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서 들었는데 AI였다…일상 파고든 ‘AI 음악’ [Ce:포커스]
- 입력 2026. 08.11. 06: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취향이라 가수를 찾아봤더니 AI였다”, “AI 노래인 줄 모르고 계속 들었다”
인공지능(AI) 음악을 둘러싼 대중의 반응이 달라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AI가 만든 노래’라는 사실 자체가 관심을 끌었다면 이제는 음악을 먼저 듣고, 좋아하고, 차트에서 찾아본 뒤에야 제작 과정에 AI가 활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이 낯설지 않다. AI 음악은 더 이상 기술을 체험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 듣는 실험물이 아니다. 숏폼과 음원 차트, 플레이리스트를 넘어 벨소리와 통화연결음까지 파고들며 어느새 일상적인 음악 소비의 한 축으로 들어오고 있다.
최근 이 같은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곡이 M.사스케(M.Sasuke)의 ‘GG EZ’다. 지난 5월 공개된 ‘GG EZ’는 빠른 비트와 반복적인 후렴구, 리듬을 살린 안무를 앞세워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등 숏폼 플랫폼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NCT WISH 시온·리쿠, 라이즈 쇼타로, 투어스 경민, 아이브 안유진, 있지 예지, 엔하이픈 선우, 앤팀 니콜라스 등 아이돌들이 잇달아 챌린지에 참여했고 방탄소년단 정국까지 가세하며 화제성을 키웠다. 애플뮤직 국내 차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건 순서다. 대중이 ‘AI 음악’이어서 ‘GG EZ’를 찾아 들은 것이 아니었다. 노래와 안무가 먼저 인기를 얻었고, 이후 M.사스케가 AI 툴을 활용해 음악을 제작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온라인에서는 “릴스에서 듣고 빠졌는데 AI라는 걸 알고 놀랐다”, “가수를 찾아봤다가 AI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AI라는 꼬리표가 음악을 듣게 만드는 이유가 아니라 음악을 들은 뒤 알게 되는 제작 정보가 된 셈이다.
AI 음악의 존재감은 일회성 숏폼 유행에 그치지 않는다. ‘조선힙합’은 보다 직접적으로 AI 음악이 대중의 생활권까지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이야기와 한국인의 정서를 현대적인 음악으로 풀어내는 조선힙합은 사람이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기획한 뒤 AI 음악 기술을 도구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다. 운영자인 이호용 대표는 기존 음악 산업과 달리 유튜브를 통해 개인 창작자가 자신의 정서로 만든 음악을 곧바로 청취자와 만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조선힙합은 2026년 21주차 써클차트에서 ‘마음의 숲’으로 BGM차트 1위, ‘이래도 지랄 저래도 지랄’로 벨소리와 통화연결음차트 1위를 차지하며 3관왕에 올랐다. AI를 활용한 음악이 단순히 유튜브에서 호기심으로 클릭되는 콘텐츠를 넘어 누군가의 배경음악이 되고, 휴대전화 벨소리와 통화연결음으로 선택되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음악을 발견하는 경로도 달라졌다. 과거 AI 음악은 유명 가수의 목소리를 다른 노래에 입히는 ‘AI 커버’를 중심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가수와 노래의 조합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구현했느냐가 재미의 핵심이었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원곡의 장르와 시대적 질감 자체를 바꾸거나, 처음부터 AI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콘텐츠가 늘고 있다. 익숙한 노래를 재즈나 R&B, 복고풍 등 원하는 분위기로 변주해 듣고, 특정 상황에 맞는 음악이 없다면 직접 만들어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하는 식이다.
AI 음악의 양 자체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음원 플랫폼 디저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하루 약 7만 5000개의 완전 AI 생성곡이 플랫폼에 등록됐다. 전체 신규 음원의 약 44%에 해당한다. 2025년 초 하루 1만곡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여 만에 7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이제 음악 산업이 AI 음악의 존재 여부를 논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음악이 시장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AI를 활용해 실제 음원을 발표하고 있는 프로듀서 웨이브 콜(Wave Call) 역시 이 같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웨이브 콜은 지난달 29일 두 번째 싱글 ‘넌 내 맘을 빼앗았고 난 온종일 생각하지’를 발표했다. AI 보컬 기술을 활용한 곡으로, 전체적인 작사와 작곡, 편곡은 웨이브 콜이 맡았다. 해당 곡은 발매 다음 날 오전 1시 기준 카카오뮤직 실시간 TOP100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웨이브 콜은 AI 음악의 대중화를 묻자 “실제적으로 차트 진입이라든지 AI 음악이 이제는 체감되는 현실인 것 같다”라며 “차트에 있는 노래를 들어보게 되면서 나중에 AI를 활용한 음악인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AI 음악을 찾아서 듣는 것이 아니라 차트에서 음악을 발견한 뒤 제작 방식을 확인하는 역전 현상이 실제 창작 현장에서도 감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AI가 음악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신 만드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웨이브 콜은 자신의 작업에서 작사와 작곡에는 AI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신 편곡 과정에서 세밀한 연주가 필요한 부분에 AI의 도움을 받거나 보컬에 AI 기술을 주로 활용한다.
웨이브 콜은 “작사·작곡에는 AI를 전혀 활용하지 않고 있으며 창작자로서는 작사·작곡에 AI를 활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며 “다만 편곡적인 부분에서 디테일이 필요한 연주에는 AI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고, 보컬은 AI를 주로 사용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AI 보컬이 인간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대체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웨이브 콜은 “AI 보컬에는 아직 미세한 노이즈가 섞여 이질적인 감이 있다”면서도 “충분히 곡의 특성을 잘 살리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상당히 많이 발전돼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했다.
결국 AI 음악이 빠르게 일상으로 들어올수록 ‘어디까지를 사람의 창작으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욱 중요해진다. AI를 활용했다고 해도 사람이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만들고 음악적 방향을 결정한 뒤 일부 연주나 보컬에 기술을 이용한 음악과, 생성형 AI가 대부분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음악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느냐는 문제다.
웨이브 콜 역시 AI의 활용 범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사·작곡에 대한 규제는 무조건 필요하다. 창작이 무질서해지는 부분이 생길 수 있어 AI로 곡을 쓰는 부분은 인정해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보컬이나 인간이 연주하기 힘든 부분에서는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플랫폼과 음악 산업 역시 이미 AI 음악을 어떻게 다룰지를 고민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디저는 AI 생성 음악에 명시적인 태그를 붙이기 시작했고, 스포티파이는 스팸성 트랙과 사칭 계정 단속에 나섰다. 타이달은 완전 AI 생성곡에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는 정책을 내놓았다. AI 음악을 무조건 배제하기보다는 AI가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 기존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는지 등을 구분할 기준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권리 보호를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함께 AI 생성 음악과 딥페이크 음원을 식별하는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AI 음성을 구분하고 생성 음원의 유통 경로를 확인해 실연자와 원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할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대중의 인식과 제도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 디저가 지난해 8개국 9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7%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완전 AI 생성곡과 인간이 만든 곡을 구분하지 못했다. 반면 80%는 AI 생성곡에 이를 명확하게 표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귀로는 구분하기 어려워졌지만 무엇을 듣고 있는지 알 권리에 대한 요구는 오히려 커지고 있는 것이다.
AI가 음악 제작의 문턱을 낮출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일정 수준의 멜로디와 편곡, 보컬을 기술로 빠르게 구현할 수 있다면 단순히 ‘잘 만든 음악’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무엇을 이야기할지, 어떤 감정을 담을지, 수많은 결과물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다듬을지는 여전히 창작자의 몫으로 남는다.
웨이브 콜도 AI 시대의 경쟁력을 결국 창작자의 고유성에서 찾았다. 그는 “AI에 모든 부분을 의지하게 된다면 곡의 다양성이 사라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라며 “하지만 창작을 제외하고 필요한 부분에서 AI의 도움을 잘 받는다면 해외에서도 K팝의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AI 음악을 들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이 기술은 이미 대중의 귀를 통과했다. 숏폼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를 따라 춤추고, 유튜브뮤직이 추천한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마음에 든 노래를 벨소리와 통화연결음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때로는 한참을 듣고 나서야 그 음악에 AI가 활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AI라서 듣는 음악’에서 ‘듣고 보니 AI였던 음악’으로. AI 음악을 둘러싼 가장 큰 변화는 기술의 발전보다 어쩌면 이 순서의 변화에 있다. 이제 음악 산업 앞에 놓인 질문 역시 AI가 음악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다. 이미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선택받는 AI 음악을 어디까지 창작으로 인정하고 어떻게 인간 창작자의 권리와 공존시킬 것인가. 기술보다 늦게 도착한 제도와 산업이 답해야 할 차례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유튜브 캡처, 브라더후드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