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판에서 내려온 아이돌…기업이 K팝을 ‘경험’으로 파는 법 [Ce:포커스]
입력 2026. 08.24. 06:00:00

리센느, 나우즈, 석매튜, '트루먼의 사랑', 미미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아이돌이 광고판에서 내려왔다. 비행기에 올라 승객에게 기내식을 건네고, 편의점 신상품을 직접 먹어보며 ‘팩폭’ 리뷰를 한다. 방송에서 우연히 찾은 지역의 작은 식당은 브랜드와 손잡은 새로운 ‘성지’가 됐다. 기업이 K팝 아이돌의 얼굴과 인지도만 빌려 제품을 알리던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기업들의 K팝 활용법이 단순한 광고 모델 기용을 넘어 콘텐츠와 경험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아이돌이 가진 캐릭터와 서사, 팬덤 문화를 기업 콘텐츠에 녹이고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광고를 ‘보는 것’에서 아이돌과 브랜드가 만든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항공과 그룹 제로베이스원의 만남이다. 제주항공은 최근 제로베이스원 멤버 석매튜가 일일 객실승무원으로 활약하는 체험 콘텐츠를 선보였다.

석매튜는 실제 운항한 인천~마쓰야마 노선에 탑승해 기내 안내방송과 기내식 서비스를 직접 수행했다. 여기에 제로베이스원의 사인 CD를 승객들에게 선물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아이돌이 항공사 광고에 등장하는 것을 넘어 실제 소비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공간으로 직접 들어간 것이다.

제주항공과 제로베이스원의 접점은 한 번의 이벤트에 그치지 않는다. 제주항공은 앞서 지난 6월 제로베이스원 이미지를 입힌 래핑 항공기를 공개했다. 해당 항공기는 오는 11월 말까지 일본과 중화권, 동남아 등 주요 국제선 노선에 투입될 예정이다.

항공기 외관에 아티스트의 얼굴을 노출하는데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제 비행이라는 소비자의 여행 경험 속에 아티스트를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기존 스타 마케팅과 차이가 있다. 여행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되는 구조다.



편의점 CU는 아이돌의 ‘캐릭터’에 주목했다. CU는 그룹 오마이걸 미미를 앞세운 자체 유튜브 콘텐츠 ‘미미의 미미(美味)’를 시작했다. 미미가 편의점 신상품을 직접 먹어본 뒤 솔직한 반응과 평가를 내놓는 형식으로, 월 2회 새로운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기업이 아이돌을 내세워 자사 상품의 장점만 전달하는 일반적인 광고와도 거리를 뒀다. 평소 디저트를 좋아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꾸밈없는 입담을 보여준 미미의 캐릭터를 상품 리뷰에 접목했다. 소비자가 구매 전 실제로 궁금해할 만한 정보를 아이돌의 입을 빌려 전달하는 방식이다.

CU의 이 같은 시도는 제품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기존 광고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콘텐츠를 즐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상품을 접하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상품의 맛과 특징을 아이돌의 솔직한 반응과 예능적 요소를 통해 전달하고, 이를 실제 상품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특히 유튜브와 SNS가 주요 콘텐츠 소비 창구로 자리 잡으면서 기업 자체 채널의 역할도 단순한 제품 홍보에서 하나의 ‘놀거리’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CU 역시 상품 리뷰뿐 아니라 웹드라마와 게임형 멤버십 서비스, 온·오프라인 참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실제 CU는 이전부터 유튜브를 자체 콘텐츠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해왔다. 지난 2022년 공개한 숏폼 드라마 ‘편의점 고인물’은 공개 약 한 달 만에 누적 조회수 1억회를 기록했다. 아이돌을 전면에 내세운 ‘미미의 미미’ 역시 상품 홍보에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결합해 소비자의 자발적인 콘텐츠 소비를 유도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동아오츠카와 그룹 리센느의 협업은 또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혔다. 광고 모델이 가진 기존의 서사를 브랜드 마케팅과 결합해 현실의 공간으로 확장했다.

동아오츠카는 지난달 제로 칼로리 사이다 브랜드 나랑드사이다의 새 모델로 리센느를 발탁했다. 이어 이달 7일 리센느가 CM송을 부르며 해안가를 달리는 내용의 신규 광고를 공개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익숙한 스타 마케팅의 공식이다.

그러나 브랜드와 리센느의 만남은 광고 밖으로 이어졌다. 동아오츠카는 경남 거제의 ‘모래성 분식 포차’와 협업해 8월 한 달간 방문객들에게 나랑드사이다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해당 점포는 리센느의 리더 원이가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방문한 뒤 팬들 사이에서 알려진 곳이다.

팬들은 실제 가게를 찾아 원이가 방송에서 만들어낸 상황과 표현을 따라 하고 인증 사진과 방문 후기를 SNS에 공유한다. 여기에 원이가 모델로 활동하는 나랑드사이다가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아이돌→방송 콘텐츠→지역의 실제 공간→브랜드→SNS 공유’로 이어지는 새로운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셈이다.

실제로 온라인에는 8월 들어 해당 점포를 방문해 리센느와 나랑드사이다를 함께 언급하는 방문 후기가 확인되고 있다. 단순히 스타의 얼굴을 상품에 붙이는 대신 이미 팬덤 안에서 형성된 이야기에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방식이다.

동아오츠카가 처음부터 이러한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리센느를 발탁했는지는 공개된 자료만으로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회사는 모델 선정 당시 리센느가 가진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의 접점을 강조했다. 장경진 나랑드사이다 브랜드매니저는 리센느 발탁 배경에 대해 “진정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경쟁력을 쌓아왔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긍정적인 시너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이돌의 ‘얼굴’ 아닌 ‘이야기’를 산다

최근의 사례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콘텐츠’와 ‘참여’다. 과거 스타 마케팅의 기본 공식은 높은 인지도를 가진 연예인을 광고에 등장시켜 브랜드와 상품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노출하는 것이었다. 팬덤이 큰 K팝 아이돌은 특히 젊은 소비자와 해외 소비자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모델이었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 기업이 아이돌의 인지도뿐 아니라 캐릭터와 말투, 팬덤 안에서 통용되는 이야기와 밈까지 마케팅 자원으로 활용한다.

미미가 가진 솔직하고 거침없는 캐릭터는 편의점 신상품 리뷰가 되고, 석매튜는 실제 항공기의 객실승무원이 된다. 리센느 원이의 방송 속 한 장면은 지역의 작은 식당을 팬들이 찾아가는 공간으로 만들고, 다시 그곳에 광고 브랜드가 들어온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만든 광고를 소비자가 보는 구조와도 다르다. 팬과 소비자가 직접 비행기에 탑승하고, 식당을 찾아가고, 제품을 먹은 뒤 사진과 영상을 SNS에 올린다. 기업이 만든 첫 번째 콘텐츠가 소비자의 참여를 거쳐 다시 수많은 두 번째 콘텐츠로 만들어지는 구조다.

이 같은 변화는 K팝 자체의 홍보 방식에서도 발견된다. 그룹 나우즈는 최근 컴백을 앞두고 멤버들이 양상추와 오이, 토마토, 아보카도, 닭가슴살 등으로 변신한 이색 ‘Z필름’을 공개했다. 여기에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연상시키는 ‘데이앤샐러드’ 웹사이트까지 별도로 만들었다. 팬들이 수동적으로 티저 사진과 영상을 보는 대신 직접 사이트에 들어가 멤버별 ‘샐러드’를 살펴보도록 놀이 요소를 더했다.



영화 마케팅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등장했다. 영화 ‘트루먼의 사랑’은 작품 속 가상의 커뮤니티인 ‘트루먼 소셜 클럽’을 현실의 소셜링 모임으로 옮겼다. 관객들이 영화 속 세계를 극장에서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도록 만든 것이다.

결국 광고와 콘텐츠, 현실과 세계관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특히 수많은 광고와 숏폼 콘텐츠가 쏟아지는 환경에서 단순히 유명한 얼굴을 노출하는 것만으로 소비자의 시선을 오래 붙잡기는 쉽지 않다. CU가 신규 콘텐츠를 소개하며 ‘재미있게 경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실제 상품 관심과 구매로 이어진다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이 같은 마케팅의 실질적인 매출 기여도나 기존 광고 대비 효율성이 더 높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제주항공과 동아오츠카 등 개별 사례의 매출·예약률·브랜드 인지도 상승 등 구체적인 성과 지표는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화제성이 실제 구매와 장기적인 브랜드 충성도로 얼마나 연결되는지도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기업이 K팝을 활용하는 방식이 ‘누구를 모델로 쓸 것인가’에서 ‘그 모델로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로 확장되고 있다는 흐름은 뚜렷하다. 아이돌에게 필요한 것도 더 이상 높은 인지도만은 아니다. 소비자가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캐릭터와 이야기, 현실의 경험으로 옮겨갈 수 있는 콘텐츠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광고판 속에서 제품을 들고 웃던 아이돌이 비행기에 타고, 편의점 음식을 평가하고, 작은 동네 식당으로 소비자를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기업이 사는 것은 이제 아이돌의 얼굴만이 아니다. 그 얼굴 뒤에 쌓인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기꺼이 뛰어들어 다음 장면을 만들어주는 팬들의 참여까지가 새로운 마케팅 자산이 되고 있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셀럽미디어DB, CU(미미), 동아오츠카(리센느), 유튜브 캡처(석매튜), 큐브엔터테인먼트(나우즈), 이화배컴퍼니·뜨로리('트루먼의 사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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