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카메라 없는 현장…중국 덮친 'AI 드라마' 열풍, 한국은 어디까지 왔나[Ce:포커스]
입력 2026. 09.05. 06:00:00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카메라도, 조명도, 화려한 출연진도 없는 드라마가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배우의 연기부터 배경, 액션 장면까지 만들어내는 이른바 'AI 드라마'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 중국 숏드라마 95% 차지한 AI… 시장 팽창과 일자리 우려

최근 중국 콘텐츠 시장의 화두는 단연 'AI 숏드라마'다. 올해 1분기 중국 영상 업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마이크로 드라마(숏드라마) 약 12만 8000편 가운데 AI 숏드라마가 95%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제작사들이 AI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비용과 시간이다. 기존 제작 환경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배우 섭외비와 현장 대관비, 조명·음향 등 스태프 인건비를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숏드라마처럼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시장에서는 제작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고, 시장 반응에 따라 기획부터 유통까지 즉각 대응하는 구조도 가능해졌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TV로 방영되는 장편 AI 드라마가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달 중국 후난TV에서 첫 방송된 30부작 드라마 '후서유기(后西游记)'는 배우와 실제 촬영 없이 100% AI로 제작된 작품이다. 회당 40분 분량의 AI 드라마가 중국 주요 방송사의 황금시간대에 편성됐다는 점에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AI 제작에 따른 단점도 명확하다. 화면 속 인물의 부자연스러운 표정이나 움직임에서 오는 이질감, 즉 '불쾌한 골짜기'로 인해 서사적 몰입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회차가 거듭되면서 외형적 일관성을 완벽히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도 AI 영상의 한계로 꼽힌다.

무엇보다 현장 스태프와 조·단역 배우들의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면서 제작 생태계가 위축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I가 배우뿐 아니라 촬영·조명·미술·편집 등 제작 과정 곳곳을 대신하게 되면 기존 제작 인력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 중국 최대 촬영기지인 헝뎬에서는 2026년 1분기 숏드라마 촬영이 전년보다 75% 감소했고, 주요 배우 45명의 출연작도 약 25% 줄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곧 AI가 제작비를 낮추는 '효율적인 도구'인 동시에, 콘텐츠 산업의 일자리 구조 자체를 흔드는 기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뜻한다.

'파이널 랩: 복수의 레이스'



◆ 국내 숏드라마 속 AI 활용…제작비 절감→스케일 확장으로

한국 역시 드라마 제작에 AI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흐름이다. SBS '김부장'에서 등장한 고난도 액션 시퀀스,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 속 배우 손석구의 어린 시절 모습 등 메인스트림 드라마에서는 특수 연출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AI를 활용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국내 숏드라마 시장에서는 제작 전반에 AI를 적용하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기업 ㈜스푼랩스가 운영하는 숏드라마 플랫폼 '비글루(Vigloo)'가 제작한 모터스포츠 장르 작품 '파이널 랩: 복수의 레이스'를 들 수 있다. 해당 작품은 총 50부작 분량을 약 6주 만에 완성했으며, 레이싱 트랙과 차량 추돌, 수중 구조 등 실제 촬영 시 높은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장면들을 AI로 구현해냈다.

이소담 비글루 글로벌 콘텐츠 총괄은 "AI는 현재 시나리오 분석부터 영상 생성, 자막 번역, 더빙까지 숏드라마 제작 전반에 걸쳐 활용되고 있다"며 "AI 제작 시스템을 통해 기존 제작비보다 5~10배까지 비용 절감이 가능하고, 제작 기간을 단축해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비글루 측은 AI가 만들어내는 효율이 단순히 제작비 절감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존 실사 제작으로는 예산, 일정 문제로 시도하기 어려웠던 장르와 스케일의 작품을 기획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이 총괄은 "기존 실사로는 제작이 어려웠던 판타지, 액션, 애니메이션 같은 장르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됐다"며 "그동안 한계가 명확했던 스케일의 기획을 현실화할 수 있게 된 것이 실질적인 변화"라고 덧붙였다.

◆ 한계 극복과 직무의 이동…중요한 건 스토리의 '몰입감'

AI가 기존 CG·VFX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수정과 반복에 드는 비용이 낮다는 점이다. 기존 CG·VFX는 완성된 컷을 수정할 때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AI 기반 제작은 기획 단계부터 여러 버전의 장면을 빠르게 생성해보고 결과물을 비교할 수 있다. '파이널 랩: 복수의 레이스' 속 위험 장면들 역시 이러한 방식을 거쳐 완성됐다.

물론 기술적 한계도 존재한다. AI 영상에서는 동일한 캐릭터와 공간이 전 회차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되는지가 핵심 관건이다. 이 총괄은 이에 대해 "장면 특성에 맞춰 프롬프트를 설계하고 컷 단위로 검수·조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AI가 제작 속도를 끌어올리는 만큼, 완성도를 잡는 영역에는 사람이 더 세밀하게 개입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국 AI 도입으로 인한 인력 구조의 변화 역시 단순한 '인원 감축'이라기보다는 '직무의 이동'으로 볼 수 있다. 이 총괄은 "촬영과 후반작업에 투입되던 시간이 줄어든 대신, 기획·연출·프롬프트 설계와 결과물을 선별하고 다듬는 QC 영역의 비중이 커졌다"며 "비글루 내부에서도 AX팀을 시작으로 비글루 스튜디오를 갖추면서 관련 직무들이 새로 생겼다. AI 활용 범위를 사내 제작을 넘어 창작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AI 콘텐츠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던 '이질감'에 대해서도 실제 데이터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현재 비글루 미국 시장 인기 콘텐츠 상위 10개 중 1위를 포함한 9개 작품이 AI로 제작된 작품이다. 이는 시청자들이 단순히 AI 제작 여부만을 가지고 콘텐츠를 선택하거나 거부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이 총괄은 "숏드라마는 회당 호흡이 짧고 전개 속도가 빠른 포맷이라 시청자가 이야기의 흡인력에 더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며 "실제로 저희가 '파이널 랩: 복수의 레이스'를 제작하면서 기대한 건 압도적인 비주얼이었는데, 시청 지속률과 반응을 보면 캐릭터 간 감정선에 집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화면 구성도 중요하지만, 이야기에 얼마나 몰입되는지가 시청 경험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기술 평준화 시대, K-드라마의 진짜 승부수는 '기획력'에 있다

숏드라마 시장을 중심으로 AI 제작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국내 드라마 산업 전체를 놓고 보면 아직 특정 장면이나 후반작업에 부분 활용에 그친다. 배우와 제작진을 직접 대체하기보다 연출상의 한계를 메우는 보완재로 접근하는 경향이 짙은 모양새다.

그러나 AI 기술의 발전 속도와 숏드라마 시장의 성장을 감안하면 이러한 경계 역시 빠르게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총괄은 "앞으로 AI 활용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 전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기술 자체가 변별력이 되기보다는 결국 '무엇을 만들 것인가'라는 기획력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중국이 거대한 물량과 속도로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면, 한국 콘텐츠 기업들은 오랜 기간 축적해온 스토리텔링 역량과 IP 기획력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이 총괄 역시 "물량과 속도로 경쟁하기보다는 IP의 완성도와 확장성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실제 비글루는 검증된 국내 IP를 글로벌 시장에 현지화하고 장르를 확장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 해외 매출 비중도 61.5%까지 올라갔다.

물론 AI가 드라마 제작 현장의 카메라와 조명을 완전히 대체할 날이 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미 AI는 제작비와 시간을 줄이는 것을 넘어, 기존에는 비용과 기술의 한계로 시도하기 어려웠던 장면과 장르를 현실로 옮기는 새로운 제작 도구가 되고 있다.

이처럼 AI 기술은 드라마 제작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강력한 무기가 됐다. 그러나 기술이 평준화될수록 결국 시장을 뒤흔들 진짜 승부수는 '콘텐츠의 기획력'에 달려있다. K-드라마가 AI를 발판 삼아 선보일 한층 깊이 있고 매력적인 이야기들에도 자연스레 기대가 모이는 이유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이오콘텐츠그룹, 비글루, 모피어스 스튜디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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