이다. 로맨스, 사극, 공포, 좀비 액션이라는 서로 다른 색깔의 작품들이 각각 자신만의 관객층을 확보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연말에는 감성 멜로, 설 연휴에는 가족 관객을 겨냥한 사극, 봄에는 공포, 초여름에는 블록버스터급 장르물로 시즌별 관객 수요를 정확히 읽어낸 전략도 돋보였다.
홍보 방식 역시 달라졌다. 무대인사와 GV를 확대하고 촬영 비하인드, 배우 인터뷰, SNS 콘텐츠 등을 적극 활용하며 영화를 하나의 ‘참여형 콘텐츠’로 확장했다. 단순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들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서 자연스러운 입소문을 이끌어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쇼박스는 올해 1분기 배급사 매출액 1763억원, 점유율 55.4%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변화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투자·배급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 칸이 다시 부른 한국 영화…세계무대 존재감 회복
국제 영화계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이어졌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한국 영화가 공식 부문 초청작을 단 한 편도 배출하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달랐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최고 권위 섹션인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연상호 감독의 ‘군체’는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며 한국 영화의 존재감을 다시 알렸다.
특히 ‘호프’의 경쟁 부문 진출은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 이후 약 4년 만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최종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한국 영화가 다시 세계 영화계 중심 무대로 돌아왔다는 상징성을 남겼다.
여기에 한국인 신예 진미송 감독이 단편 영화 ‘사일런트 보이시스’로 라 시네프 부문 2등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미래 역시 밝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기성 감독들의 복귀와 신인 감독들의 약진이 함께 이어진 상반기였다.
◆ 반값 영화 시대…관객 발길 돌린 할인 정책
극장가 회복에는 정책적 지원도 힘을 보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국민 영화관람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며 6000원 할인권 450만장을 배포하기로 했다.
멀티플렉스 4사에서 제공하는 할인과 ‘문화가 있는 날’ 혜택을 함께 적용하면 성인 기준 4000원 수준에서도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되면서 가격 부담을 크게 낮췄다.
OTT 구독 서비스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영화관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콘텐츠뿐 아니라 관람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았다. 정부 역시 단순 할인 지원에 그치지 않고 중예산 영화 제작 확대와 첨단 제작 지원 등을 통해 한국 영화 생태계 회복을 위한 투자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 영화는 이제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
올해 상반기 가장 눈에 띈 변화는 관객들의 소비 방식이었다. 영화를 본 뒤 작품 속 공간을 직접 찾는 ‘스크린 투어리즘’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유배지인 강원 영월 청령포와 장릉 방문객을 크게 늘렸다. 영화 속 역사적 공간을 직접 걸으며 작품의 감동을 이어가려는 관객들이 몰렸고, 지역 관광과 소비 활성화로까지 연결됐다.
공포 영화 ‘살목지’는 또 다른 양상을 보여줬다. 영화의 배경으로 알려진 충남 예산 살목지는 SNS를 중심으로 인증 문화가 확산됐고, 새벽 시간 저수지를 찾는 차량 행렬이 이어질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온라인에서는 ‘살리단길’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영화가 하나의 체험 콘텐츠로 소비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같은 흐름은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단순히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작품의 배경과 역사, 공간까지 직접 경험하는 ‘디깅(Digging)’ 문화가 확산되면서 영화는 관광과 지역 경제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도 기능하기 시작했다. 실제 관광업계와 지방자치단체 역시 촬영지와 배경지를 활용한 관광 콘텐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영화의 파급력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 하반기에도 이어질까…‘반짝 흥행’ 아닌 체질 개선이 과제
올해 상반기 한국 영화는 단순히 천만 영화를 배출한데 그치지 않았다. 극장가에 활기를 되찾았고, 장르 다양성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해외 영화제에서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동시에 할인 정책과 스크린 투어리즘 등 영화를 둘러싼 소비 환경도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인 반등에 그칠지, 산업 전반의 지속적인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지켜봐야 할 과제다. 관객들은 이미 OTT와 극장을 자유롭게 오가는 소비 패턴에 익숙해졌다. 결국 극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과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얼마나 꾸준히 선보일 수 있느냐가 앞으로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하반기에는 ‘암살자(들)’(감독 허진호)을 비롯해 대형 한국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상반기에 다시 살아난 극장의 불빛이 연말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영화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쇼박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칸 영화제 SNS, 온라인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