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 밖으로 나온 공연…이머시브, 공연계 새 흐름 된 이유[Ce:포커스]
- 입력 2026. 08.04. 06:00:00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최근 방탈출, 체험형 전시 등 몰입형 콘텐츠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공연계에서도 이머시브(Immersive) 형식이 새로운 흐름으로 주목받고 있다.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기존 관람 방식을 넘어, 관객이 직접 작품 속 공간을 이동하고 이야기에 개입하는 공연들이 늘어나고 있다.
'슬립노모어'-'인사이드 더 플레이 : 룰렛'-'인사이드 더 플레이 : 데스게임'
현재 공연 중인 이머시브 공연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낸다. '슬립노모어'는 건물 전체를 무대로 활용해 관객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신만의 동선을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공연을 관람하더라도 어떤 인물을 따라가고 어떤 장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이야기를 경험하게 된다.
또 다른 국내 이머시브 공연들도 연이어 등장했다. '인사이드 더 플레이' 시리즈는 관객의 선택과 참여를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한다. '군체', '룰렛', '데스게임' 등 각 작품은 관객이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극의 일부로 참여하며, 선택에 따라 전개와 분위기가 달라지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처럼 이머시브 공연은 정해진 이야기를 보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경험하고 완성하는 것으로 공연 관람의 방식을 확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공연계에서 이 같은 이머시브 형식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 관람에서 경험으로…변화하는 콘텐츠 소비 방식
이머시브 공연의 확산은 단순히 새로운 형식의 등장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변화한 결과로 보고 있다.
공연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방탈출, 체험형 전시 등 몰입형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의 확산으로 설명한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직접 참여하고 특별한 경험을 얻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인사이드 더 플레이: 룰렛' 제작사인 스포트라이트 김민석 대표는 "최근 젊은 관객층을 중심으로 가만히 앉아서 관람하는 수동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관객이 직접 극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는 능동적인 관람 방식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존 공연 관람이 무대 위 배우와 객석의 관객이라는 명확한 구분 속에서 이뤄졌다면, 이머시브 공연은 그 경계를 허물고 있다.
특히 OTT와 AI 기술의 발전으로 콘텐츠 접근성이 높아진 환경도 이머시브 공연의 성장 배경으로 꼽힌다.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공연만이 제공할 수 있는 현장성과 실시간 상호작용이 차별화된 가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AI와 OTT가 일상화된 시대에는 단순히 앉아서 보는 것만으로 기존 공연이 가진 매력이나 차별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며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실시간 상호작용과 몰입감이 이머시브 콘텐츠의 강력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관객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다
이머시브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의 역할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던 기존 공연과 달리, 관객은 작품 속 인물이자 이야기의 일부로 참여하며 공연을 함께 만들어간다. 김 대표는 "기존 공연이 관객을 수동적인 '관찰자'로 두었다면, 이머시브 공연은 관객을 주도적인 '참여자'로 변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 관객들이 이머시브 공연을 찾는 이유에서도 확인된다. 관객 A씨는 "처음 이머시브라는 장르를 접했을 때는 공연을 어떻게 진행하는 방식인지 신기하고 궁금했다"며 "이후 SNS를 통해 접한 작품을 계기로 직접 관람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머시브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이 쉽게 몰입하고 작품의 일부로서 직접 경험한다는 점"이라며 "같은 공연이라도 참여 방식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재관람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인사이드 더 플레이 :룰렛'(이하 '룰렛')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공연이다. '룰렛'은 관객의 직접적인 선택과 참여에 따라 전개와 결말이 달라진다. 같은 작품을 관람하더라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김 대표는 "관객이 단순한 방관자에 머물지 않고 극의 일부이자 하나의 등장인물로 작동하기 때문에 더욱 깊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공연을 경험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기존 무대 공연이 시각과 청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달했다면, 이머시브 공연은 공간을 직접 이동하고 배우와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하며 오감을 활용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처럼 이머시브 공연은 단순히 무대 형식을 바꾼 것이 아니라, 관객과 공연의 관계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 성장하는 이머시브 시장…지속가능성은 과제
이머시브 공연은 공연계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시장이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최근 몰입형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공연뿐 아니라 방탈출, 체험형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머시브 콘텐츠가 확산되면서 문화 소비 방식 역시 '관람'에서 '경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는 "2022년 첫 쇼케이스를 선보였을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이와 비슷한 시도가 거의 없었지만, 현재는 다양한 몰입형 콘텐츠가 등장하며 젊은 관객층의 호응을 얻고 있다"며 "문화산업의 패러다임이 소비하는 문화에서 오감으로 경험하는 문화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흐름은 실제 공연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7월 프리뷰 공연으로 국내 관객과 처음 만난 '슬립 노 모어 서울'은 최근 개막 1주년을 맞으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뉴욕과 상하이에서 장기간 흥행한 데 이어 국내에서도 꾸준한 관객을 확보하며 이머시브 공연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창작 이머시브 공연 역시 관객층을 넓혀가고 있다. '룰렛'은 관객의 선택에 따라 매회 다른 전개와 결말을 경험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공연 후기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이에 같은 공연이라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관람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다만 관객 참여가 이머시브 공연의 장점인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의견도 있다. 관객 A씨는 "작품마다 관객 참여의 정도가 다르지만, 관객이 이를 사전에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작품에서 참여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관객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참여 요소가 적은 작품에서 일부 관객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다른 관객이나 배우가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공연 공간만 변화시키는 경우 어디까지를 이머시브 공연으로 볼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관객 참여와 몰입 경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또한 아직 산업 전반의 규모나 수익 구조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머시브 공연은 관객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위해 일반 공연보다 적은 관객만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체험형으로 공연이 진행되는 만큼 배우와 운영 인력은 더 많이 필요해 제작비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높은 고정비를 감당하는 동시에 흥행과 작품성을 확보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전문 창작 인력의 부족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국내에서는 최근 들어 활발하게 떠오르는 만큼 기존과 다른 연출 방식과 관객 참여 구조를 이해하는 작가와 연출가 수는 적을 수밖에 없다. 이에 김 대표는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머시브 전문 창작 인재를 육성하는 시스템이 시급히 구축되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처럼 관객의 참여를 중심에 둔 공연은 이제 하나의 실험을 넘어 새로운 공연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지, 공연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는 앞으로 시장의 성장과 제도적 기반 마련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미쓰잭슨, 롯데컬처웍스, 스포트라이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