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미더머니777’ 래퍼 원썬, 짬에서 나오는 한가위 바이브 [한복인터뷰]
- 입력 2018. 09.24. 08:34:15
- [시크뉴스 이상지 기자] 한국 힙합의 살아있는 역사, 원썬을 만났다.
90년대 말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성지였던 클럽 마스터 플랜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한 1세대 래퍼 원썬. 그는 2000년 노래 ‘꼬마 달건이’로 가요계 데뷔 ‘어부사(漁夫詞)’ ‘MP Hip Hop 2002 風流(풍류) Part.1’ ‘For Whom (Limited Edition)’ ‘One’ ‘New Old School’ ‘임을 위한 행진’ 등 다수의 정규 앨범과 싱글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6년 Mnet ‘쇼미더머니 5’에 참가한 뒤 이듬해 ‘쇼미더머니 6’에서 ‘짬에서 오는 바이브’라는 ‘렛 미 두 잇 어게인(Let Me Do It Again)’ 등 희대의 유행어를 남겼다. 그리고 2018년 ‘쇼미더머니 777’을 통해 다시 한 번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추석을 맞이해 원썬과 시크뉴스 본사에서 만나 유쾌한 캐릭터에 가려졌었던 그의 진지한 음악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신의 음악을 소개해주신다면.
음악을 계속하고 있는데 일 년에 한곡 이상 꼭 발표한다. 그때 만들어 놓은 곡들 중에 발표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곡이나, 피처링 아티스트가 늘어나면서 진행이 되는 것들이다. 뭘 해야지는 아니고 계속하면서 과정 속에 있는 에피소드고 그게 쌓이면 앨범이 되는 거다.
국악으로 만든 랩이 인상적이다.
힙합에 국악을 녹여낸 시도가 2002년이 처음이었다. 황병기 선생의 ‘비단길’이라는 곡이 있다. 황병기 선생은 국악이 가진 고리타분함을 생각하지 않고 진보적으로 음악을 하신 분이다. 대중음악이나 현대 음악에 맞는 박자를 써서 국악기로 표현하는데 일가견이 있으셨던 한국 음악계의 대가다. 그분의 노래를 정식 발매하기 위해서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게 반은 국악인으로 활동을 하다가 대학에서 ‘한국 전통 음악의 이해’라는 과목의 강의를 하기도 했다.
2002년 심현보의 ‘어부사’를 현대적으로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국악 힙합’을 하는 아티스트로 유명해졌다. 국악 축제나 전주 소리 축제에도 서고. 국악을 제대로 공부해서 아는 사람이 아님에도 말이다. 많지도 않은 작업으로 한 구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케이스였는데 그때는 운이 좋았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국악계가 그만큼 절실하기도 했었다.
‘축귀’는 랩으로 굿을 하는 노래인데. 축귀 이후에는 딱히 ‘한국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노래가 없었다. 최근에 4월에 세월호 이야기를 담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를 힙합으로 만든 곡이 있다. 원작자가 그 노래로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고 관리를 받지 않고 있다. 널리 불려지길 웠했던 마음일 터다. 찾아가서 허락을 구하고 정식으로 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4월에 내고 싶었는데 5월에 5.18 광주 운동에 맞춰서 냈다. 후렴구를 썼는데 소리꾼과 함께 불렀다.
국악과 힙합은 무엇이 닮았나?
둘 다 대중문화이다. 국악의 판소리는 서민부터 궁중음악까지 다 있다. 그중에서 서민 음악에 속하는 국악은 힙합과 닮은 구석이 많다. 함께 놀고 춤사위가 벌어지는 것도 그렇고. 표현하는 방법이나 규칙이 다른 것뿐이고 함께한다는 것은 닮은 점이다. 길거리에서 펼쳐진다는 것도 그렇고. 사이퍼나 마당놀이가 다를 게 없다고 본다. 즐기고자 하는 건 하나다.
최근 빌보드에서 사랑받고 있는 방탄소년단이 국악을 접목한 ‘아이돌(IDOL)’을 발매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잘하는 거다. 음악이 강한 나라의 경우 기존의 전통음악의 사운드가 강해서 빌보트 차트에서 대히트 친 경우가 많다. 한창 빌보드 아시아권에 관심이 많았을 때 많이 썼던 소리가 중국이나 일본이었고. 인도 대중음악을 들으면 분명 인도 음악이구나 하는데, 우린 안 그렇잖나. 젊은 국악인들이 창작 국악이나 현대 음악을 이어오고 있다. 그 사람들의 이해도와 실력 그리고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트렌드에 대한 감이 맞춰지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1세대 래퍼로써 최근 힙합이 많은 사랑을 받는 것에 어떤 생각이 드나?
98년 말부터 99년까지 3년 동안 신촌 마스터플랜 언더 씬에서 매주 공연을 했다. 그때만 해도 힙합이 TV에 나오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생각보다 빨리 온 거다. 다만 염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우리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맨 처음에는 음악부터 들어온 게 아니었으니까. 음악보다 패션이 먼저 들어왔다. 그다음이 댄스였고. 심지어 힙합의 가장 기본적인 디제잉은 거의 마지막에 왔었다.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힙합이 가진 상품성에 치중되어 있어서. 힙합의 특성과 무엇인지를 모르는 채로 즐기고만 있다. 힙합의 껍데기가 반짝여서 현혹되었다는 뜻인데, 알맹이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모른다. 알맹이가 탄탄하지 않은 채로 거품이 생겨났다.
‘쇼미더머니’는 어떻게 나가게 된 건가
먹고살려고 하다 보니까 많은 일을 한다. 배달부터 인테리어 시공까지. 쉽게 말해 막노동 꾼이다. 음악을 하면서 많은 일을 했는데. 그렇게 살다보니 생활력이 강해졌다. 어디에 놔도 안 죽는다. 원래 ‘쇼미더머니 시즌1’에는 심사위원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는데 일하느라 못 했다. 그런데 ‘시즌5’ 때 디기리 때문에 어이없이 참여를 하게 됐다.
한편으로는 방송에 나가는 걸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많은 걸 느꼈다. 20년 동안 음악을 했지만 한 번도 내 음악으로 떠 본 적이 없고. 디기리는 한 때 정점을 찍었던 그룹의 래퍼였고 난 그냥 언더그라운드 찌질이였단 말이지. 자신의 자리 지키고 색깔 있는 음악을 하는, 존재의 이유나 가능성은 있어 보이는, 하지만 그냥 존재하는, 딱히 없어도 되는. 그러면서 많은 과정을 겪으면서 음악을 하고 발버둥 치고 살았다. 지금 결과적으로 저작권 협회에 등록된 제 노래가 90곡이 된다. ‘쇼미더머니’에서 그렇게 떨어지고 나서 쪽팔려서 안 봤다. 거들먹거리는데 ‘광탈’ 했던 사람. 그런데 알고 보니까 히스토리가 있고 해온 게 있는 사람. 그냥 못난 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자격이 있는 거 같단 말이지. 그래서 결과보다는 과정을 인정을 받은 케이스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케이스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홍대에서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고.
원래 마스터플랜처럼 공연 장소를 만들기 위해 2011년부터 시작을 했다. 물론 그때는 클럽이 없었다. 홍대에 있는 클럽의 사장들을 다 만나고 다니면서 내가 이런 공연을 진행해서 판을 만들고 싶은데 자리 좀 빌려줄 분 안 계시냐고 물었다. 그때 흔쾌히 하려고 하던 양반이 지금 운영하는 클럽의 전 사장님이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언더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 거기를 거쳐가고 탄생된 팀도 많다. 넉살도 거기 출신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다. 그걸 하면서 공연 안 할 때는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다. 죽도 밥도 안 되고 빛만 미친 듯이 쌓이고 온갖 대출을 다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클럽을 운영하는 이유는?
많은 클럽 사장한테 다 물어봤는데 한 군데에서만 오케이 했다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제일 확실하다. 공연 운영하면서 흑자가 난 적이 몇 번 안 된다. 1~200명이 들어찬 적이 한 손에 꼽는다. 애들이 ‘듣보’니까. 어쨌든 온라인에 치중된 음악시장에서 애들이 팔딱 팔딱 살아 숨 쉴 수 있는 건 언더그라운드 공연 판이 최고거든. 공원 보고 팬이 된 애들은 죽을 때까지 팬이다. 그런데 음원 듣고 팬 된 애들은 음원이 별로면 떠난다. 저는 라이브가 가진 힘을 안다.
힙합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뭐 딱히 없다. 어쩌다 보니 좋았고, 좋아하는 걸 좆다보니까 불 쫒는 불나방처럼 날아온 건데. 지금은 뭐 마음은 같다. 근데 계속하는 이유? 그 이유는 안 할 이유가 없어 서다.
마지막으로 추석 인사를 부탁한다. 힙합 버전으로.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즐겁게 춤사위 한판 벌일 수 있는 오늘은 즐거운 한가위.
돌덩이 백 개 보다 무거운 하나의 바위
발목에 묶여있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우리 사위
내 딸, 내 아들, 연로하신 부모님도 오늘은 모두 손잡고 춤사위
강강수월래 전 국민이 가족일세 마음만큼은 풍성한 한가위
[이상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