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승룡 "'비광', 진심은 통한다는 걸 느껴…관객들도 힘 얻어갔으면"[인터뷰]
- 입력 2026. 08.27. 08:00:00
-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 배우 류승룡이 '비광'으로 다시 한번 가족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한동안 반복되는 아버지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이지원 감독의 진심이었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걸게 된 중구를 연기하며 류승룡은 자신의 지난 시간을 떠올렸고, 배우로서 '잘하는 것'보다 '그날 최선을 다하는 것'의 의미를 되새겼다. 어느덧 연기를 통해 받은 것을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까지. '비광'을 이야기하는 류승룡의 말에는 배우로 살아온 시간만큼 깊어진 고민이 묻어났다.
류승룡
류승룡은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비광'(감독 이지원)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광'은 영화 '미쓰백'으로 깊은 울림을 전했던 이지원 감독의 신작이다. 한때 톱스타 부부였던 중구(류승룡)와 남미(하지원)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중구의 딸 동주(김시아)로 인해 파경을 맞은 뒤, 8년 후 사건의 중심에 선 동주를 구하기 위해 진실을 쫓는 과정을 그린 가족 드라마다.
류승룡은 극 중 최고의 야구 선수였지만 딸 동주의 등장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뒤, 현재는 딸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아빠 중구 역을 맡았다.
개봉을 앞둔 소감부터 남달랐다. 오랜 시간 묵혀둔 작품을 다시 마주한 류승룡은 "객관적으로 보게 되더라.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진심을 다해서 정성껏 찍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관객분들이 어떻게 봐주시느냐에 따라서 본연의 힘이 발휘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은 반응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초 류승룡은 '비광'의 시놉시스만 보고 출연을 고사했다. 당시에는 연달아 아버지 역할을 맡으며 "한동안 아빠 말고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이지원 감독의 편지였다. 류승룡은 "감독님께서 편지를 써주셨다. 부성애만을 부각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 편지를 통해 다시 알게 되고 시나리오를 정독했다"고 밝혔다.
감독의 편지에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사와 작품을 만들게 된 이유, 자신에게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 왜 류승룡과 함께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는 "5장 정도 되는 편지였는데 정성껏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진심이 느껴졌다.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읽으니 마음에 전해졌다"고 설명했다.
'비광'이라는 제목에도 작품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류승룡은 "처음에는 화투 영화인가, 도박이 나오나 생각했다"면서도 "화투 패에 대한 이야기다.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다. 가족들이 위기를 다른 좋은 에너지로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도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오광이라고도 하지 않나. 빗속에, 빗줄기에 비추는 빛이라는 의미도 있다. 인생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고 비가 내리지만 빛이 있다는 것"이라며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화투패 하나로 이렇게 공부해본 건 처음"이라고 웃었다.
극 중 중구는 과거 최고의 야구 선수였던 인물이다. 류승룡은 현역 시절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 실제 프로 선수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다.
그는 "운동선수들이 성실하지 않나. 섬세함도 있고, 현역 시절을 표현하기 위해 자세나 이런 걸 신경 썼다"며 "하는 척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동네에 야구 클럽이 있었고 은퇴하신 프로 선수들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지원 감독의 치밀한 연출도 인상 깊었다. 류승룡은 "감독님이 신림동 고시원에서 시나리오를 쓰셨다고 하더라. 시나리오 설계도가 굉장히 견고하다. 조명의 개수, 콘셉트까지 정말 자세하게 써놨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들은 어떻게 하면 그것을 구현해낼까 고민했다. 구현해내기가 어렵기도 했다"며 "사실 감독님의 노고가 컸다.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했다"고 전했다.
중구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한 고민도 있었다. 류승룡은 중구가 동주를 끝까지 지키려는 이유를 단순한 부성애만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쉽지는 않았다. 플래시백에서 남미가 동의 없이 중절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도 있다. 달갑지 않은 애증 관계"라며 "그런데 원동력은 '내쫓지 못한다'는 것 같다. 유전자가 그렇다. 작은 덩어리가 나를 잡는데, 얼마나 갈 데가 없으면 나 같은 사람을 잡겠나 하는 측은지심도 있었을거다. 저 아이에게 내가 좀 울타리가 돼야겠다는 엔진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설명했다.
'비광'에서는 20~30대 중구를 표현하기 위한 디에이징 기술도 등장한다. 류승룡은 "감독님 비주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소품, 의상 하나하나까지 엄청나게 신경 쓰셨다"며 "취향도 일관성 있게 가져가셨다"고 귀띔했다.
극 중 남미(하지원)는 한때 모든 이의 사랑을 받던 톱스타였지만 한순간에 추락한 인물이다. 류승룡은 이 과정에서 배우라는 직업과 맞닿은 지점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느닷없이 찾아오는 일들이 있다. 해리포터 작가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의 촉감을 모르면 글을 쓸 수 없다고 했던 이야기가 있다"며 "저도 그런 굴곡들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저도 그때 많이 깨닫고 배웠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점점 유연해진다.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이 생긴다"며 "마음의 여유를 넉넉하게 두고 당황하지 말고, 방황하지 말고 유연해지려고 한다. 조급해하고 당황하고 두려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더라. 그런 침착함이 생겼다"고 밝혔다.
연달아 작품 활동을 이어온 만큼 자신을 쉬게 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류승룡은 "코로나19 때 작품들이 다 연기돼서 목수 일도 하고 가죽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해봤다.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라며 "요즘은 스케줄이 너무 많다. 운동도 계속하고 제주 올레도 걷고 맨발 걷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를 가만히 못 내버려둬서 자꾸 공격적으로 쉬려고 하는 것 같다. 쉬려고 하는 것 자체가 피곤할 때도 있다"며 "지금은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있는다. 가사 없는 클래식 같은 걸 듣고 조명을 은은하게 해놓는다. 환기도 잘 시키고, 로봇청소기 보는 것도 힐링"이라고 웃었다.
그가 '가만히 있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오랜 시간 몸에 밴 경쟁 의식 때문이었다.
류승룡은 "저를 그동안 가만히 내려두지 않았다. 그러면 도태될까 봐 그랬던 것 같다"며 "우리 어렸을 때부터 '경쟁, 경쟁'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본 게 군대 가고 나서 휴학했을 때 정도다. 제대하자마자 아르바이트하고 그랬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래서 쉴 때도 강박이 있다.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했다. 저에게는 큰 도전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더라"며 "집을 정리하면서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옷도 버리고. 버릴수록 입을 옷이 많아진다. 진짜 그렇더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한다. 가만히 있는 것, 좋은 음악을 듣고 릴랙스하는 게 큰 쉼이고 큰 선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시아에 대해서는 "똘똘하다. 성격도 너무 좋다. 마음이 가고 시선이 가는 배우"라며 "보호 본능이 생긴다. 또 과묵한데 저만 보면 웃는다. 말만 하면 눈빛이 하트다. 아재 개그에도 많이 웃어주고 받아준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류승룡은 김시아의 연기를 보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스펀지처럼 잘 받아들이고 잘 표현해내더라. 그런 걸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과잉 연기를 하는 느낌을 스스로 받을 때가 있나 싶었다"며 "시아를 보면서 거울 치료를 받았다. 저게 맞는 건데 싶었다. 순수하고 도화지 같은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역할을 반복해서 맡아온 것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류승룡은 "연달아 아버지 역할이 잘 안 되기도 했고, 울부짖고 그런 느낌이 있었다. 스스로 제 연기를 되돌아보면 과도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아버지가 똑같은 아버지는 없지 않나 싶다. 거기서 오지 않는, 보이지 않는 강박이나 편협된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게 없어졌다"고 밝혔다.
'비광' 속 중구와 남미의 관계는 단순한 부부 관계를 넘어선 애증으로 그려진다. 류승룡은 "둘의 징글징글한, 알 거 다 알고 볼 거 다 아는 관계"라고 표현했다.
그는 "그래서 밉고,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관계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만큼 이 사람의 아킬레스건, 제일 원하는 것, 제일 하기 싫은 것을 서로 너무 잘 안다"며 "그런 관계였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하지원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원 배우가 가진 여배우로서의 여러 가지 모습을 짓눌러서 인수분해해서 나열해 놓은 느낌이었다. 본인이 잘 정제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관객분들이 하지원 배우를 요즘은 유튜브 콘텐츠로도 보시지만, 연기를 통해서, 남미를 통해서 또 다른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 같다"며 "앞으로가 기대되는, 연기가 기대되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이 하지원 배우에게도 좋은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촬영장에서의 하지원에 대해서는 "리액션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류승룡은 "웃음도 너무 잘 웃어준다. 보잘것없는, 하찮은 유머에도 웃어준다. 너무 고맙다"고 말하며 웃었다.
더불어 류승룡은 최근 배우들의 작품 홍보를 지켜보며 자신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을 얻었다고 했다. 특히 혜리의 홍보 활동을 언급했다.
"혜리 배우가 정말 영화 '빅토리'라는 작품을 할 때 홍보를 열심히 하더라. 인스타그램도 그렇고. 감동받은 적이 있다. 끝까지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막이 내릴 때까지 정말 끝까지 하더라. 그걸 보고 많이 배웠다."
출연하지 않은 작품의 홍보에도 나선 이유는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이었다. 류승룡은 최근 오정세가 출연한 영화 '와일드 씽' 홍보에 자발적으로 나선 것에 대해 "그냥 한국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정세 배우와 친하다. 같은 회사 배우이기도 하고 제작사도 친한 패밀리다. 조금이라도 한 명이라도 더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배우로서 자신의 연기와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꺼냈다. 류승룡은 "서툴고 그렇게 할지언정 가슴에 손을 얹고 최선을 다한다. 저의 한계다. 이번 작품도 그때 그 시절, 그날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잘 짜인 시나리오가 제일 중요하고, 그날의 상대 배우와 스태프들, 촬영장 분위기 등이 잘 맞아떨어질 때 '비광'처럼 나오는 것 같다"며 "그때 그날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연기는 이제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가 됐다.
"연기는 꿈이었고 생계였고, 지금도 생계다. 지금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걸 통해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그런 사명감이 점점 생기는 것 같다."
류승룡은 최근 작품들을 통해 혐오와 갈등을 들여다보고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저에게 연기란 아직 꿈이고 원동력이고 생계이고 직업이지만, 지금 달라진 건 확장하고 받은 걸 환원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많은 분들에게 응원이 되고 위로가 되는 작품들을 점점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흥행에 대한 부담보다 작품 자체의 진심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도 밝혔다.
"모든 작품이 흥행하려고 만든 작품이지 않겠나. 그런데 상을 받아야지, 흥행해야지 그런 생각보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을 선호한다."
류승룡에게 '비광'은 이야기와 배우들의 호흡으로 승부하는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은 CG도 제 피부 정도다"라고 농담하며 "오로지 이야기에 밀도와 배우들의 연기와 호흡들을 툭 하고 진득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끝으로 그는 "'비광'이 앞으로 그런 작품들이 더 많아지는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작품에 대한 기대를 당부했다.
한편 '비광'은 오는 9월 2일 개봉한다.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플레이그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