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인가?…한 고전에서 태어난 작품들, 연이어 무대로[Ce:포커스]
입력 2026. 09.04. 05:00:00

카라마조프 시리즈-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고전 '오디세이아'가 영화관과 서점가를 사로잡은 가운데, 올해 공연가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붐이 불고 있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도스토옙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장편소설이다. 시골 지주 표도르 카라마조프가 살해되고 장남 드미트리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사건을 중심에 두고 신의 존재와 인간의 죄, 구원의 문제를 파고든다. 차남 이반과 삼남 알료샤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의 죽음과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꼽힌다.

올해 대학로에서는 이 소설을 작품으로 한 작품 4편이 줄지어 무대에 오르고 있다. 가장 먼저 지난 4월 뮤지컬 '카라마조프: 시리즈' 이반 편과 그루첸카 편이 대학로 업스테이지에서 공연됐다. 여성 배우 10인의 목소리로 원작을 재구성한 무대로, 이반 편은 신의 부재와 인간의 자유를 둘러싼 이반의 내적 갈등에, 그루첸카 편은 드미트리와 그루첸카의 파괴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5월부터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2018년 초연 이후 2020년, 2021년, 2023년에 이어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인기작으로, 표도르와 세 아들, 하인 스메르만 등장하는 5인극으로 구성됐다.

까라마조프의 자매들-카라마조프 패러다임


이어 음악극 '까라마조프의 자매들'이 서울숲씨어터에서 상연된다. 원작을 현대적 시선으로 재해석한 정원사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으로, 형제를 자매로 바꿔 존속살해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욕망과 상처를 그린다. 12월에는 이반과 알료샤, 스메르의 관계를 중심으로 원작을 재해석한 창작 뮤지컬 '카라마조프 패러다임'이 관객을 찾는다.

'까라마조프 패러다임' 극작·총연출 김소정은 이 소설이 2026년에도 의미를 갖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인간이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반은 고통받는 아이가 존재하는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세계가 과연 옳은지, 신의 질서라는 이름으로 고통이 설명될 수 있는지 묻는다. 이 질문은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매력을 '작품이 가진 많은 층위'라고 꼽았다. 김소정 연출은 "가족극으로도, 법정극으로도, 종교극으로도, 사상극으로도, 인간의 죄책감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자들에게는 일종의 도전 과제처럼 느껴지는 원작이기도 하다.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단순히 분노나 단죄에서 끝나지 않는다. 죄와 책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대해 말한다"라며 "'까라마조프 패러다임'은 원작 전체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이반과 알료샤를 중심으로,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과 그럼에도 한 사람의 존재를 끝까지 부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리고자 했다"라고 전했다.

특히 올해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여성 배우들의 이야기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카라마조프: 시리즈'와 '까라마조프의 자매들', '카라마조프 패러다임' 모두 여성 배우가 극을 이끈다. 그중 '카라마조프: 시리즈'는 형제들의 이야기에서 한발 물러나 아버지 표도르와 장남 드미트리 모두의 사랑을 받는 여성 캐릭터 그루첸카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김소정 연출은 "여성배우 일자리 창출 목적"이라며 "'카라마조프 패러다임'은 전원 여성 배우로 구성됐으나 등장인물들의 성별은 바뀌지 않았다. 그로써 여성배우들의 다양한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헤다 가블러(국립극단)-헤다 가블러(LG아트센터)-반야 아재(국립극단)-바냐 삼촌(LG아트센터)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최근 공연계에서는 동일한 고전 원작을 바탕으로 한 여러 작품이 유사한 시기에 상연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헨리크 입센의 '헤다 가블러'와 안톤 체호프 '바냐 아저씨'이 대표적인 예시다.

헨리크 입센의 '헤다 가블러'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욕망과 자유를 통제당한 여성 헤다의 심리적 파멸을 다룬 작품이다. 지난해 국립극단과 LG아트센터는 동일한 텍스트를 두고 서로 다른 연출적 시각과 배우들의 연기 양식을 선보였다. 특히 이 두 작품에는 배우 이혜영과 이영애가 각각 '헤다 가블러'를 연기해 이목을 끈 바 있다.

이러한 흐름은 체호프의 또 다른 대표작 '바냐 아저씨'으로 이어졌다. LG아트센터는 지난 5월 '바냐 아저씨'를 각색한 '바냐 삼촌'을 무대에 올렸다. 이서진·고아성을 주연으로 원작의 쓸쓸한 정서와 인물 간 관계를 리듬감 있게 살려냈다. 반면 국립극단은 19세기 러시아 시골 영지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 한국으로 옮겨 온 '반야 아재'를 선보였다. 조성하·심은경을 주연으로 한국적 정서와 유머를 더해 차별점을 줬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김소정 연출은 "고전이 오늘날까지 계속 읽히고 다시 무대화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이 특정 시대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원작을 한 사람의 해석으로만 만나는 것보다 여러 창작자의 해석을 통해 만나는 일은 관객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라며 "하나의 고전이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무대화될 때 관객은 그 작품을 더 넓고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라고 바라봤다.

급변하는 트렌드, 빠른 기술의 발전으로 역설적이게도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고자 하는 욕구는 커지고 있다. 고전 속 질문이 현대인에게 더욱 날카롭게 다가오고 있는 이유다.

고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며 같은 고전이 여러 창작자의 손을 거쳐 다양한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하나의 텍스트를 다양한 관점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관객들을 더 깊은 이해로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프로젝트 극락, 오차드뮤지컬컴퍼니, 네버엔딩플레이, 뮤지컬 '카라마조프 패러다임', 국립극단,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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