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재 "'사바하' 박목사, 강하지 않아 신선…장재현 감독 잘 믿었다" [인터뷰]
- 입력 2019. 02.25. 12:21:11
- [더셀럽 안예랑 기자] ‘신과 함께’ ‘관상’ ‘신세계’ 등 다수의 작품에서 강렬한 캐릭터를 소화했던 이정재가 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캐릭터로 돌아왔다. 일상적인 캐릭터에 갈증을 느낄 때쯤 찾아온 ‘사바하’를 통해 이정재는 색다른 캐릭터, 장르에 도전했다. 장르, 캐릭터부터 연기까지 어느 한 가지만 고집하지 않는 이정재의 모습에서 ‘콰트로 천만 배우’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최근 서울시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에 출연한 배우 이정재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바하’는 신흥 종교 사슴동산의 비리를 쫓던 박목사(이정재)가 의문의 인물과 사건들과 만나 거대한 진실에 다가서는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이정재는 신흥 종교의 비리를 파헤치는 목사 박웅재로 분했다. 미스터리한 구조 속에서 이야기를 쫓는 박목사는 이전까지 이정재가 연기했던 강렬한 캐릭터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서사를 풀어 나가는 박목사는 캐릭터가 아닌 서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연기자면 이런 캐릭터를 맡아서 할 수도 있고 저런 캐릭터를 맡아서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제가 캐릭터가 보이게 되는 역할을 많이 했다. 그래서 저한테는 오히려 박목사의 캐릭터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이 영화에서 제 역할은 미스터리 구조의 ‘알까 모를까’ 하는 이야기를 잘 설명하는 역할이었다”
종교문제 연구소를 운영하며 종교인의 비리를 캐고 다니는 박목사는 언뜻 세속적인 인물로 비춰진다. 후원을 요구하고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다. 그의 세속적인 모습은 신을 향한 박목사의 반항심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개인적인 상처를 겪은 후 박목사는 신의 존재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신의 존재와 믿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 남자는 믿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있다. 나는 하느님을 믿었는데 하느님은 나한테 왜 시련을 주셨나. 신이라는 존재는 있는 것이냐. 흔들리면서 진짜를 보기 위해서 가짜를 찾아 나서야겠다고 감독님과 얘기를 했었다. 그래서 아픔과 고난이 있던 정나한(박정민)이라는 인물을 만났을 때 훨씬 더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싶어 한다”
이정재는 극에서 메시지를 던지는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주제 의식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직접적으로 주제가 드러나면 보시는 분들이 거부감을 느끼실 것 같았다”며 “조금 더 진중하게 한다든가, 최대한 남의 얘기처럼 한다든가, 대사의 톤은 무엇일까 시도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고민 끝에 이정재가 선택한 결론은 장재현 감독의 톤이었다. 27년차 배우에게도 미스터리 스릴러는 낯선 장르였기에 이정재는 자신의 톤을 고집하기 보다는 감독이 바라는 캐릭터에 집중했다. 이정재는 “아무리 연기를 오래 했지만 제 톤을 또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며 작품에 들어갈 때 연기 레슨을 받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에서 그의 연기 선생님은 장재현 감독이었다.
“박목사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러 다니는 사람이다. 때문에 만나서 얘기할 때 직접적으로 ‘배고파요?’라고 안 하고 돌려서 얘기하는 습성이 있을 것이라는 설정에서 시작해서 반응을 체크하려는 눈빛 등을 생각했다. 감독님만의 독특한 말투가 있어서 내 거를 꺼내서 쓰는 것 보다 감독님 거를 받아서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겠구나 싶었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감독님이 다 찍고 감독님이 연기한 포인트를 잡아냈다. 이번에는 다른 연기 지도 선생님 보다는 감독님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지점과 색을 배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연기를 고집하지 않는 이정재의 자세는 작품의 장르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정재가 처음으로 만난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는 ‘사바하’를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처음 도전하는 장르에서 이정재를 고민하게 만든 지점은 긴장감이었다.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감정도, 단서도, 상황에 대한 이해도 쉽게 드러낼 수 없었다. 이는 작품 전체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다.
“1번부터 10번까지 있는 단서들을 몇 번부터 몇 번까지 보여줄 것인가. 나머지 단서는 언제 보여줄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편집 때도 시나리오대로 찍은 분량의 순서를 변형 시킨 것도 그러한 고민 때문이었다. 영화를 만든 저희 입장에서는 ‘이 정도는 관객들이 아시겠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대중적인 관객 분들이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조금 더 보여드리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다”
미스터리와 함께 이정재는 극의 웃음을 담당하기도 했다. 장르적 특성상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영화 전체에 걸쳐서 그려진다. 박목사는 단서를 쫓고 그 단서를 토대로 ‘그것’과 정나한, 사슴동산에 얽힌 비밀에 다가선다. 계속되는 추리는 피로감을 줄수 있으나 ‘사바하’에는 적재적소에 웃음이 등장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이정재는 장재현 감독의 웃음 코드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시나리오로 봤을 때는 전혀 안 웃겨서 무슨 의도로 넣은 건가 그랬는데 개그코드더라”며 “이 아저씨하고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나는 하나도 안 웃겼다”고 솔직한 감상평을 전했다. 장재현 감독뿐만 아니라 이정재도 웃음을 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첫 촬영 때 계란 맞는 장면을 찍었다. 재미적인 요소를 주기 위해 다음에는 넘어지는 걸 찍어야겠다 싶어서 넘어졌는데 반응이 좋았다. ‘박목사는 허당기가 있는 건가’ 생각해서 ‘다음에 또 넘어질 수 있는 장면이 뭐가 있을까’ 세 군데 정도를 설정해서 넘어졌고 다 찍었다. 그런데 스태프 분들이 상의를 해서 마지막 편집본에서는 싹 다 뺐더라. 스태프 분들이 이정재의 이런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웃음)”
웃음뿐만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이정재는 많은 고민을 했다. 영화는 날리는 눈을 배경으로 이정재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닫는다. 원래 없던 장면이었으나 영화를 마무리 짓는 포인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들어간 장면이었다. 이정재가 지닌 목소리의 매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었으나 이정재는 아쉬움을 표했다.
“주제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톤이어서는 안 되고 힘이 없으면 안 됐다. 어떻게 보면 감정적이다. 후반 20분의 감정이 엔딩까지 간다. 녹음실에서 녹음을 할 때는 꽤 감정적으로 대사를 하게 되더라. 그게 너무 촌스러운 거다. 목소리니 톤이니 뉘앙스니 다 싫은 거다. 대사 하는 게 그래서 몇 번을 중단했다. 뭘 해도 촌스러운 거다. 됐다고 하는데 왜 자꾸 다시 하냐고 성화였다. 아무래도 저도 이 영화를 오래 촬영했고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오랜 시간 기다려왔기 때문에 감정이 들어갔었던 것 같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장재현 감독을 믿고 도전한 이정재의 첫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낸 듯 했다. 이정재는 "시나리오를 봤을 때보다도 영화가 훨씬 더 좋았던 것 같다"며 작품의 결과물과 감독의 극본에 만족감을 표했다.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라는 게 후반 작업에서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작업이 중요하구나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 어쨌든 감독님 믿고 한 게 잘 했구나 싶다. 영화가 굉장히 자극적인 무언가가 있는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시겠지만 사실상 보면 정나한이라는 캐릭터가 안쓰럽고 짠하게 느껴지고 그런 부분이 잘 살려 있다. 감독님이 이야기 구조를 잘 짰구나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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