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노와 맥퀸, 90년대 패션천재의 파란만장한 운명
입력 2013. 01.21. 17:38:40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존 갈리아노의 컴백이 알려지면서 웹상에서는 그를 환영하는 글들이 넘쳐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도 팽팽하다. 인종차별 모욕죄로 디올에서 물러난 후 거의 2년 만의 패션계 복귀는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말이다. 갈리아노의 추락과 재기 소식에 3년 전 이맘 때 세상을 떠난 알렉산더 맥퀸의 운명이 자연스레 겹쳐지면서, 이들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1995년 이후 10여년의 화려했던 시절을 되돌아본다.
1960년생인 갈리아노와 1969년생 맥퀸. 이 둘은 런던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을 졸업했고 둘 다 지방시의 수석디자이너를 거쳤다. 존 갈리아노는 1995년 지방시에 입성했고 이듬해 27세의 맥퀸이 바톤을 이어받으면서 갈리아노는 크리스찬 디올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클래식하지만 진부해져버린 패션하우스에 젊은 기운을 불어넣으며 화제가 되기 시작했지만 그것만으로 이들의 업적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둘 다 자신의 고유 라벨을 통해 거대 패션하우스에서 보여주지 못한 독창성을 마음껏 뽐냈으며 패션계는 두 영국 디자이너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섹시하고 글래머러스한 여성미를 표현하던 갈리아노는 마들렌느 비요네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바이어스컷의 귀재였다. 전 세계 어느 곳, 복식사 속 어느 시대도 그에게는 창조적 작품의 모티프로 작용했으며, 그는 반복되는 디올 로고와 신문 패턴, 금속 로고장식의 새들 백 등 수많은 히트아이템을 만들어냈다. 또한 넘치는 끼와 쇼맨십으로 컬렉션 피날레에선 모델 뺨치는 워킹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16세 때 이미 섀빌 로우(맞춤 양복점이 모여 있는 런던의 거리)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의상의 기술적 구조를 마스터한 맥퀸은 영국식 테일러링과 오뜨 꾸뛰르의 정교함을 완벽하게 결합하며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상’을 4번이나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재킷 어깨가 봉긋하게 솟은 맥퀸의 시그니처 실루엣은 몇 년 후 전세계적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갈리아노와 맥퀸이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급이 다른 패션쇼 스케일 때문. 일자무대의 런웨이를 무미건조하게 걸어 나오는 일반 쇼와는 달리 이들의 무대는 언제나 상식을 깨는 연출로 화제가 되었다. 존 갈리아노와 헤어디자이너 올란도 피타가 만들어낸 스타일은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었고, 한 모델 당 한 착장만을 고집하며 수많은 컬렉션지 표지를 장식했다. 맥퀸의 무대도 드라마틱하긴 마찬가지. 일자무대 자체를 거부하는 넓은 스테이지로 프레스를 당황시키면서도 서커스 같은 재미를 선사했던 그. 프레스들은 변화무쌍한 모델의 동선을 예측하며 초조하게 쇼를 기다리곤 했으며 무대는 시베리아 벌판도, 그로테스크한 동물원도, 실내악이 연주되는 콘서트홀도 되었다. 이와 같은 남다른 창의성 덕분에 그들의 쇼는 프레스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컬렉션으로 인기를 모으며 매번 치열한 티켓전쟁을 수반했다.
하지만 맥퀸은 3년 전 음독자살한 정신적 지주 이자벨라 블로우에 이어 2010년 2월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자 며칠 뒤 자택에서 목을 매 생을 마감하였고,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개최된 그의 추모전시회엔 66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한편 디올에서 14년간 승승장구하던 갈리아노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건 2011년 3월. 유대인을 비하하는 발언에 따른 모욕죄로 디올 하우스에서 해고된 데 이어 이듬해 프랑스 정부로부터 수여받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마저 박탈당하며 갈리아노는 패션계에서 쓸쓸하게 퇴장한다.
90년대 중반 화려하게 등장해 2000년대를 호령하다 불행히 사라진 갈리아노와 맥퀸. 공교롭게도 지난 18일 패션계에는 이들과 관련된 소식이 나란히 전해졌다. 갈리아노의 컴백, 그리고 현재 ‘알렉산더 맥퀸’을 맡고 있는 디자이너 사라 버튼의 출산으로 2013 F/W 컬렉션은 작은 프리젠테이션으로 대신한다는 뉴스가 그것으로, 둘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예전의 설렘과 감격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물론 2013년 현재 패션계는 알렉산더 왕, 올리비에 루스테잉 등 젊고 창의력 넘치는 스타 디자이너들이 새 시대를 이끌고 있지만, 많은 이들은 아직도 존 갈리아노와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두 천재가 주름잡던 그 10여년을, 그리고 그들이 선보였던 아름다운 작품들을 잊지 못하고 있다.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fnews@mkinternet.com/사진=유튜브 캡처, 알렉산더 맥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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