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음문석 “양배도 몰랐어요” 고양이 장면의 비밀 [인터뷰]
입력 2026. 08.04. 14:23:44

'호프' 음문석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저희 집에 있대니께유.”

영화 ‘호프’(감독 나홍진)를 본 관객이라면 한 번쯤은 따라 했을 대사다. 평범한 충청도 사투리 같지만 이 한마디는 영화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개봉 전까지 철저히 감춰졌던 양배는 후반부 서스펜스를 폭발시키는 핵심 인물로 떠올랐고, “외계인보다 더 외계인 같다”는 봉준호 감독의 극찬까지 이끌어냈다. 영화를 본 관객들 역시 “양배만 생각난다”, “‘호프’ 최고의 히든카드”라는 반응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작 음문석은 “과대평가를 받은 것 같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모든 공은 나홍진 감독에게 돌렸다. 자신은 감독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디테일을 채워 넣었을 뿐이라고 했다. 캐릭터를 향한 호평보다 ‘좋은 감독을 만난 배우’라는 사실이 더 감사하다는 그의 말에서는 진심이 묻어났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음문석은 ‘호프’의 숨겨진 주역이었던 양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배우 음문석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양배를 처음 마주한 관객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독특한 비주얼이다. 누렇게 착색된 치아와 투박한 옷차림, 어딘가 사람 같지 않은 표정까지. 등장만으로도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지만 의외로 이런 설정들은 시나리오에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았다. 음문석은 캐릭터의 외형 역시나홍진 감독과 함께 하나씩 완성해나간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비주얼적인 부분은 없었어요. 피팅 회의하면서 치아는 양배에게 넣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치아의 색깔, 착색된 디테일까지 다시 만들었어요. 감독님이 미술과 전체적인 미쟝센과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셨죠. 영화를 볼 때 이상한 게 정성이 많이 들어갔어요.”



양배를 더욱 독특하게 만든 또 하나는 충청도 사투리였다. 느릿한 말투 속에서도 어딘가 낯설고 기묘한 리듬이 살아 있는 인물이었다. 충청도 출신인 음문석은 오디션 때부터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사용했고, 나홍진 감독 역시 그 부분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감독님과 미팅 때 이야기를 하면서 ‘곡성’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봤어요. 전라남도 사투리에 뉘앙스가 있거든요. 그런데 충청도 사투리의 뉘앙스가 보여서 궁금했어요. 감독님께선 캐치를 잘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충청도 토박이인데 오디션 때 충청도 사투리로 해달라 하셨어요. 네이티브니까 대화하면서 그 느낌을 넣었는데 그 모습을 봤을 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양배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비밀을 쥔 인물이지만, 개봉 전까지는 존재 자체가 철저히 숨겨졌다. 개봉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와 별개로 음문석의 연기는 호평이 이어졌고, 봉준호 감독은 “외계인보다 더 외계인 같다. 구강과 하관의 움직임 자체가 놀랍다”라고 극찬했다.

“너무 죄송스러운 게 많아요. 과대평가가 된 것 같거든요. 제 친구들에게도 항상 그래요. ‘내 연기가 천천히, 늦게 뽀록이 났으면 좋겠다’라고 많이 얘기하죠. 그래서 미친 듯이 연스바는 것도 있어요. 칭찬을 해주시니까 몸 둘 바 모르겠어요. 작품 하면서 나홍진 감독님을 만난 게 제 인생에 한 획을 그은 것 같아요. 대중들이 아웃풋에 대한 것만 보고 평가를 해주시는데 많은 디테일을 만들어주셨죠. 저 혼자 할 수 없는 캐릭터인데 디테일을 하나하나 잡아주시면서 캐릭터를 만들어주셨어요. 저는 너무 감사해요.”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 방식 역시 기존과는 많이 달랐다. 감독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보다 배우와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캐릭터를 함께 완성해나갔다는 것. 음문석은 그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고 떠올렸다.

“저는 쿵짝이 너무 잘 맞았어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죠. 양배 대사 중에 주도적인 색깔, 복합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만큼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감독님이 ‘네 생각은 어때? 리허설 때 해보자. 양배라면 그럴 수 있어’라고 하시면 제가 하고. 또 감독님이 ‘양배야 조금만 이렇게 해봐. 오케이! 이렇게 갑시다’라며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살이 입혀지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현장이 너무 재밌었어요.”



이어 그는 감독이 생각한 양배와 자신의 해석이 충돌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빈칸을 함께 채워나간 작업이었다는 설명이다.

“일단은 다르지 않았어요. 감독님이 생각했던 캐릭터에 디테일한 살을 붙이는 작업을 저도 고민했죠. 감독님은 너무 명확하셨어요. 이게 좋겠다고 순간적으로 선택하는 분이 아니에요. 캐릭터가 있으면 디테일하게 꽉 채우려고 하셨죠. 저는 감독님이 만들어 놓은 양배란 틀 안에서 빈곳이 있으면 채워가며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과 다르게 제가 설득시킨 게 아닌, 양배 캐릭터에 제가 생각하는 디테일한 부분을 하나로 맞춰져서 감독님이 생각하는 캐릭터가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영화 속 양배는 마지막까지 쉽게 정의되지 않는 인물이다. 특히 극 후반부 차량 핸들을 갑자기 꺾은 뒤 “고양이가 튀어나왔다”고 말하는 장면은 개봉 이후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해석을 낳았다. 정말 고양이를 본 것인지,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인지 의견이 엇갈렸다. 음문석 역시 촬영 당시 이 장면만큼은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제일 많이 고민했어요. 제가 설정했던 자체가 고양이를 보고 피했다면 마침표가 찍힌 거잖아요. 이 장면은 누구한테 내 연기가 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했으면 잡힐 것 같더라고요. 양배도 모르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대사를 던졌어요. 영화를 보시고 난 뒤 열린 결말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들 땐 제가 확신을 가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양배도 모르게 촬영했던 기억이 있어요. 캐릭터가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스크린에서 대사, 느낌을 표현해줘야 하는데 서브텍스트가 중립을 유지하지 않으면 걸릴 것 같았어요. 도덕적인, 사회적인 판단을 한 게 아닌, 아이로서 내뱉은 말 같은 거죠. 양배는 그냥 자랑하려고 했던 부분이었는데 보신 분들은 그래서 이상하고, 그 부분이 서스펜스로 다가온 것 같아요.”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온라인 반응을 찾아볼 법도 했다. 하지만 음문석은 일부러 검색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랜 무명 시절을 거치며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새긴 말이 ‘중심을 잃지 말자’였기 때문이다.

“제가 활동한지 생각보다 꽤 오래 됐어요. 개그맨 빼곤 다 해봤죠. 그러면서 제가 터득하고, 느낀 건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에요. 너무 업 되지도, 다운되지도 말자. 그래서 일부러 어디 들어가서 찾아보는 버릇은 없어요. 기사가 뜨면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기죠. 그런데 얘기가 많다는 것은 관심이 많다는 거니까 감사해요. ‘양배는 외계인 같다’, ‘진짜 못생겼다’ 리뷰는 봤어요. 하하. 이슈가 있으니 보내주는 거니 재밌더라고요. 많은 해석이 나오는 거 좋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영화에 대한 관심이니까. 나홍진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고민하게 만드는 자체가 너무 좋은 작품이란 생각을 해요. 다양한 시각으로 봐주시니까 너무 재밌고요.”

개봉 이후 무대인사에서도 양배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다만 분장 탓인지 정작 관객들은 음문석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는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 한마디로 먼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며 웃었다.

“무대인사에 가면 저를 못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제가 그 양배라니께유~’라고 대사를 먼저 하며 인사를 해요. 하하. 무대인사에서 반겨주시니까 감사하더라고요. 저는 이전 작품들에서 특수전문배우, 머리 스타일링을 많이 한 사람이었어요. 어떤 분들은 악역, 코미디를 구분 지으시는데 저는 캐릭터를 잡을 때 희로애락이 있다고 생각해요. 4개가 항상 녹아있는 캐릭터로 만들려고 하죠. ‘희’가 많은 캐릭터를 맡았어도 다양한 결의 ‘희’가 있기에 아직 보여드릴 게 많다고 생각해요. 여러 캐릭터를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실제 음문석 역시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고, 대화가 잠시 비는 순간에도 먼저 분위기를 풀어냈다. 그는 지금의 성격 역시 타고난 것보다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부분이 크다고 털어놨다.

“개인적으로 밝은 사람이 맞긴 해요. 어릴 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제가 밝지 않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더라고요. 후천적으로도 더 그렇게 살다 보니까 어디선가 공기가 멈추면 불안하고, 띄워야할 것 같아요.”

늘 밝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을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오래전부터 스스로에게 되뇌어온 문장을 들려줬다.

“그럴 땐 ‘내가 서울에 어떻게 올라왔는데’라고 되새겨요. ‘여기서 포기할 거야? 내려갈 거야? 포기 하지 마. 사람들이 널 찾는 사람이 되어야지. 불편해하고 멀리하는 사람이 되면 안 돼’라는 저만의 마인드셋이 있어요.”

‘호프’를 통해 배우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은 지금도 그의 시선은 다음을 향해 있었다. 들뜨지도, 그렇다고 자만하지도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면 곧바로 연습실로 향해 또 다른 작품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중심을 지키자. 너무 업 되지도, 다운되지도 말고. 지금도 어떻게 보면 나홍진 감독님 덕분에 양배라는 캐릭터에 많은 사랑을 주시고 계신데 저는 인터뷰가 끝나면 연습하러 갈 거고, 다음을 준비하려고 해요. 그게 저에겐 첫 번째 마인드셋이죠. 최근엔 챌린지를 하면서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이런 경험이 너무 좋아요. 연기를 하니까 이런 삶도 살아보고, 더 열심히 해보는 게 좋아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고스트 스튜디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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