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데이즈’ 이나영 “기존의 휴머니즘·모성애와 달라” [인터뷰①]
입력 2018. 11.19. 16:37:12
[더셀럽 김지영 기자] 배우 이나영이 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거대한 자본을 투자한 상업영화 대신 선택한 독립영화 ‘뷰티풀 데이즈’에서 이나영은 보다 더 깊어진 내면 연기를 선보인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이나영은 6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과거와 동일한 모습이었다. 원빈과 결혼 후 좀처럼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아 의도치 않게 갖게 된 ‘신비주의’ 콘셉트를 부인하듯 취재진과의 거리감은 없었으며 영화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 속 엄마 역처럼 강단이 느껴지기도 했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뷰티풀 데이즈’는 아픈 과거를 지닌 채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자 젠첸엄마(이나영)와 14년 만에 그녀를 찾아 중국에서 온 아들 젠첸(장동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그녀의 숨겨진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북한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한국에서 정착하기까지 엄마에게 닥친 시련은 벼랑 끝에 내몰리는 것과 같았고 그때마다 엄마는 좌절하지 않았다. 비록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에게 팔려가듯 시집을 가도, 브로커에게 잡혀 유흥가에서 일을 해도, 쫓기든 한국으로 가 녹록치 않은 삶을 살고 있음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14년 만에 찾아온 아들 젠첸을 봐도 반갑거나 슬프거나 하는 감정을 표하지 않는다. 기존의 작품들에서 봐왔던 모성애와는 결을 달리하는 부분이다.

“영화에 참여하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구성도 좋았고 이제까지 봐왔던 모성애도 다른 관점인 것 같았고요. 감독님이 궁금해서 감독님의 전작들을 찾아보고 만나 감독님의 생각, 구체적인 계획들을 여쭤봤어요. 한 우물만 파셨더라고요.(웃음)”

분단, 정체성의 혼란, 경계의 선 사람들을 주로 이야기했던 윤재호 감독의 최근 다큐멘터리 개봉작 ‘마담B’는 ‘뷰티풀 데이즈’의 근간이 된 작품이다. 중국에서 우연히 만난 마담B의 삶에 매료돼 이나영 주연인 영화가 탄생했다.

‘뷰티풀 데이즈’는 아들 젠첸의 시선을 따라가면서도 엄마의 10대, 20대, 그리고 현재의 30대를 담았다.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고 한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젠첸의 손에 들어오게 된 엄마의 일기장을 접하면서 역순으로 이어진다. 이나영은 때 묻지 않은 10대 소녀, 마약과 술에 찌들어버린 20대, 이른 나이에 산전수전을 겪고 모든 것을 통달한 것만 같은 30대를 표현해냈다.

“30대인 현재의 콘셉트를 잡는 게 어려웠어요. 신경을 많이 썼죠. 10대와 20대는 상황에 닥친 감정이었지만 30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10대였을 땐 소녀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과정들을 겪잖아요. 클럽과 마약, 살인 등을 한 20대 기간을 동물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재는 오히려 이런 것들을 겪어 감정 표현을 덜어 내야할 것 같았어요. 엄마는 어울리는 감정 표현이 없었어요.”

젠첸과 엄마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엄마는 젠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자신을 찾아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여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고 마치 어색한 이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 듯 행동한다. 시나리오 상에선 젠첸의 어깨를 밀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었지만 감정을 지운 것이다.

“어떠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현재를 연기할 땐 엄마의 과거 서사를 잊어버리면 안 돼서 예전 일들이 담긴 대본을 계속 봤었어요. ‘이런 여성이었지’ ‘이런 걸 겪었었지’ 하면서 태도와 몸짓들을 생각을 하고 연기를 했어요.”



‘뷰티풀 데이즈’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눈다면 엄마의 일기장이 매개체 역할을 한다.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한국으로 넘어간 엄마에게 애증을 느끼고 있었던 젠첸은 자서전 혹은 회고록과 같은 일기장을 읽음으로써 혼란을 겪는다. 관객 또한 역순으로 진행되는 엄마의 과거 서사를 통해 연민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젠첸이 엄마의 일기장을 보면서 사건이 역순으로 전개되는 것은 감독님이 주안점을 두신 부분이에요. 하지만 이건 연출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고 저는 그 안에 들어가야 하니까 감정적인 것들을 많이 생각했죠. 일기장 주는 방법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떨어트릴지 어떻게 할지 등등”

엄마는 젠첸이 떠나는 날 근사한 양복을 맞춰주고 택시를 태워 공항으로 보낸다. 그 사이 양복이 담긴 종이가방에 몰래 자신의 일기장을 넣는다. 젠첸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가방에 넣은 엄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어미사자가 아기 사자를 낭떠러지 아래로 떠민다고 하잖아요.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엄마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너의 선택’이라는 것 같아요. 불편한 진실이지만 알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어려운 결정 끝에 줬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보고 아들이 좀 더 강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요.”

이나영은 라운드 인터뷰로 진행된 취재진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큰 눈동자에 진심을 담아 얘기하는 듯 했다. 그의 이런 진심어린 눈동자는 연기를 할 때도 빛이 났다. 단념, 증오, 애정 등의 감정들을 많은 대사 없이 눈동자로만 표현한다.

“누구랑 얘기할 때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려 해요. 배우들은 눈으로 연기해야하는 게 많은데 눈동자에 많이 담아내려면 일상생활도 중요할 것이고 평소에 하는 생각들도 눈동자에 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이번 작품은 엄마가 감정을 내야할 건 눈동자밖에 없어서 눈동자로 많이 표현하고 싶었죠. 감독님과 눈동자 연기를 상의하진 않았어요. 더 보여 달라 할까 봐요.(웃음)”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본인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사건들로 인해 힘겹게 살 수 밖에 없는 엄마의 운명을 담은 분명 ‘뷰티풀 데이즈’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아름다운 시절’을 살고 싶었던 엄마의 아름답지 못한 인생을 그렸지만 영화는 극의 말미 열린 결말로 밝은 미래를 예상케 하고 관객을 형용할 수 없는 여운에 빠트린다.

“관객에겐 어려운 영화로 비춰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우려가 있어요. 단어도 세고요. 하지만 어렵지 않게 잘 따라갈 수 있게 볼 수 있는 영화에, 가족 얘기를 하지만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영화라 오히려 쉽게 봐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담가지지 마시고 편하게 즐겨주셨으면 해요.”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이든나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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