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향하는 여정에 있는 우리를 위하여,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리뷰]
입력 2026. 10.12. 16:22:15

콰이어 오브 맨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어느 가게가 단골집이 되는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온기와 정겨움, 그리고 오롯이 환영받는다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 '아, 이 집은 내 단골집이 될 것 같다'라고 직감한다. 여기, '더 정글(The Jungle)'이 그렇다.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은 2017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초연 이후 호주, 뉴질랜드, 미국, 영국을 거쳐 2026년 9월 대한민국 공연의 중심 대학로에 상륙했다. 이번 한국 초연은 '콰이어 오브 맨'의 비영어권 최초 공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작품은 동네의 작은 펍(Pub) '더 정글'을 배경으로 저마다의 뚜렷한 개성을 가진 9명의 인물로 이루어진 콰이어 팀의 모습을 담아낸다. 굵직한 스토리 대신 배우들과 관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노래하며 한 폭의 그림을 그려가는 구성이 특징이다.

'콰이어 오브 맨'의 러닝타임은 100분으로 기재돼 있지만 사실 120분이라고 봐야 정확하다. 본 공연 20분 전 시작되는 프리쇼 덕분이다. 티켓부스에서 미리 구매할 수 있는 드링크 쿠폰을 지참한 관객들은 바맨에게 무알코올 맥주를 받으며 맥주와 거품의 환상적인 비율에 대해 토론하고, 무대 한편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잔 쌓기 게임에 열을 올린다. 프리쇼가 진행되는 동안 누구나 자유롭게 무대에 올라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드링크 쿠폰이 없어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다.

프리쇼의 분위기는 본 공연에서도 계속된다. 배우들은 무대와 객석을 오가며 관객과 호흡하고, 관객들 역시 무대 위로 불려 나가 자연스럽게 공연의 일부가 된다. 가만히 앉아서 보는 뮤지컬이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낯선 인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박수와 호응을 유도하는 배우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푹신한 극장 좌석이 아니라 묵은 손때와 끈적함이 밴 펍의 나무 의자라는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귀에 익은 넘버들도 친밀한 분위기를 돋운다. 케이티 페리 'Teenage Dream', 시아 'Chandelier', 퀸 'Somebody To Love'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The Impossible Dream' 등 장르를 넘나드는 히트곡들이 라이브 연주와 웅장한 아카펠라 편곡으로 울려 퍼진다. 탭댄스와 경쾌한 맥주잔 퍼포먼스가 더해져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팝송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공연 중간 울려 퍼지는 이소라의 '제발'에 반가움을 느끼지 않을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콰이어 오브 맨'에는 9명의 배우가 각자의 이름으로 무대에 오른다. '포엣' '로맨틱' '바맨' 등 각자의 역할은 정해져 있지만, 본인의 이름과 저마다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펼쳐 놓는다. 작품의 서술자인 '포엣' 역의 김지철은 다정한 미소로 관객들을 '더 정글'의 세계로 안내하고,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로맨틱' 역의 신은총은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폭발적인 고음으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조커' 역 강윤석은 쉴 틈 없는 유쾌함으로 장내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마에스트로' 역 송권웅은 섬세한 피아노 선율로 감성을 채운다. '비스트' 역 문시온은 진솔한 기타 연주로 마음을 울리고, '하드맨' 김방언은 거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의외의 따스함을 보여준다. 펍의 생맥주를 책임지는 '바맨' 유성재는 중년의 씁쓸한 무게를 유쾌한 위트로 승화시키며, '핸디맨' 역 이성훈은 현란한 탭댄스로 감정의 파동을 시각화한다. 마지막으로 '보어' 역 강리운은 묵직하고 단단한 저음으로 콰이어의 뼈대를 든든하게 받친다.

특히 후반부 '홈 스피치'에는 '집'에 대한 배우들이 진짜 이야기가 담긴다. 공연이 대본과 실제 이야기 사이를 오고 가는 사이 관객 역시 자신의 '집'을 떠올리게 된다. 긴장감을 얹고 있던 어깨를 축 늘어뜨릴 수 있는 곳,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는 곳, 익숙한 맛이 반겨주는 곳. 10평도 안 되는 곳에 몸을 누이다가 본가에 갔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 혹은 작고 낡았지만 나만을 위한 공간이 주는 포근함 같은 것들.


자가는커녕 월세, 전세를 감당하기도 나날이 힘들어지는 요즘, 누군가는 살지도 않을 집을 쥐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3평 남짓 고시원이 월 40만원, 대학교 앞에서는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임대업자들의 플래카드가 빼곡하다.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은 점점 멀어지는 가운데, 청년들은 청약 통장을 깨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자신이 나그네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콰이어 오브 맨'이 이야기하는 집은 그래서 몸이 눕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누울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니까, 비록 그게 진짜 '집'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집보다 더 많이 찾았던 시장 안 작은 전집, 속상한 일이 있으면 찾게 되는 나만의 맛집, '더 정글'처럼 나의 곁을 지켜온 단골 술집. 이 작품은 우리가 무엇을 '집'이라고 부르는지,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이상향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렇기에 '콰이어 오브 맨'에는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던 공동체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다. 떠돌이가 하룻밤 쉬어갈 곳이 되어주던 펍, 말동무 없이 와도 친구가 생기는 공간. 다시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마음에 새겨지는 다정함이 있는 곳.

'콰이어 오브 맨'은 이러한 메시지는 합창을 통해 완성된다. 여럿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노래하는 합창처럼, 우리도 서로 발맞추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듯이.

떠들썩하지만 들어줄 귀가 있고, 이야기가 있지만 캐묻지 않는다. 우리는 눈빛으로도 대화할 수 있고, 부딪히는 잔으로도 100마디를 건넬 수 있으니까. 모든 것을 다 이해할 필요 없으니 부담스럽지 않고,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으니 시간이 알아서 증명해 줄 테다.

집을 찾는 우리에게 맥주 한 잔과 음악을 내주는,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은 오는 2027년 1월 3일까지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투자증권홀에서 공연된다.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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