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두화가 이소발의 플랫슈즈와 신발에 담긴 행복 [인터뷰]
- 입력 2013. 03.29. 10:11:47
-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스칼라티움 아트 스페이스`에서 이소발의 개인전 ‘결혼하는 이들을 위하여’가 열렸다. 그는 수채화와 다양한 천 그리고 꼴라쥬와 같은 기법으로 ‘기억을 담은 신발’과 ‘기억의 안경’, ‘마음으로 심은 화분’ 등의 연작을 만들어 왔다. “수시입학으로 홍익대 동양화과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어떤 걸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단지 대학에 입학하는 게 목표였기에 곧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건대쪽 학원에서 구두디자인을 배웠죠. 원래 어린시절부터 플랫슈즈 모으는 게 취미였거든요. 그런데 명품 디자인의 카피가 좋다고 평가하는 걸 보고 이 길은 제 길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신발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08년 삼청동에서 친구들과 단체전을 했는데, 신발 모형을 본떠 거기에 패브릭의 따듯함과 수채화 느낌을 가미한 작은 작품들을 제출했죠” 문득 그가 구두디자인을 꾸준히 배웠으면 구두를 만들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구두 가게를 내보고 싶다는 그는 함께 협업을 해보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또 이대 쪽 구석지고 후미진 곳에 위치한, 수입한 일본 신발을 파는 곳에서 구두 파는 일을 했다고 한다.
“제가 어린시절 구두 가게를 구경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시장에서 장볼 때 말을 잘 들으면 빨간색 구두를 사주셨어요. 그런데 저는 끈이 없는 걸 사고 싶었는데, 엄마는 제가 마르고 발에 살이 없으니까 늘 벨트가 있는 메리제인 슈즈를 고르셨죠. 플랫슈즈는 헐거웠거든요”
어린 소녀에게 구두란 어떤 의미였을까. 아마 패션보다는 만화 속 여주인공이 신은 끈 달린 구두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짐작했다. 하지만 ‘더그의 일기’를 좋아했다는 그는 여주인공보다 겨울에 난로를 떼는 풍경처럼, 삽화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이미지를 좋아했다고 한다. 한편 구제 옷이 많았던 그는 신발 작업에 들어간 천도 다 가지고 있을 만큼, 천에도 관심이 많다고. 이처럼 유년의 추억에서 비롯된 구두의 행보는 그의 인생에서 거침없이 이어졌다.
“‘바라라’라는 플랫슈즈는 학생들에게 조금 비싼 수제화였어요. 그런데 어느날 글을 잘 써서 홈페이지에 올리면 한 명을 뽑아서 신발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모델을 그리고 그 위에 제 옷을 코디해서 신발과 함께 찍어서 수제화를 받았어요”
2011년 ‘소중한 나를 위한 기막힌 여행’이란 책을 펴낸 그는, 2012년 인천 영종도서관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군인들이 뽑은 만나고 싶은 작가로 뽑혔다. 그림만 그렸다면 200~250명의 군인 앞에 서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며, 앞으로도 좀 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하나 둘 취직하는 친구들을 보며, 화가의 길에 대한 의구심으로 한때 패턴디자인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컴퓨터를 통해 배운 패턴작업은 결국 고스란히 그의 그림으로 연결됐다.
“제가 뉴욕에 갔을 때, 브루클린 벼룩시장에서 산 엽서에 한 커플이 그려져 있었어요. 나중에 제가 결혼하게 되면 청첩장 만들 때 도안하려고 구입했죠. 그런데 어느 날 엽서를 발견하고 이 그림을 구상한 거예요. 또 여기 신발들은 토론토 신발박물관에서 산 책을 참고했어요. ‘더 슈즈’(The Shoes)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웨딩슈즈를 담은 책인데, 책 안의 신발을 통해 그림 속 시대를 추측했어요”
데이트라는 제목의 다른 그림에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기본 모양의 플랫슈즈가 담겨있다. 첫 데이트의 설렘을 담은 작품에는 원래 테이블 위 커피만 놓여 있었다고. 처음 만난 남녀가 말 없이 보는 풍경이나 어색한 상황 또 길을 걸으며 나누는 이야기 등의 설렘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속 밝은 남자 구두코에 듬성듬성 뚫린 타공은 마치 수염처럼 보였다. 신발 주인은 꽤 털털한 사내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대신 오히려 뻐끔한 담배연기가 어울려 보인다. “이건 ‘연보라 빛 프로포즈’라는 제목의 작품인데요. 연보라색이 가장 여자들을 설레게 하는 색이래요. 또 꽃은 행복할 때 어디든 안 빠지잖아요. 그래서 이건 부케를 형상화한 거예요. 저는 플랫슈즈를 참 좋아해요. 색깔별로 예쁜 ‘프렌치 솔’이나 ‘나인웨스트’ 같은 브랜드는 너무 예쁜 것 같아요”
그의 작품 중 ‘아버지의 신발’은 실크스크린 작업이다. 늘 7시에 출근하는 아버지의 뒷모습만 보던 작가에게, 은퇴 후 평소 집안일을 돕지 않던 아버지가 설거지 하는 모습은 큰 충격이었다. 이처럼 그의 작업에는 소소한 일상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기억을 담은신발’은 다양한 여행에 대한 추억으로 얽힌 작업이에요. 이건 베르사유보다 아름답다고 해서 갔던 퐁텐블로 성과 그 근처 마트에서 샀던 신발이에요. 이건 중국에 가서 산 4,000원짜리. 또 캐나다에서 보낸 크리스마스와 뉴욕에서 산 신발. 또 늘 제가 기본으로 신는 검은색 플랫슈즈나 안동 하회마을 등, 그곳에 함께 했던 신발들로 구성된 그림이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구두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페티시 같은 욕망부터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희망, 또 연인 사이에는 구두를 사주면 도망간다는 속설까지. 이처럼 구두는 돌아섬과 어떤 상처 그리고 평생 닳도록 일했던 아버지의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가 패턴디자인을 배웠을 때 이브자리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어요. 그때 심사위원이 구두에 부정적인 의미가 있으니 이불 이미지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반대로 구두를 통해 행복이 찾아오기도 하잖아요.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직접 찾아갈 수도 있고요. 또 이별 후에 또 누군가 더 나은 사람이 다가올 수도 있겠죠”
분채의 매력과 번짐 그리고 투명함과 같은 동양화의 아름다움을 좋아한다고 밝힌 그는, 이런 기법위에 서양화의 재료를 폭넓게 사용하고 싶다고 한다. 그림만을 넘어 이소발이란 브랜드로 다양한 일을 하고 싶은 그에게, 그린다는 행위는 어쩌면 목적이 아닌 본인을 표현하는 수단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림 없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그의 작은 팔레트는 좌충우돌 뻗었던 호기심 속에 결국 회항하곤 했던 자신만의 선착장이었다. 기본이 되는 술 위에 다양한 음료가 나오는 칵테일처럼, 그림을 딛고 뻗어갈 이소발의 발걸음을 지켜보는 일은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하다.
[매경닷컴 MK패션 차평철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이소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