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야 오래간다…K팝 장수그룹의 새 생존법 ‘따로 또 같이’ [Ce:포커스]
입력 2026. 08.17. 06:00:00

레드벨벳, 더보이즈, 2PM, 아이오아이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한 회사를 떠나는 것이 더 이상 팀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은 자신의 길을 찾아 흩어지고, 그룹이 필요할 때는 다시 모인다. 한때 아이돌 그룹의 존속 여부를 갈랐던 ‘전원 재계약’의 공식이 무너지면서 K팝 장수 그룹의 생존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개인은 독립하되 그룹이라는 강력한 브랜드는 함께 지키는 ‘따로 또 같이’ 전략이다.

최근 트와이스의 행보는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채영은 지난 13일 팬들에게 독립적인 음악 프로젝트 ‘릴 판타지(LIL FANTASY)’ 활동을 본격화한다고 알렸다. 연습생 기간을 포함해 14년간 함께한 JYP엔터테인먼트와의 동행을 마무리하고 홀로서기에 나서면서도 트와이스 활동은 계속한다.

채영은 “제 뿌리인 트와이스 활동은 변함없이 해나갈 것”이라며 트와이스 채영과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채영을 동시에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첫 솔로 앨범 ‘릴 판타지 Vol.1’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음악색을 보여준 만큼 앞으로는 개인 음악 활동의 독립성을 확보하면서도 트와이스라는 정체성은 유지하겠다는 선택이다.

앞서 정연 역시 11년간 몸담았던 JYP를 떠나 바로엔터테인먼트에 새 둥지를 틀었다. 배우 유정연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면서도 “제 안의 가장 큰 중심인 트와이스는 지금처럼 변함없이 지켜갈 것”이라며 팀 활동을 최우선에 두겠다고 강조했다. 바로엔터테인먼트 역시 정연의 배우 활동뿐 아니라 그룹 활동이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과거 아이돌 시장에서 전속계약 만료는 그룹의 존속을 가르는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특히 표준계약기간인 7년을 전후로 멤버들의 재계약 여부에 따라 탈퇴나 해체, 장기간 활동 중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른바 ‘7년의 저주’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속계약과 그룹의 수명을 동일시하기 어려워졌다. 멤버 전원이 같은 회사에 남지 않더라도 개인 활동은 각자의 소속사에서, 그룹 활동은 기존 회사나 별도의 레이블을 통해 이어가는 방식이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레드벨벳도 대표적이다. 웬디와 예리가 개인 활동을 위해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났지만 팀에서는 이탈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다섯 멤버가 약 2년 2개월 만의 완전체 앨범 ‘벨벳 서머(Velvet Summer)’를 내놓은데 이어 팬콘과 음악방송, 단독 리얼리티까지 잇달아 선보였다. 소속사는 갈렸지만 ‘레드벨벳’의 시계는 멈추지 않은 셈이다.

더보이즈는 한발 더 나아갔다. 기존 소속사 원헌드레드와 전속계약 갈등을 겪은 멤버 9명은 더보이즈 그룹 활동을 위한 단체 계약을 별도로 체결하고 신생 레이블 체제에서 팀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개인 활동은 각자의 분야에 맞는 소속사와 계약하는 방식을 택했다. 말 그대로 ‘그룹 계약’과 ‘개인 계약’을 분리한 구조다.

소녀시대와 2PM 등 멤버들의 소속사가 달라진 장수 그룹이 기념 앨범이나 콘서트 등을 통해 완전체 활동을 이어가는 것도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해체 후 재결합한 그룹도 있다.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을 종료했던 아이오아이는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아 약 9년 만에 다시 뭉쳤고, 신곡 ‘갑자기’는 음원 차트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며 오랜 공백에도 여전한 IP 경쟁력을 보여줬다.



◆흩어지는 것이 오히려 ‘윈윈’…개인에겐 안전판, 그룹엔 IP 확장

이 같은 ‘따로 또 같이’는 단순히 오랜 시간을 함께한 멤버들의 의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개인과 그룹 모두에게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전략이기도 하다.

고연차 아이돌에게 필요한 매니지먼트는 멤버마다 달라진다. 누군가는 배우로 활동하고, 누군가는 솔로 가수나 예능인으로 영역을 넓힌다. 한 회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성장한 모든 멤버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지는 만큼 각자의 활동에 특화된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개인에게는 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수년간 쌓아온 그룹의 이름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 이미 형성된 팬덤과 인지도, 히트곡과 서사는 신인이 단기간에 만들 수 없는 자산이다. 개인 활동을 통해 새로운 팬층을 확보하면 그룹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고, 반대로 그룹 팬덤은 멤버가 연기나 솔로 등 새로운 영역에 진출할 때 든든한 초기 소비층이 된다.

최근 만난 한 가요계 관계자 역시 이 같은 흐름을 두고 멤버들이 각자의 소속사에서 개인 활동을 하면서도 그룹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아티스트에게도 유리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개인 활동의 성과와 별개로 이미 경쟁력이 검증된 그룹의 팬덤과 브랜드를 계속 가져갈 수 있고, 완전체 활동을 통해 또 다른 수익과 활동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멤버의 개인 매니지먼트 계약을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음반과 공연, MD 등 오랜 시간 투자해 성장시킨 그룹 IP를 계속 활용할 수 있다. 멤버와 회사가 반드시 하나의 전속계약으로 묶여 있어야만 그룹이 존재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개인의 커리어와 그룹이라는 IP를 분리해 운영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함께 나이를 먹은 팬덤이다. 2·3세대 아이돌의 전성기를 함께한 팬들은 현재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구매력을 갖춘 소비층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숏폼과 SNS를 통해 과거 히트곡을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까지 더해지면서 오래된 그룹의 음악과 공연이 다시 소비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졌다.

실제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빅뱅은 신곡과 대규모 월드투어를 통해 여전한 티켓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기존 팬들의 추억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새 음악과 공연으로 다시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거의 인기 그룹이 ‘추억 속 스타’에 머무는 대신 시간이 지나도 반복해서 가치를 창출하는 장기 IP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팀 이름만 남긴다고 ‘같이’는 아니다

그러나 ‘따로 또 같이’가 무조건 성공을 보장하는 만능 공식은 아니다. 멤버들의 소속사가 나뉠수록 완전체 앨범 한 장을 내는 것부터 쉽지 않다. 각 회사와 멤버의 이해관계를 맞춰야 하고, 배우의 작품 촬영이나 솔로 앨범, 해외 일정 등이 겹치면 그룹 활동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대형 기획사의 울타리를 벗어날 경우 제작과 유통의 문제도 남는다. 업계에서는 개별 아티스트가 독립 레이블이나 1인 기획사를 통해 활동 주도권을 확보하더라도 글로벌 음원 유통부터 공연장 대관, 현지 프로모션, MD 물류까지 대형 기획사가 갖춰놓은 인프라를 대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팬들이 받아들이는 ‘같이’의 의미다.

블랙핑크의 데뷔 10주년을 둘러싼 논란은 이를 보여준 사례다. 블랙핑크 역시 개인 활동은 각자의 소속사에서 진행하고 그룹 활동은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하는 대표적인 ‘따로 또 같이’ 그룹이다. 하지만 데뷔 10주년 팬 행사가 불과 이틀 전에 공지되고 당초 ‘일부 멤버’ 참석으로 안내된 데다 참여 인원도 40명에 그치면서 팬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결국 네 멤버 모두 행사에 참석했고 지수는 눈물을 보였으며 멤버들은 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며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최근 만난 가요계 관계자 역시 블랙핑크 10주년을 둘러싼 팬들의 아쉬움에 공감하면서 전속계약이 끝났다고 그룹 활동까지 멈추던 시대와 달리 현재는 각자 다른 소속사에 몸담더라도 팀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멤버 개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구조가 됐다는 취지의 견해를 전했다.

이는 ‘해체하지 않았다’는 선언만으로는 장수 그룹에 대한 팬들의 갈증을 충족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팀 이름의 존속만이 아니라 실제로 멤버들이 함께 노래하고 공연하고 소통하는 경험이다.

그런 점에서 ‘따로 또 같이’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얼마나 자유롭게 흩어질 수 있느냐보다, 흩어진 뒤 얼마나 제대로 다시 모일 수 있느냐에 있다.

전속계약이라는 하나의 울타리에 머물러야만 그룹을 지킬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개인은 자신에게 맞는 곳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고, 그룹은 각자의 성장을 다시 하나의 브랜드 안으로 끌어들인다. ‘7년의 저주’를 넘은 K팝이 이제는 10년, 15년, 20년을 바라볼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K팝 그룹은 함께 있기 위해 반드시 같은 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유롭게 흩어질 수 있게 되면서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셀럽미디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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