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작’ 이성민 “자국민 사랑하는 리명운, 따스함 느꼈죠” [인터뷰]
- 입력 2018. 08.09. 17:37:53
- [시크뉴스 김지영 기자] 흔히 북한군인 혹은 고위 간부를 생각한다면 딱딱한 말투와 위원장에게만 충샹심이 가득한, 매체에서 숱하게 다뤄왔던 인물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배우 이성민이 ‘공작’에서 보인 모습은 여태껏 느끼지 못한 따스함과 울림을 선사한다.
지난 8일 개봉한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 박석영(황정민)이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성민은 극 중 북의 외화벌이를 책임지고 있는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 역을 맡았다. 날카로운 인상,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설득과 협박, 회유를 적절히 배합하는 능력까지 갖춘 강인한 인물이다. 유연한 사고와 인간적인 통 큰 호연기지로 박석영과 공동 사업을 벌인다.
‘공작’에 출연한 배우들은 북한의 실정과 1990년대 상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 북한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캐릭터에 접근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눈 이성민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다른 것을 알게 됐고, 이를 리명운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모든 것이 김정일, 김정은 위원장을 위한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사람들인가’ 등의 질문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 북한 체제에 대한 태도들은 촬영하면서 느꼈고요. 리명운이라는 사람이 북한 주민들과 자기 조국을 걱정하고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연기를 하면서도 그의 따뜻함과 국민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더라고요. 전 생각지도 못해서 ‘이런 사람이 북한에도 있냐’고 물으니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 덕분에 북한이라는 나라가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 악랄하게 자기 그릇만 생각하는 사람만 있었다면 무너졌을 거라고 봐요. 이를 리명훈을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죠.”
리명운은 실제 여러 인물들을 합쳐서 탄생했다. 처음 박석영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긴장감을 극 말미까지 이어가고 본심을 알 수 없는 인물이기에 이성민 역시 이를 가장 중점에 두고 연기했다.
“리명운의 미션은 긴장감이었어요. 박석영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리명운을 만나는 순간부터 조성되는 긴장감, 김정일(기주봉) 위원장을 만나 흑금성 사업을 서포트 하기 전까지의 긴장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사실과 본심을 감추고 있죠.”
극 중 남북 냉전시대에 박석영이 주도한 광고 사업이 안기부 핵심에 의해 물거품으로 사라진다. 이후 중단된 사업을 2005년이 돼서야 재개하고, 다시 만난 이들은 멀리서나마 반갑다는 듯 눈인사를 나누며 제스쳐를 취한다. 영화에선 설명해주지 않는 리명운의 공백을 이성민은 캐릭터 분장과 연결시켜 상상했다.
“살아남았지만 고생을 했을 거라고 봐요. 그래서 얼굴도 좀 상하게 표현을 했었고 흰머리도 있게끔 했죠. 그런 식으로 관객들이 추측할 수 있게끔 했어요. 또 그 나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비선이 있는데, 리명운은 아마 김정일의 굵은 동아줄이 아니었을까하고 상상해요. 하지만 어떠한 책임은 졌을 것 같아요.”
눈빛부터 사소한 손동작까지 많은 것이 통제 돼 있었기에 ‘공작’의 주연 배우들은 ‘구강액션’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성민은 극 대부분 함께 등장하는 황정민이 NG를 내줘 고마웠다고 말할 정도였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네 명이서 경쟁이요? 자기 거 하기에도 바빴는걸요. 처음엔 서로 힘들어하는 부분을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어느 순간 소문이 들려서 서로 마음을 열고 ‘사실 나도 그래’라고 말했었죠. 또 잘 안 돼서 괴로워하는 모습들이 이해가 가고요. 그건 네 명 다 그랬어요.
이성민은 이번 작품에서 “바닥을 쳤다” “기본이 무너져 있다고 느꼈다”고. 그러나 그의 연기엔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앞서 이성민이 중점을 뒀다고 밝힌 극적 긴장감에 관객들 역시 총과 싸움 없이도 ‘공작’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개인적인 생각이죠. 이 영화는 특히나 피할 데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쉼표 없는 악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대본에 숨 쉴 곳도 없었고 상대배우와 눈을 피할 수도, 호흡을 피할 수도 없었어요. 대화를 하면서 리듬과 템포, 장면의 에너지, 긴장감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이게 연기의 기본인데 안되서 많이 힘들었죠. 기본을 잊고 있다는 것에 부끄러웠고 많은 공부가 됐어요. 반성이 된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성민은 ‘공작’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함께하고 있는 윤종빈 감독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을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것을 도와줬다”고 말했다. 이성민이 과거 다수의 작품에서 코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윤종빈 감독은 그의 진중한 면을 잡아냈기 때문.
“‘군도’ 때도 그렇지만 윤종빈 감독에게 ‘왜 나를 캐스팅 하려고 하냐’고 물었었다. 이번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윤종빈 감독이 ‘신뢰성’ ‘얼굴’ ‘마스크가 주는 힘’ 등을 말했었다. 이 말을 듣고 ‘역시 배우라는 직업이 우리가 어릴 때 배워왔듯이, 자기를 알아가는 직업이라는 것이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이성민은 ‘공작’이 스파이 영화로서 가지는 강점에 대해 “기존의 스파이물과는 다른 한국형 스파이”라고 소개했다. 이보다 더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그동안 북쪽에서 내려오는 간첩 얘기는 많았지만 남한 사람이 북한으로 가는 영화는 ‘공작’이 처음일거에요. 무엇보다 리얼하게 스파이물을 그렸다는 것, 예술이나 인물의 재현이 가진 깊이감 등이 있고요. 워낙 여름 시장에 스펙터클한 영화가 많은데 그것들과 다르게 이런 영화도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환기시켜줄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CJ E&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