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안 뷰티’에 빠져버린 패션계
- 입력 2013. 01.28. 13:13:49
-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다음은 1966년 1월 24일자 경향신문 해외토픽 란에 ‘동양모델이 많아져 봄철 맞는 佛패션계’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 전문이다.
‘봄철 의상 쇼를 열 파리의 이름난 패션하우스를 구경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중국, 캄보디아 등 아시아 아가씨들과 구아계 여성이 파리 패션계에서 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심지어는 봄철 패션쇼에 나타난 모델 중 동양 모델이 영미계 모델보다도 많을 것 같다.’본문 속 ‘구아계’란 유라시아계를 의미하며, 우리나라 모델들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인지 기사는 ‘아가씨’라는 단어로 이웃나라 모델의 활약상을 짧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1999년 5월 7일 매일경제신문은 ‘패션모델 기준 달라진다. 키·미모보다 개성미 중시’라는 제목으로 당시 샤넬 컬렉션에 등장하며 이름을 날리던 일본계 혼혈 미국 모델 데본 아오키를 소개하고 있다.
데본 아오키는 1995년, 13세의 나이에 데뷔하여 16세에 베르사체의 뮤즈가 된 이후 동서양의 매력이 묘하게 섞인 신비로움으로 인기를 몰다 ‘DOA', '분노의 질주’, ‘씬 시티’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의 변신에도 성공한 모델.
아오키 이후 모델계에서 일본의 파워를 또 한 번 각인시킨 이는 아이 토미나가. 동양적 마스크와 큰 키로 당당히 서양모델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는 17세에 ‘보그’지에 사진이 실리며 해외 활동을 시작해 2001년 뉴욕 컬렉션으로 데뷔, 아시아 모델 열풍에 불을 지폈다.
이처럼 해외 패션계에서 아시아 모델의 활동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텃세와 편견 속에서 주류로 편입되지 못한 것도 사실.
2005년 미국 ‘보그’지로 데뷔 후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한국의 혜박이 한 인터뷰에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섰던 쇼 중 29개가 아시아 모델 최초였다. 여전히 백인 모델만을 고집하는 디자이너와 브랜드도 있다.”고 밝힌 사실은 세계 무대에서 아시아 모델이 얼마나 소외받아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2013년 전 세계 캣워크에 불어 닥친 아시아 모델의 파워는 그 어느 때보다 무섭다. 그리고 그 선두엔 중국이 서 있는데 현재 '모델스닷컴(models.com)' 톱50 중 무려 5명이 중국인이다.
중국 모델 열풍의 선두 주자는 바로 리우 웬.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광대뼈와 보조개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그는 빅토리아 시크릿 최초의 동양모델이자 에스티 로더의 얼굴이다. '모델스닷컴' 5위로 아시아 모델 중 가장 높은 순위에 올라 있으며 아름다운 미소와 감각적인 스트리트 패션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2010년에 빅토리아 시크릿 무대에 오른 수이 허는 시세이도의 모델이자 랄프 로렌 컬렉션의 오프닝을 장식한 첫 아시아 모델. 큰 눈과 각진 턱선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현재 H&M, 로베르토 카발리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화장품의 모델로 알려진 페이페이 순은 귀족적인 마스크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으며 아르마니 외에 캘빈 클라인의 코스메틱 컬렉션의 모델도 거쳤다.
마크 제이콥스의 새로운 뮤즈로 떠오른 샤오 웬 주. 2010년 뉴욕컬렉션으로 데뷔한 그는 쌍꺼풀 없는 작은 눈과 먼 미간의 베이비페이스가 영락없는 만화 속 동양소녀의 모습이다. 그리고 CK ‘원’ 광고로 얼굴을 알린 왕 샤오 역시 H&M과 레인 크로포드 광고에 출연하며 활동무대를 넓히고 있다.
대세가 된 중국모델 사이에서 고군분투 중인 일본의 타오 오카모토. 2006년 데뷔 이후 서구적인 마스크와 중성적 이미지로 어필해 온 그는 토미 힐피거, 엠포리오 아르마니 등을 거치며 일본 출신 모델 중 가장 바쁘게 커리어를 쌓고 있다.
한편 한국모델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활발하게 활동해 온 혜박과 한혜진, 강승현에 이어 박지혜와 김성희가 주목받고 있다. 박지혜는 2013 S/S 알렉산더 왕과 루이 비통 등의 빅 쇼에 오른 것을 비롯해 '모델스닷컴'에서도 주목받는 신인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김성희는 2013 S/S 미우미우 광고에 이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고 있는 중.
이처럼 아시아계모델의 설자리가 넓어진 것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중국이 패션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데 따른 어쩔 수 없는 전략이며 아시아 디자이너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아시아 모델의 성공신화를 폄하하기엔 그들은 지나치게 매력적이고 분위기와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더불어 넓은 무대로 나아가 서양 모델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그들의 도전 역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매경닷컴 MK패션 김희선 기자 fnews@mkinternet.com/사진=MK패션DB, 모델스닷컴 홈페이지, 데본아오키, 리우웬, 수이허, 샤오웬주 페이스북, 아이토미나가, 페이페이순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