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정이’ 시즌2에 대해 [인터뷰]
입력 2023. 01.27. 17:24:45

'정이' 연상호 감독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이번에도 새롭다. 기존 장르의 문법과 스타일을 비틀었던 연상호 감독이 또 다른 세계관의 문을 열었다. 우리가 알던 SF 영화에서 한 단계 진화한 새로운 장, ‘정이’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이 영화는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난 故 강수연의 유작으로도 알려져 공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은 바.

“‘지옥’을 하고 있을 때 ‘정이’ 대본을 다시 읽어봤어요. 멜로드라마와 SF가 결합된 작품이라 고전적이면서 우아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분은 강수연 선배였죠. 그러나 강수연 선배님을 캐스팅한다는 건 큰 산이었어요. ‘지옥’을 같이 한 양익준 배우가 강수연 선배와 연이 있었죠. 연락처를 받고 장문의 문자를 보냈어요. 스쳐 지나간 인연부터 시작해서 구질구질하게 문자를 보냈죠. 하하. 1이 사라졌는데 답이 없으시더라고요. ‘큰일 났다, 엉뚱한 사람에게 보냈구나’ 싶었죠. 그래서 지금까지 친하게 지낸 전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에게 연락해 첫 통화가 됐어요. 나중에 ‘읽씹’한 이유를 물으니 강수연 선배님은 스팸 문자인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강수연 선배님이 술을 잘 드세요. 제가 술을 잘 못 마시는데 술 깨는 약을 먹고 가서 ‘정이’에 대해 말씀 드렸어요. 그랬더니 ‘그래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맥이 풀리면서 만취가 됐던 기억이 나요.”

고 강수연은 2013년 영화 ‘주리’ 이후 오랜만에 ‘정이’로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약 9년 만의 복귀작이었기에 새로우면서 달라진 낯선 환경이 걱정되기도 했을 터. 현장에서 어땠냐는 질문에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이 큰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며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전에 촬영하던 현장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죠. ‘많이 낯설어하시면 어떡하지?’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분인지 몰랐던 상태라 예민하실까 걱정도 했죠. 그러나 강 선배가 현장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막내 스태프의 경우, 잘 모를 수도 있어요. 막내 스태프까지 영화계의 큰 엄마처럼 감싸고, 다독여주고, 현장을 끌고 가셨죠. 현장을 너무 사랑하시더라고요. ‘영화를 안 찍고 어떻게 버티셨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정이’의 경우, 표현보다는 절제하는 게 핵심이라 선배님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아주세요, 절제해주세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정말 마지막에 폭발하는 걸 볼 땐 전율이 흐를 정도로 ‘전설의 명배우답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전설의 전투 용병으로 뇌복제 실험 대상이 되는 정이 역에는 김현주가 분했다. 김현주는 전투형 용병 A.I. 정이 역으로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강렬한 변신을 알렸다. 특히 김현주는 연상호 감독과 앞서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으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지옥’ 작업에서 재미있었어요. 유아인, 김현주, 양익준 배우 등 접점이 없는 배우들이라고 생각했죠. 김현주 배우는 TV 중심이었고, 양익준 배우는 독립영화 중심이었죠. 모아놓고 보니까 나타나는 시너지가 있더라고요. 오히려 그런 것에서 영화의 신선함, 작업할 때 재미를 느꼈어요. 김현주 배우는 ‘지옥’ 때 액션 트레이닝을 오랫동안 했어요. 그래서 잘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죠. ‘정이’를 찍으면서 트레이닝을 많이 하진 않았어요. ‘지옥’ 때 많이 해서 필요가 없는 상태였죠. 최종적인 룩을 완성하기 전, 스틸 사진 몇 개를 찍어보기도 했는데 그때 많은 확신이 들었어요.”



더불어 ‘지옥’ 때 함께 작업했던 류경수까지 ‘정이’에 등장한다. 세 사람은 ‘지옥’ ‘정이’에 이어 차기작 ‘선산’까지 연속해서 호흡하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 작업을 하게 됐다.

“작업을 하다보면 배우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잖아요. 이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현장에서 많이 느껴요. ‘선산’의 경우, 제가 찍는 건 아니에요. 각본, 제작만 맡고, 다른 감독님이 맡고 있죠. ‘선산’을 연출하고 계신 감독님은 저와 ‘부산행’ 때부터 조감독으로 오래했던 감독님이에요. 첫 작품이다 보니 배우로서 불안한 면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김현주 배우가 리드를 해줬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다행히도 김현주 배우가 재밌게 생각해주셔서 같이 하게 됐어요.”

연상호 감독은 이들의 연기를 보며 새롭게 느낀 점도 전했다.

“류경수 배우는 본인이 맡은 역할에 대해 정교하게 설계할 줄 알더라고요. 상훈의 초반룩은 알쏭달쏭한 게 있었어요. 영화를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니까 전체적으로 ‘이게 맞나?’란 생각을 했죠. 그러나 류경수 배우는 확신이 존재하더라고요. 전체적으로 세워놓은 라인을 정확하게 알고, 대선배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구현했어요. 박정민 배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류경수 배우도 치밀하더라고요. 김현주 배우는 단순하게 연기를 보며 놀란 건 엔딩장면이었어요. 강수연 선배와 마주하는 장면에서 사실 김현주 배우가 안 나오거든요. 모션 픽쳐인데 얼굴은 존재하지만 상징적으로만 존재해요. 마지막에 연기해야하는 걸 알고 저에게 ‘얼굴이 움직이냐?’라고 묻기에 ‘안 움직인다. 눈으로만 표현해야 한다’라고 했어요. 제가 요청한 건 눈을 깜빡이는 것과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었어요. 그 두 개만 가지고 배우가 100% 표현해야 했죠. CG팀은 연기를 보면서 눈의 깜빡임, 반사광을 조절하면서 그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고요. 배우로서 그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누적된 경험일 수 없어요. 그런 것에 대해 (김현주가) 치밀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데뷔까지 오랜 시간 동안 연기했는데 ‘정이’ 작업할 때 느낀 건 처음 연기하는 사람이 다시 연구해서 하는 느낌이 들었죠.”



‘정이’는 인류가 내전에 돌입한 22세기라는 배경 속에 전설적인 전투 용병의 뇌를 복제해 전투 A.I.를 개발한다는 신선한 설정을 담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이름인 ‘정이’와 SF 장르라는 이질적인 결합에서 사이버 펑크 장르 특유의 디스토피아와 최첨단의 기술이 공존하는 세계관, 인간과 로봇의 경계에 선 전투형 A.I. 정이와 정이를 개발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연상호 감독 특유의 복합장르적인 재미를 더한다. 한국인에게 조금은 낯설 수 있는 ‘로봇’을 소재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에 둘째가 돌이었어요. 식구들끼리 돌잔치를 했죠. ‘정이’라는 걸 한다고 보여드렸어요. 장인어른이 보시곤 ‘너무 허무맹랑한 거 아니냐. 갑자기 로봇?’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아무래도 한국에서 SF 장르가 그만큼 낯설잖아요. 감독인 저도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하는 로봇은 낯설어요. 대중들도 많이 낯설 거고요. SF 장르의 낯섦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보편타당한 소재가 어렵지 않은 스토리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게 기획의 포인트였죠.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은 주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드는 영화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으면 했죠.”

연상호 감독은 SF 장르 속에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높이기 위해 프로덕션 디자인, 촬영, 조명, 세트, VFX 등 각 팀과 유기적인 협업을 진행해 완성도 높은 세계관을 완성해냈다.



“결과물은 제가 생각했던 느낌이 들었어요. 이 영화가 넷플릭스로 공개되고, 전 세계 대상이기에 10대, 20대 젊은 관객층이 볼 확률이 높잖아요. 그들에게 이 영화의 장르가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고, 기대돼요. 필립K. 딕 작가의 단편 소설 중 ‘사기꾼 로봇’이라는 게 있어요. 그 단편 소설은 외계인과 전쟁이 있는 시대인데 자기(주인공)가 외계인의 폭탄이라 오해를 받고 쫓겨나죠. 마지막에 보면 자기가 외계인이 맞았어요. 그러면서 폭발하고 끝나요.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SF를 처음 접하는 분들도 제가 받았던 신기한 감정, 신기하면서도 보편적인 감정을 느꼈으면 해요.”

‘정이’는 지난 20일 공개 후 3일 만에 1,93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영화(비영어) 부문에서 1위를 차지, 한국을 비롯해 미국, 독일, 스페인, 대만, 싱가포르 등 총 80개 국가‧지역의 TOP 10 리스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정이’의 시즌2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저는 영화를 만들면서 항상 뒤를 상상해요. 이야기를 상상하는 건 제 자유잖아요. 이 영화를 만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을 판단하는 시간은 꽤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아니면 영원하게 엔딩을 내는 게 맞는가란 생각도 하죠. 뒤에 이야기가 한 번 더 나와서 된다면 할 수 있겠지만 상상해놓은 계획은 아직 없어요. 서현이라는 인물이 정이의 행운을 빌어주는 모습이 엔딩이죠. 어떻게 보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야기였어요. 그 엔딩, 이야기 보다 더한 메시지, 축복 같은 것들을 표현할 자신이 있다면 작업하겠죠. 지금은 행운을 빌어줄 이상의 축복이 존재할까 싶네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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