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다중인격극인 줄 알았는데…" 잔혹하지만 매력적인 연극 '알테르 에고'[공연 뒤풀이]
입력 2026. 09.26. 06:00:00

알테르 에고

[셀럽미디어 임예빈, 정원희 기자] 무대 위 단 두 명의 배우,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2인극은 오롯이 배우의 역량과 텍스트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진행된다. 연극 '알테르 에고'(Alter Ego)는 다중인격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꺼내 들었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흐름으로 객석을 숨죽이게 만든다.

1년에 100편 이상의 공연을 관람하는 공연 담당 임예빈, 정원희 기자가 '알테르 에고'를 관람한 뒤 솔직 담백한 후기를 나눴다.

◆ 연극 '알테르 에고'
회차 : 9월 17일(목) 20시 공연
출연: 이재균(스탠리 역), 손지윤(윌버 역)

1. 첫인상과 서사 "뻔한 다중인격극인 줄 알았는데…"

임예빈 기자: 이번 '알테르 에고' 어떻게 보셨어요?

정원희 기자: 저는 1인극, 2인극처럼 소수 인원이 이끄는 극은 사실상 '배우의 연기가 8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두 배우의 연기와 합이 정말 만족스러워서 시작하자마자 80%는 이미 먹고 들어갔어요. 예빈 기자는 어땠나요?

임예빈 기자: 저는 처음 보는 작품일 때는 연기보다도 극이 '어디로 흘러갈까' 서사의 전개에 더 집중하는 편이에요. 연기가 거슬리거나 아주 압도적인 게 아니라면 일단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 보는데, '알테르 에고'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놀라웠어요.

정원희 기자: 공감해요. 요즘에는 워낙 쏟아지는 콘텐츠가 많다 보니 중반쯤 지나면 대강 결말이 그려지잖아요. 그런데 '알테르 에고'는 확실히 그 예상에서 벗어나 있었죠.

임예빈 기자: 다중인격을 다룬 수많은 작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것과도 같지 않더라고요.

정원희 기자: 맞아요. 사실 무대 위에 의자 두 개만 덩그러니 놓고 두 사람이 끊임없이 심문하고 추궁하는 틀 자체는 연극에서 익숙한 포맷이잖아요. 하지만 껍데기만 비슷할 뿐, 극 알맹이는 완전히 새로웠어요.


2. 무대와 연출 "조명등 아래 선 자만이 발언권을 얻는다"

정원희 기자: 저는 무대 위에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세트를 억지로 과하게 꾸미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알테르 에고'는 무대가 군더더기 없이 굉장히 깔끔했어요.

임예빈 기자: 조명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전반적인 연출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스탠리의 수많은 인격 중 '어떤 인격이 조명등 아래 서느냐'에 따라 인물이 완전히 바뀌잖아요. 그 조명등을 다채롭게 변주한 게 시각적으로도 좋았고 작품 테마와도 잘 어울렸어요.

정원희 기자: 대사에서도 '조명등'이 계속 언급되잖아요. 결국 빛을 받은 인격만이 밖으로 나와 발언할 수 있다는 설정이니까, 조명이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작품의 언어처럼 기능했어요. 연출진도 조명에 공을 많이 들일 수밖에 없었겠더라고요.

임예빈 기자: 다만 중간에 과거 이야기를 재현하는 장면에서 배우들이 갑자기 소품을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부분은 살짝 번잡스럽게 느껴져서 아쉬웠어요.

정원희 기자: 맞아요. 갑자기 소품을 쓰고 동선이 어수선해지는 바람에 팽팽했던 텐션이 잠깐 흔들리는 느낌이 있었죠.

3. 이재균과 손지윤의 연기 호흡 "화려한 1인 다역 vs 묵직한 빌드업"

임예빈 기자: 연기 면에서는 초반에 여러 인격을 순식간에 갈아치우는 이재균 배우의 화려한 연기가 단숨에 시선을 끌었어요.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손지윤 배우의 진가가 드러나더라고요. 특히 과거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객석을 응시하다가 모자를 건네받기까지의 그 찰나, '연기 정말 좋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정원희 기자: 그 지점이 서사적으로도 중요하잖아요. 과거 회상으로 건너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구간이라 조금만 삐끗해도 극 전체가 어색해질 수 있거든요. 손지윤 배우가 완급 조절을 잘해내면서 흐름을 정말 자연스럽게 연결해 줬어요.

임예빈 기자: 관객과의 대화(관대) 때 이재균 배우가 '한 극에서 다른 캐릭터를 맡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는데, 멀티캐(한 배우가 여러 역할 소화)라고 생각하면 무대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에게는 풀어갈 여지가 있는 캐릭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윌버 역의 배우가 스탠리를 상대하며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게 중요한 극이라는 감상이에요.

정원희 기자: 맞아요. 이재균 배우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사실 스탠리가 다중인격이라는 건 극 시작 10분 만에 관객 누구나 알 수 있는 명확한 설정이잖아요. 반면 윌버는 배경 정보가 거의 주어지지 않은 채 '정신과 의사'라는 정보만으로 시작해요. 그 상태로 엔딩까지 극 전체를 은근하게 지탱하며 끌고 가야 해서 연기하기 까다로운 캐릭터였을 텐데, 손지윤 배우가 서서히 스며들듯 잘 소화했죠.

임예빈 기자: 동의해요. 과거 장면에서 감정이 터져 나오며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숨이 턱 막히는 전율이 있었어요.

정원희 기자: 스탠리 역의 배우 팬이라면 8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캐릭터를 다 만나볼 수 있으니 '종합선물세트' 같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짧은 시간 안에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 차력쇼에서 폭넓은 캐릭터 변주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니까요.

[※ 스포일러 주의]


4. 반전의 묘미 "황정음이 사실 지성이었다?"

임예빈 기자: 자, 이제 본격적인 스포일러 구간인데요. 저는 드라마 '킬미, 힐미' 생각도 났거든요. 솔직히 한마디로 요약하면 "황정음이 사실 지성이었던 격" 아니었나요? (웃음)

정원희 기자: 너무 적절한 비유네요. 사실 과거 장면에서 윌버가 갑자기 어린 스탠리를 연기할 때 '왜 굳이 역할을 바꿔서 하지?' 싶었거든요.

임예빈 기자: 저도 그 장면이 처음엔 의아했어요. 꼭 스탠리가 찰머를 연기해야 하나? 하지만 결말을 보고 나니 납득이 됐어요. 그 장면에서 두 인물 모두 왜 그렇게 울고 있었는지도 비로소 이해가 갔고요.

정원희 기자: 맞아요. 처음엔 '단순 재현이라면 새아버지 역할을 윌버가 맡아도 됐을 텐데 왜 굳이 어린 스탠리를 연기시켰을까' 싶었는데, 결국 결말에 드러나는 '윌버 역시 스탠리 인격의 일부였다'는 복선을 슬쩍 던져둔 거였죠.

임예빈 기자: 스토리를 본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내내 '주인격이 누구인가'를 집요하게 쫓았거든요. 처음엔 '스탠리인가?' 했다가, '대니 같은데?'했어요. 보통 영화 '아이덴티티'처럼 가장 어리거나 유약한 인격이 핵심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또 더 보니까 '아 혹시 윌버?' 이런 식으로 계속 뒤집혔어요.

정원희 기자: 저도 '아이덴티티'를 떠올리면서 당연히 대니일 거라 예상했죠. 그런데 이 작품의 반전이 참 영리했던 게, 떡밥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결말 직전까지 관객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교란했다는 점이에요. 그러면 예빈 기자는 결말의 진실을 정확히 언제 눈치채셨어요?

임예빈 기자: "스물네 개, 잘 생각해 봐"라는 대사가 나왔을 때 알았던 것 같아요. 윌버가 주인격일지 모른다고 잠시 의심하긴 했는데, 윌버도 스탠리의 수많은 인격 중 하나였을 거라곤 상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정원희 기자: 맞아요. 심지어 인격들끼리도 서로를 아는 인격이 있고, '누구세요?' 하며 현재 상황 조차 전혀 모르는 인격이 뒤섞여 있어서 더 혼란스러웠죠. 알고 보니 관객 전체를 거대하게 속인 완벽한 트릭이었어요.

5. 관대 비하인드 "가장 마음이 쓰였던 인격은?"

임예빈 기자: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격'에 대한 질문도 나왔잖아요.

정원희 기자: 저는 이재균 배우가 의외로 '앨런'을 꼽았던 답변이 기억에 남아요. 가장 일상적인 호흡을 가진 인간적인 인격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수긍이 가더라고요. "담배 하나 줘봐" 하는게 정말 옆집 아저씨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활 연기 같달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인격은 연출님과 마찬가지로 '케빈'이었어요. 케빈의 대사를 들으면서 작가가 세상에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가장 묵직하게 응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임예빈 기자: 저도 케빈인데, 닿은 지점은 조금 달라요. 케빈의 행동이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회를 직시하며 분노를 터뜨리는 지점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거든요. 저는 그 인격을 보면서 '만약 이 모든 인격이 온전히 통합되었다면, 스탠리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가 가장 궁금해지더라고요. 사회의 부조리를 꿰뚫어 볼 줄 아는 깨어 있는 시선을 지닌 청년이었을 텐데, 끔찍한 학대와 충격 속에서 인격이 산산조각 나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게 다가왔어요.

정원희 기자: 듣고 보니 그렇네요. 고통으로부터 본체를 보호하기 위해 파편화된 방어기제 속에서, 가장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본래의 자아와 분노가 가장 선명하게 발화된 형태가 바로 케빈이었던 셈이니까요.

임예빈 기자: 맞아요. 25년 동안 잠들고 쪼개지며 쌓인 결핍과 욕망들이 드러날 때마다 '이 사람이 제때 온전하게 치유되고 통합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애틋함이 남았어요.


6. 아쉬운 한 끗 "관객에게 조금 덜 친절해도 좋았을 텐데"

임예빈 기자: 다만 아쉬운 지점도 분명했어요. 저는 가장 결정적인 과거 회상 씬에서 호흡이 조금 더 빨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정원희 기자: 아무래도 객석에서 지켜보기가 심리적으로 너무 지치고 힘들었죠?

임예빈 기자: 네. 무슨 의도인지, 왜 필요한 장면인지 다 알겠는데 너무 길어요. 이미 관객은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고 있잖아요. 길고 집요하게 진행되다 보니까 객석에 앉아 있는 시간이 조금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정원희 기자: 맞아요. 이미 그 장면이 시작하기 전부터 예상할 수 있게 복선을 깔아뒀으면서, 정작 회상에 들어가서는 설명이 너무 길어졌어요.

임예빈 기자: 대니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암시가 전혀 없었다면 그렇게 친절한 설명이 필요했겠지만, 이미 알 만한 정보를 불필요하게 반복하는 느낌이었어요. 트리거를 유발할 수 있는 장면이잖아요. 해외 콘텐츠들은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장면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모자이크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그런 부분을 다 보여주잖아요.

정원희 기자: 요즘 콘텐츠 전반의 경향인 것 같기도 해요. 관객들이 은유나 상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할까 봐 창작진들이 과도하게 친절해지려고 하는 게 보이거든요. 그런데 그 친절함이 과해지면 극의 세련미가 떨어지고 만듦새가 얕아 보일 위험이 있죠. 그렇다보니 해당 장면도 과하게 설명적으로 풀어진 것 같아요.

임예빈 기자: 맞아요. 어설프게 현실에 발을 걸치고 설명하려 들기보다 차라리 과감한 생략과 상징으로 밀고 나갔다면 훨씬 깊이 있는 관념극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아요.

7. 총평 및 추천 "트리거 경고 필수, 좁은 타깃층의 다크한 수작"

정원희 기자: '알테르 에고'는 연극 '온 더 비트'(On the Beat)를 쓴 작가의 작품이에요. '온 더 비트'가 제 대학로 입덕작이라 정말 기대를 많이 했거든요. 작가가 가정폭력의 상처 같은 어두운 구석을 파고드는 데 탁월한 면이 있다는 걸 또 한번 느꼈어요. 그 특유의 색채가 이번 작품에도 잘 살아있었거든요.

임예빈 기자: 저는 사전 정보 없이 왔는데, 생각보다 훨씬 팽팽하게 흘러가서 잘 봤어요. 하지만 "주변에 선뜻 추천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결코 가볍게 입이 떨어지진 않을 것 같아요. 극 초반부터 쏟아지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묘사의 트리거 강도가 세서, 볼 수 있는 관객층이 좁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정원희 기자: 맞아요. 특히 포스터만 언뜻 봐서는 이렇게까지 어둡고 잔혹한 극인지 모른 채 예매할 관객도 있을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럽더라고요. 예매창에 있는 트리거 경고를 아주 명확하게 인지하고 들어와야 하는 극이에요.

임예빈 기자: 그래도 배우들의 딕션이나 전달력이 마이크 없이도 귀에 꽂혔고, 몰입감 하나만큼은 끝까지 놓치지 않았어요. 특히 분리되어 있던 두 인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연기해 낸 손지윤 배우와, 완벽한 빙의 연기를 펼친 이재균 배우의 연기는 정말 좋았어요.


◆ 한줄평 & 별점

★★★★☆ (4.0 / 5.0)
"'이재균이 아니면 누가 해' 싶을 정도의 신들린 연기, 손지윤의 영리한 빌드업. 트리거에 무딘 연극 마니아라면 한 번쯤 꼭 보길."(정원희 기자)

★★★☆☆ (3.8 / 5.0)
"세련된 무대 연출과 두 배우가 만드는 깊은 몰입감이 매력적인 심리극. 하지만 쉽사리 추천은..."(임예빈 기자)

[셀럽미디어 임예빈,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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