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오브 포겟팅' 전성우 "정답 없는 연기, 관객이 나의 원동력"[추석 인터뷰]
입력 2026. 09.25. 10:00:00

전성우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배우 전성우는 유독 쉽지 않은 역할을 자주 선택한다. 연기하는 배우에게도, 바라보는 관객에게도 쉽지 않은 작품들 속에서 그는 늘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인다.

흥미로운 건 그가 가진 얼굴에는 여전히 소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맑고 여린 얼굴로 복잡하고 치열한 캐릭터를 마주하는 것, 그리고 그 간극을 자신만의 색으로 채워가는 것이 전성우의 연기다. '네이처 오브 포겟팅'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 지금도, 그는 가장 전성우다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피지컬 시어터 '네이처 오브 포겟팅(The Nature of Forgetting)'이 3년 만에 세종S씨어터로 무대를 옮겨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이 작품은 조기치매로 기억이 파편화되어 가는 한 남자의 사랑과 우정, 삶의 여정을 75분 동안 네 배우의 역동적인 신체 언어와 2인조 라이브 밴드의 선율만으로 채워낸다.

2023년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톰'을 맡은 전성우는 대사라는 직관적인 무기 없이 오직 몸짓과 표정, 깊은 눈빛만으로 삶의 찬란함을 무대 위에 그려내고 있다. 전성우에게 이번 합류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지나고 나면 '기억'만 남을 것 같았어요. 언젠가는 저도 톰이라는 인물과 만났던 기억만 남게 되겠죠. 어떤 작품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게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그리워도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 있는데, 이번 '네이처 오브 포겟팅'이 제게 그런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죠. 너무나 기다렸던 작품이기도 했고, 이번 기회가 지나면 다음이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커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제안을 주셨을 때 같은 시기에 다른 일정이 있어 참여에 대한 고민도 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출연을 결정하는 데 큰 힘이 됐어요. 3년이 지난 후의 기욤을 만났을 때의 기대와 궁금증, 그리고 너무나 좋은 배우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생각이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피지컬 시어터는 장르 특성상, 대사와 노래 없이 오직 신체의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텍스트 중심의 기존 작품들과 달리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말의 직접적인 힘보다 몸의 상태와 비언어적 표현이 주가 된다.

"기존 극들은 대사가 담고 있는 정보와 감정을 통해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잖아요. 배우에게는 사실 그 텍스트 사이의 행간도 굉장히 중요한 표현의 지점이고요. 그런데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공연이라기보다는, 말이 가진 정보나 힘보다는 몸으로 표현되는 움직임이 중심이 되는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소리가 없는 극도 아니고, 말을 하면 안 되는 극도 아니에요. 다만 말 자체는 하나의 행간처럼 사용하고, 그보다 움직임이나 얼굴의 표정 같은 비언어적인 표현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작품이죠. 그래서 저 역시 대사만으로 전달하기보다 움직임과 표정, 몸의 상태를 통해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잘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감정을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저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됐어요."

특히 톰이라는 인물은 순차적인 시간 흐름이 아니라 파편처럼 뒤섞이는 과거와 현재의 기억 속에서 감정을 쌓아가야 한다. 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인물의 상태와 감정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숙제였다. 전성우는 내적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장 오래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인물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극의 구성이 기억을 따라 순차적으로 그려지는 작품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조각의 파편처럼 뒤섞여 있거든요. 동시에 인물의 감정은 쌓여가고 있고요. 톰의 머릿속에서는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가만히 있는 순간에도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생각의 흐름이 있어야 하죠. 그래서 복잡한 구조 속에서 인물이 쌓아가는 감정만은 명확하게 얼굴과 몸에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떠오르고 사라지고, 또 다른 기억들과 뒤섞이는 일이 반복돼요. 그걸 붙잡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타인이 보기에는 지겨울 수도 있을 만큼 반복하죠. 그런 시선 속에서도 그 고단한 과정을 외롭게 이어가는 톰은, 이 작품의 주된 표현 요소인 동작이 멈춘 순간에도 계속 애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런 내적인 드라마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공연을 거듭하며 '기억'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역시 한층 깊어졌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잊혀질 수 있고, 나 또한 기억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 순간을 생각하면 슬픔의 감정이 생기는 동시에,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의 기억에 더 집중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즐겁게 잘 쌓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톰 역할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이 기억 속 친구들과 여러 역할을 오가며 극을 이끌어가는 구조다.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과 기존 캐스트 사이의 호흡에 대해 전성우는 망설임 없이 "너무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각자의 기량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다 함께 고민했어요. 또 더 좋은 방향을 위해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의 합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기존에 함께했던 배우들이나 새로 합류한 배우들 모두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열정이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지는 느낌도 좋았습니다."

이번 시즌 유일하게 다시 '톰'을 맡은 배우로서 새롭게 합류한 다른 톰 역의 배우들과 나눈 이야기에 대해서는 진솔한 답변을 남겼다. 그는 "사실 톰들끼리 주고받는 대화가 아주 많지는 않았어요"라며 "기욤 피지 연출이 오리지널 톰이기도 해서 아무래도 연출님과 주고받는 이야기가 훨씬 많았던 것 같아요. 톰 역의 배우들끼리는 아무래도 공연마다 페어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우리가 무대에서 꼭 지켜야 할 약속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죠"라고 설명했다.

텍스트 대신 신체 언어와 정교한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무대는 배우에게도 매 순간 깊은 울림을 준다. 전성우는 "이 작품은 음악과 움직임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며 "이 작품의 음악만 듣고 있어도 가끔 울컥하며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말의 언어가 아닌 신체의 언어와 음악이 주는 정서가 조화롭게 이루어져 전달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공연을 마치고 극장을 나설 관객들을 향한 전성우의 바람 역시 작품의 따뜻한 온도를 닮아있었다.

"기억은 언제나 새로 생기고, 어떤 것은 잊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축적한 채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언젠가는 이 공연도 잊히겠지만, 관객분들의 기억 속에 잠시라도 좋은 기억으로 스쳐 지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공간의 냄새, 공간의 열기,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까지 좋은 기억으로 머물고, 그 흔적이 관객분들의 인생에 한 조각으로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2007년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로 데뷔한 전성우는 매체와 무대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전성우에게 두 영역의 차이에 대해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라이브(Live)'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는 "매체는 그 장면과 그 캐릭터에 가장 맞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찾아 카메라에 담으려 하지만, 무대는 시작을 하고 나면 설령 그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더라도 흐름이 끊기지 않게 그 안에서의 드라마를 이어 나가야 해요. 그래서 라이브함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활동 범위를 넓혀가며 작품을 대하는 기준에도 변화가 있었을 법하지만, 그가 가진 기준은 여전히 명확했다. 그는 작품 선택 기준과 관련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요. 기억도 변한다고, 예전에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인가, 내가 해보고 싶은 역할인가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하는 것 같아요"라며 "항상 새로운 변화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전성우에게 연기를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관객이다. 정답이 없는 연기라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채찍질할 때, 관객들이 보내주는 공감과 위로는 그를 다시 무대로 이끄는 힘이 됐다.

"솔직히 저를 응원해 주시는 관객분들과 팬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계속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하며 연기를 하기 때문에 어렵고 불안할 때가 많거든요. 좋은 결과물을 보여드리기 위한 고민이지만, 정답이 없기 때문에 늘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저의 고민의 시간을 보시고 '용기를 얻었다', '힘이 된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주실 때면, 저도 큰 위로를 받으면서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게 원동력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정답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찾아가고 공감하는 그 느낌 자체가 제게는 원동력이 됩니다."

치열하게 계획을 세우고 몰입해야 하는 작업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찾는 휴식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고 자유로웠다. '늘보'라는 그의 별명처럼 서두르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템포를 즐기는 휴식이다.

"아무래도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머리도 많이 쓰고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목적지 없이 많이 걸으려고 합니다. 길을 잃는 것도, 잃었다가 다시 찾는 것도 좋아해요. 그 과정에서 평소에는 지나쳤을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거든요. 그런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 저에게는 좋은 휴식이 되는 것 같아요."

이처럼 무대 안팎에서 끊임없이 달리는 전성우가 꿈꾸는 미래는 명확하다. 그는 "누군가 어떤 역할을 떠올렸을 때 딱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나만의 강점과 색깔이 뚜렷하게 각인된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라며 앞으로 펼쳐질 연기 행보에 대한 기대를 더했다.



공연 개막과 함께 맞이한 이번 추석 연휴, 전성우의 명절은 어김없이 무대 위에서 이어진다. 연휴 동안의 계획을 묻자 그는 "이번 연휴는 '네이처 오브 포겟팅'과 함께 할 것 같아요"라며 작품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만약 명절 연휴 동안 쉴 수 있는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보내고 싶냐는 질문에는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어요"라는 소박한 바람을 드러냈다.

추석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그려지는 기억은 듣는 이로 하여금 소소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는 큰집에서 항상 제사를 지냈어요. 제가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음식을 좋아하거든요. 그중에서도 밥알이 가득한 식혜를 좋아했는데, 만들고 식힐 때 계단에 놓으시면 거기서 밥알을 가득 떠서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이번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빌고 싶은 소원으로 "무탈하게 잘 지내게 해주세요"라는 담백한 바람을 전한 전성우. 그는 명절에도 극장을 찾아줄,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한가위를 맞이할 관객과 팬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따뜻한 추석 인사를 건넸다.

"올해 추석은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풍성하고 따뜻한 한가위 잘 보내시고, 남은 2026년에도 좋은 일과 행복한 순간이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높은엔터테인먼트, 연극열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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