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영화감독과 예능인의 블레이드 러너
입력 2026. 07.17. 18:20:08

장항준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장항준 감독은 지난 2월 4일 개봉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169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명량’(1761만 명, 김한민 감독)에 이어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에 오르는 새 기록을 썼다. 김한민 감독은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2007)에서 208만 명을 끌어모은 뒤 ‘최종병기 활’(2011)로 748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인 뒤 ‘명량’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한산: 용의 출현’(2022, 726만 명), ‘노량: 죽음의 바다’(2023, 457만 명) 등으로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물론 ‘핸드폰’(2009, 62만 명)으로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내 그는 확실한 흥행 감독 중의 한 사람으로 우뚝 서는 뚝심을 보여 주었다.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라는 기록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명예 자격증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왕과 사는 남자’에 밀려 2위 자리를 내준 ‘극한직업’(2019, 1626만 명)의 이병헌 감독을 보자. 각본가 겸 각색가로 필력을 쌓던 그는 2015년 데뷔작 ‘스물’(304만 명)로 단숨에 충무로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2018년 ‘바람 바람 바람’으로 119만 명을 끌어모아 다소 실망을 안기기는 했지만 특유의 유머 감각만큼은 또래 감독 중 단연 유니크하다고 인정받았다.

물론 ‘극한 직업’의 후속작 ‘드림’(2023)은 스코어 112만 명으로 흥행과 평가 모두 ‘극한직업’과는 사뭇 다른 결과를 보였지만 코미디 작가로서의 그의 가치는 아직 팔팔하게 살아 있다. 이제 장항준 감독 차례. 그의 영화 인생은 1996년 김태균 감독의 ‘박봉곤 가출 사건’에서 각본과 단역 출연으로 시작되었다. 즉 그는 작가 겸 단역 전문 배우 출신이다.


그러던 그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 작품은 2002년 ‘라이터를 켜라’였다. 역시 그는 각본과 단역 두 군데에 다리를 걸쳤고 흥행은 130만 명이라는, 그때 시장 상황으로서는 좋은 기록을 썼다. 그 배경에는 시네마 서비스라는 배급사, 더욱 정확히 말해 당시 충무로를 쥐락펴락하던 강우석 감독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출연진은 김승우, 차승원, 유해진, 이문식, 이원종 등 당시 코미디 영화로서는 ‘올 인’ 캐스팅이었다. 장 감독은 이듬해 ‘불어라 봄바람’을 연출했지만 ‘라이터를 켜라’에 비해 흥행, 평가 모두 좋지 않았다. 그 후속 연출 작품 ‘기억의 밤’(2017, 138만 명) 이전까지 15년 동안 동시 역할을 포함해 출연 12회, 각본 3회의 화려한 조, 단역 출연이 전부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론 그동안 방송 출연도 화려했다. 다만 ‘기억의 밤’ 이후에는 연출 활동이 활발해졌다. ‘리바운드’(2023, 70만 명), ‘오픈 더 도어’(2023, 1만 9000명), ‘더 킬러스’(2024, 1만 3000명) 등의 흥행 성적이 참담했던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러던 그가 드디어 감독 데뷔한 지 무려 24년 만인 올해 대형 사고를 쳤다. 그야말로 대기만성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전 세계적으로 작가주의와 흥행 능력을 동시에 인정받는 -봉준호, 박찬욱, 나홍진 등의 경우를 보면 데뷔작부터 엄청난 파워를 보여 준 것은 아니지만 한두 편 만에 이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것은 빠른 시일 내에 엄청난 결과로 나타났다. 즉 대기만성형은 드물었다.

오히려 미국의 경우 호러 영화사에서 영원히 선두에 남을 걸작 ‘엑소시스트’를 초기에 연출한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은 이후 정말 ‘엑소시스트’ 감독이 맞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반대 케이스가 더 많다는 이야기. ‘왕과 사는 남자’ 전까지 장 감독은 영화와 드라마의 조, 단역 출연은 물론 각종 예능에 빈번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사실 예능이 연기보다 더 많았다.

그건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을 내달릴 때 더욱 강도가 세졌고 현재는 아예 예능인에 가깝다. 지난달 KBS2 예능 ‘해피 투게더-혼자가 아니어서 좋아’의 고정을 꿰차더니 곧바로 SBS 플러스 포함 5개 채널에서 방송되는 예능 ‘시간추적자 설록’의 사실상 리더 MC로 나서고 있다. 자, 과연 장항준은 영화감독인가, 예능인인가? ‘아니, 그따위가 뭐 그리 중요한가?’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드라마감독, 연극감독, 뮤지컬감독이라는 단어는 없다. 띄어 쓴다. 그러나 영화감독만큼은 한 단어로 붙여 쓴다. 영화가 다른 대중문화 콘텐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기보다는 고대 그리스의 연극 다음에 생긴 매우 선진적이고 개혁적이며 특별한 콘텐츠라는 점에서 그 결이 다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세하다는 게 아니라 독자적이라는 뜻.


그렇다면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21세기 현시점에서 보았을 때 그는 작가이자 연예인이다. 대중의 인기(지지)로 먹고사는 사람은 크게 정치인, 연예인, 프로 스포츠 선수를 들 수 있다. 연예인과 프로 스포츠 선수에게는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정치인에게는 다소 어색한 표현이다.

관객이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나름대로 자신이 영화 좀 볼 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의 바로미터는 감독이기 마련이다. 훌륭한 감독이라면 시나리오가 다소 약해도, 배우의 지명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연출 솜씨로 긍정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배우의 연기력이 함량 미달일지라도 감독의 역량은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

여기까지는 작가이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연예인이다. 그러한 능력으로 흥행에 성공하고,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그런 지명도를 바탕으로 방송이나 유력 행사에 출연함으로써 팬들을 몰고 다닌다면 그는 스타가 맞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영화감독이 예능인과 혈통이 똑같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없지 않다. 유재석과 장항준은 다르다.

영화감독이나 예능인이나 소비자에게 재미를 주는 역할임은 맞는다. 그런데 봉준호, 박찬욱, 나홍진이 예능에서 게스트로 등장해 가벼운 농담을 던지거나 진행을 맡은 적이 있는가? 이창동이 조, 단역을 하고 예능에서 킥킥댄 적이 있나? 만약 그런 논리라면 지금까지 예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어야 할 영화감독은 이병헌이 아닐까?

2016년 영화 ‘곡성’으로 관객 678만 명을 동원한 흥행 기록보다 그 내용과 완성도에 있어서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던 나홍진 감독이 지난 15일 개봉된 ‘호프’로 첫날 33만 명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지도를 바꾸고 있다. 무려 10년 만이다. 대다수의 영화감독이 그렇다. 장 감독도 그렇게 공백이 길다. 다만 그 공백기에 열심히 배우와 예능을 한다는 게 다른 감독과 다르다.

영화를 규정하는 명제 중에 가장 유명한 테제는 '꿈의 공장'이다. 그 영화의 총책임자인 영화감독이 역사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형식 예능에서 웃음을 만들고, 토크 쇼에서 예능인들과 함께 스타 작가인 아내 김은희에 굴욕당한 이야기로 재미를 준다. 그 작가의 시나리오와 연출에서 과연 관객은 꿈을 볼 수 있을까?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셀럽미디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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