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요태 빽가, 독립운동가 후손이었다…데뷔 22년만 고백한 이유는?[셀럽캡처]
- 입력 2026. 08.15. 12:20:08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그룹 코요태 빽가가 독립운동가 진희창 선생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빽가
15일 유튜브 채널 '빽가언니'에는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 속 빽가는 차분히 쇼파에 앉아 "사실 한번도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꺼내재 않은 이야기가 있다"라며 "사실 내 외증조부님께서 독립운동가셨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코요태 멤버들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밝힌 적 없다며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께서 '우리 집은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다. 어디 가서 기 죽지 말고 긍지를 가지고 살아라'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외증조부님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분의 업적에 얹혀 가거나 하는 느낌이 있을까봐 조심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이제서야 밝히는 이유에 대해서는 광복절을 맞이해 어려운 상황에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돕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빽가는 "예전부터 독립운동가의 후손 분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산다는 소식을 들어왔다"라며 "예전에는 내가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나 여력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금 그럴 수 있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외증조부인 경림 진희창 선생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있을 때 재정과 운영을 뒷받침하셨던 중요한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이셨다"라고 전했다.
빽가의 설명에 따르면 진희창 선생은 경술국치가 일어나고 1911년 상하이로 망명했다. 낮에는 전차회사 감독으로 일하며, 상하이로 건너오는 독립투사들의 비밀거처를 마련해주고 자금을 대주는 등 활동을 했다.
그는 임시의정원에도 참여하며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제 체제를 정하는 임시헌장을 의정했다. 또한 상하이대한인거류민단에서 의사원으로 활동하며 교민사회의 재정과 운영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진희창 선생은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3년 상하이에서 순국했다. 이후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빽가는 "뒤에서 영수증을 모으고 식사를 챙겨주고 독립운동가들을 묵묵히 지원하는 살림꾼이 없었으면 임시정부가 버틸 수 있었을까"라며 "오늘 하루만큼은 경림 진희창 선생, 그리고 이름없이 쓰러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을 함께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또한 그는 영상 설명란을 통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혹은 묵묵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셨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순국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라며 "그 숭고한 뜻과 희생을 잊지 않겠다"라고 의미를 되새겼다.
이어 "우리가 누리는 이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되찾아낸 소중한 빛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겠다. 조국의 빛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독립운동가와 순국선열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라고 적었다.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유튜브 채널 '빽가언니'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