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해’, 102분에 담아낸 현대사회의 축소판 [씨네리뷰]
입력 2018. 04.19. 15:25:02

영화 ‘나를 기억해’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깜빡 잠이 든 새에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몸이 찍힌 영상으로 협박을 받는 여성. ‘나를 기억해’는 성범죄에 노출돼 고통 받는 여성 한서린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한서린이 범인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점점 다른 색을 입기 시작한다. 그리고 의문의 정체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나를 기억해’를 단순한 성 범죄 영화로 바라보기는 힘들어진다.

19일 개봉한 이한욱 감독의 ‘나를 기억해’는 의문의 연쇄 범죄에 휘말린 여교사 한서린과 전직 형사 오국철이 사건의 실체와 정체불명의 범인인 ‘마스터’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 영화다. 한서린 역은 배우 이유영이, 오국철 역은 김희원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나를 기억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사건은 몰래 카메라 범죄에 노출된 서린의 상황이다. 누군가 약을 타놓은 커피를 마신 서린은 잠에서 깬 후 ‘마스터’라는 의문의 존재에게 협박을 당한다. 마스터가 보낸 영상에는 잠든 채로 포박당한 자신의 몸을 캠코더로 촬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에 두려워하던 한서린은 과거 자신을 도와줬던 전직 형사 오국철을 찾아가게 되고, 두 사람은 함께 마스터를 추격한다.

한서린, 오국철과 함께 이야기를 따라가는 관객들은 보통 ‘마스터’의 존재를 힘을 가진 남성으로 상상하기 쉽지만 사건이 조금씩 해결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촉법소년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는다. 마침내 ‘마스터’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역시 충격적이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마스터를 바라보는 이유영과 김희원의 표정은 곧 관객들의 표정과도 같다. 스포일러 상 자세히 묘사할 수 없지만 이러한 장면들은 ‘나를 기억해’가 단순히 성범죄의 심각성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음을 대변한다.


최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성 범죄로 이야기를 시작한 ‘나를 기억해’는 인터넷상의 음란물 유포, 청소년 범죄, 아동학대 등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함축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건 뿐 아니라 짧은 배경으로 지나가는 장면들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화를 위해 꾸며진 장면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 이어지는 영화 속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공포감과 불편함을 안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메시지와 주제의식을 담으려 한 탓에 이들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연결돼있다는 느낌을 남기기도 한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청소년 범죄와 음란물 유포의 심각성을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중심 사건인 서린의 이야기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서린의 현재와 과거, 서린의 반 학생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혀 관객들의 이해에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나를 기억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하려 했던 성범죄 피해자들이 떳떳하지 못한 현실 역시 다른 메시지들에 가려 점점 흐릿해진다.

‘나를 기억해’는 시의성에 맞는 소재와 메시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한없이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는 최근 관객들이 원하는 재미와 다소 거리가 먼 듯 하다. 규모나 출연진의 화제성 역시 경쟁작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관객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한 방’이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김다운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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