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기사 패션 SCENE] 장미희 ‘아방가르드 배키룩’, 판사·제사장의 런웨이 버전
- 입력 2018. 02.23. 16:39:11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KBS2 ‘흑기사’가 영원한 청년의 삶을 살게 된 남자와 그 곁에서 노인의 모습으로 죽어간 여자,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잔혹 동화’ 같은 결말로 아쉬움을 남기며 종영했다.
KBS2 '흑기사'
주인공들의 마지막 죽음은 처절했다.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최서린(서지혜)에 의해 죽음을 맞은 장백희(장미희)와 죽음보다 젊음인 채 문수호 곁에 남고 싶었지만 노인의 모습으로 소멸된 최서린까지 불행하지도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은 결말을 맞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위트와 진중함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균형감을 보여준 장미희는 이 드라마를 통해 역할 몰입을 위해서는 연기력은 물론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패션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장미희의 패션력은 결말을 향해 가면서 극강을 향해 치달았다.
드라마 중반에는 문수호(김래원)와 정해라(신세경)의 인연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써 최서린과 장백희의 비중이 높았으나 중반을 넘기면서 문수호(김래원)와 정해라(신세경)의 비중이 다시 높아져 장백희의 포용력 있는 위트를 볼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짧은 등장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장미희는 세밀한 감정 표현만큼이나 강도 높은 패션력으로 마지막까지 존재감을 발휘했다.
◆ 최서린 포기 못하는 장백희 ‘판사’ 드레스코드
기억을 되찾은 최서린이 문수호를 향한 목숨을 건 집착을 이어가자 최서린에게 최후통첩을 하기 위해 샤론 양장점을 찾을 당시 입었던 와일드 숄더의 블랙 코트와 문수호가 칼을 맞고도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를 찾기 위해 은장도를 갖고 주얼리 가계를 찾을 당시 입었던 오리엔탈 스타일 퍼 칼라 코트.
이 두 코트는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아우라를 발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감정 선에서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더는 미룰 수 없어 결판을 내리려 하는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판사와 같은 단호함이, 후자는 마지막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안타까움이 읽혀졌다.
스타일리스트 조윤희 실장은 “장백희는 극 중에서 사건 해결사 같은 역할을 한다. 극 말미에 블랙이 등장한 것은 최서린이 사라지면서 심리적으로 가라앉은 그런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였다”라며 말미에 블랙 컬러가 많이 등장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윤희 실장은 두 장면의 코트는 각각 자크뮈스, 릭오웬스 제품이라고 밝혔다.
자크뮈스는 아방가르드를 추구하는 실험정신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난 디자이너 브랜드로 공효진 같은 ‘핫’한 패피들이 입어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장미희는 ‘패션에 나이는 없다’라는 말을 입증하듯 마치 한 편의 웅장한 오페라를 보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자크뮈 코트를 극의 분위기에 맞게 완벽하게 소화했다.
릭오웬스 퍼 칼라 코트는 고풍스러운 주얼리샵 분위기에 맞춰 테슬 귀걸이와 함께 스타일링해 문수호와 정해라는 물론 최서린 모두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 문수호 정해라 결혼식 주례 장백희 ‘제사장’ 드레스코드
심각함으로 일관한 드라마 말미에 유일하게 웃음을 준 이 역시 문소호와 정해라 결혼식 주례로 등장한 장백희다.
장백희는 롱 베스트를 덧입은 듯한 긴 코트에 조바위를 연상하게 하는 모자를 써 양장 디자이너가 재해석한 한복인 듯 블랙룩임에도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주례라고 하기는 성스러운 아우라가 배어나는 장백희의 주례 패션에 대해 조윤희 실장은 “제사장 같은 느낌”이라는 말로 극 중 이미지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서두로 꺼낸 ‘제사장’이라는 군더더기 없는 표현과 달리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주례 패션이 탄생하기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조윤희 실장은 “전통혼례로 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현대 의상으로 전환됐다”라며 “전통 혼례에서 주례 역할을 했던 사람이 갓을 썼다고 해서 그런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의상 역시 현대식으로 재해석했을 때 어깨 라인이 강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 이 의상의 핵심이 이었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스타일링을 결정한 중요한 요소는 장백희의 배경이었다. “250년 산 사람이고 보부상을 하면서 세계 문물을 경험하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물이었던 만큼 이 모든 걸을 통합할 수 있는 이미지로 제의 관장하는 듯한 제사장 느낌을 내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때 입었던 베스트를 걸친 듯한 의상은 릭오웬스, 모자는 프라다 제품이라는 것.
의상에 얽힌 치밀한 콘셉트 설정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주얼리샵에서 입었던 퍼 칼라 코트와 주례 패션으로 등장한 위트 넘치는 모자가 장미희 개인 소장품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모자는 장미희가 과거 뉴욕 여행 중 구매한 프라다 컬렉션 제품으로 ‘이거를 어디다 쓸까’ 망설였는데 의상 콘셉트를 정하는 과정에서 모자를 쓰게 됐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장미희는 ‘흑기사’ 종영과 동시에 중년 로맨스를 그린 KBS2 ‘같이 살래요’에서 수제화 장인 박효섭 역을 맡은 유동근의 첫사랑 이미연으로, 장백희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인물을 연기한다. 중성적 아방가르드 코드가 많이 등장한 ‘흑기사’와 달리 ‘같이 살래요’에서는 모던 엘레강스 무드가 주를 이룬다는 조윤희 실장의 설명이 더욱 더 궁금증을 자극한다.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news@fashiopnmk.co.kr/ 사진=KBS2 ‘흑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