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팝을 넘어 문화 영토를 바꾸는 '팬덤의 힘'[Ce:포커스]
- 입력 2026. 08.08. 05:00:00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K-팝 산업의 정체성이 '팬덤'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 팬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예능이 등장하고, 팬덤 자체에 상을 주는 축제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등 팬덤을 산업의 한 축으로 세우려는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
있지 콘서트 전경
최근 아이돌 팬덤 문화를 재조명한 웨이브 예능 '팬덤스테이지'가 공개됐다. god, 빅뱅, 샤이니, 엑소, 몬스타엑스, 세븐틴, 데이식스, 트와이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라이즈 등 10개 팀의 팬덤을 대표하는 참가자가 출연해 티켓팅, 응원법, 콘텐츠 제작 등 실제 팬 활동에서 착안한 미션을 수행하는 서바이벌 형태의 프로그램이다.
팬덤을 산업의 전면에 세우는 흐름은 국가 단위 행사로도 이어지고 있다. 바로 대중문화교류위원회가 기획하고 있는 '2027 패노메논'이 그 주인공이다.
앞서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출범식에서 '팬(Fan)'과 '현상(Phenomenon)'을 합성한 패노메논'을 언급하며 K팝, K콘텐츠, K푸드 등 K컬처를 아우르는 페스티벌을 개최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박진영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7 패노메논'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기획하고 있는 이 행사는 아티스트가 아닌 팬덤에 상을 수여하는 새로운 개념의 시상식이다. 어떤 팬덤이 가장 뜨거웠는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해 최고의 팬덤을 선정하고, 가수가 팬덤 대신 대리 수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박진영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K팝 팬들은 단순히 음악을 소비하는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가 된다. 자신이 사랑하고 지지하는 가수의 마케팅과 홍보를 팬들이 직접 한다"라며 "이 산업을 전 세계에 제안하고 대한민국이 리더가 되자는 것"이라고 '팬덤'의 힘을 강조했다.
정부는 내년 12월 개최 예정인 이 행사에 방문객 약 52만 명, 경제적 파급 효과 1조 원 이상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2028년 5월부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패노메논 페스티벌'도 계획하고 있다.
이렇듯 최근 '팬덤'을 K-팝 문화의 중심에 세우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의 탄생부터 이어진 팬덤 문화는 친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계기는 방탄소년단(BTS)의 팬덤 '아미(ARMY)'이다. 아미의 사례는 자발적인 스트리밍과 번역, 기부 활동 등으로 조직력을 입증하며, K-팝 팬덤이 하나의 문화 현상이자 산업 변수로 재평가받는 계기가 됐다.
팬덤은 이제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아티스트와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이자, 소비와 생산 행위를 아우르는 '프로슈머(prosumer)'로 여겨진다. 팬덤이 콘텐츠를 반복 소비하고 직접 확산시키는 힘이 성장 동력이 된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업계에서는 팬덤 내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아티스트 콘텐츠 제작 및 프로모션 방향을 정하거나, 팬들의 참여와 반응을 독려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시도하고 있다.
팬덤 문화는 더 이상 K-팝에만 머물지 않는다. 극장가에서는 같은 작품을 반복 관람하는 'N차 관람'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과 '체인소맨: 레제편' 등은 N차 관람 비중이 10%를 넘어섰다. CGV 측은 애니메이션 등 팬덤형 콘텐츠의 영향으로 10대 관객이 코로나19 이전보다도 늘었다고 분석했다.
웹툰 업계에서도 팬덤을 겨냥한 오프라인 사업이 확대되는 추세다. 웹툰 굿즈 판매를 담당하는 온라인 브랜드 '웹툰프렌즈'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700%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팬덤 문화가 다른 IP 산업의 소비 방식까지 바꾸고 있는 셈이다.
가요계는 '팬덤스테이지' '패노메논'처럼 팬덤을 산업의 중심에 세우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다만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팬덤이 가진 자발성과 다양성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팬덤은 애정을 기반으로 자발적으로 형성된 공동체다. 이들이 아티스트의 결과물을 소비하고 퍼트리거나 2차 가공물을 생산, 유포하는 모든 행위를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한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요계 관계자 A씨는 "팬덤은 기업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팬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감에서 형성되는 문화이기 때문에, 산업적 지원도 팬 문화를 존중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방향이어야 한다"라며 "이런 균형이 잘 이뤄진다면 케이팝뿐만 아니라 공연, 관광,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와의 연계도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팬덤 중심 산업화가 대형 기획사와 이미 큰 팬덤을 보유한 팀 위주로 편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대형 기획사나 이미 큰 팬덤을 보유한 팀들만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되는 지점이다. 중소 기획사나 신인 아티스트들의 설 자리가 더 좁아지지는 않을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선행돼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A씨는 "팬덤 산업이 커질수록 대형 기획사에 관심과 자원이 집중되는 현상은 어느 정도 나타날 수 있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기획사에서도 독창적인 콘셉트와 팬 친화적인 소통을 통해 강한 팬덤을 구축한 사례는 꾸준히 있었다"라며 "팬덤의 절대적 규모보다 팬들과 얼마나 진정성 있게 관계를 이어가느냐가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라고 낙관적으로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이러한 기회가 일부에 그치지 않도록 팬들이 다양한 아티스트와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함께 조성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팬덤 산업도 더욱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팬덤을 K-컬처 미래 먹거리로 세우려는 시도가 시작된 가운데, 결국 그 성패는 팬덤이 가진 자발성이라는 특성을 어떻게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JYP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셀럽미디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