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의 반응과 초심 그리고 ‘우상’ [인터뷰]
입력 2019. 03.19. 16:13:27
[더셀럽 김지영 기자] 배우 한석규는 영화 ‘우상’의 시나리오를 처음 접하고 이수진 감독에게 출연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충무로에 25년간 몸담고 있는 그에게 연기는 곧 반응이었고 ‘우상’이 하고자 하는 말 역시 이와 동일했다. 한석규에겐 ‘우상’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만난 한석규는 연속된 인터뷰 일정으로 지칠 법도 하지만 전혀 그런 내색을 비추지 않았다. 명사의 강연이 진행되는 듯 자연스럽게 “오늘 인터뷰가 많아 말을 많이 했다”를 시작으로 ‘우상’부터 연기 소신까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한석규는 ‘우상’을 처음 보고 ‘독전’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영화의 강렬한 엔딩은 시나리오 상에서도 강력하게 작용했고 이는 한석규의 마음을 관통했다. 한석규가 ‘우상’을 접하고 처음 반응한 것이다.

“‘한공주’가 가지고 있는 의도가 참 괜찮았지 않나. 겸손하게 그리고 어려운 것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치열하게 도전한다. 신인감독들의 장점이다. 모든 것을 다 걸고 전부를 걸어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 저도 신인 때 그런 마음으로 연기에 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제가 신인 감독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 인물의 맹목적인 믿음과 욕망을 쫓아가는 과정, 그 안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일들을 풀어나가는 ‘우상’에서 한석규가 맡은 구명회는 단연 핵심적인 인물. 중의대 출신인 구명회는 한국에서 한의사 활동을 하다 도의원까지 하게 된다.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날 직면하게 된 아들의 뺑소니사고는 그의 정치활동에 제약을 거는 듯하다.

그때부터 구명회는 반응하기 시작한다. 뉘우침이 없는 아들에겐 사건을 축소하려는 ‘반응’을 시작으로 매 순간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다.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맹목적인 우상을 쫓기 위해서 하는 선택들이지만 결국은 아픈 반응이었다.

이는 한석규가 구명회에 끌린 이유가 됐다. “죽는 한이 있어도 살아남는 인물”을 하고 싶었다고 밝힌 그에게 구명회라는 캐릭터는 제격이었다. 더불어 이수진 감독이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건 사고가 있는데 그런 일들이 왜 계속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이게 영화의 출발선”이라고 밝힌 기획 의도처럼 이것 또한 반응인 것이다.

“이수진 감독의 기획 의도는 건강한 반응이고 좋은 반응이다. 새로운 한국 영화라고 생각했다. ‘한공주’로 고생하면서 영화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우상’의 시나리오를 보니까 ‘이 사람 참 어렵게 작업하네’ 싶었다.(웃음) 하지만 겸손하다는 것과 안주하지 않고 도전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해야 되고 들어봄직한 이야기였다.”



영화의 정식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시사회에서 이수진 감독이 숨겨놓은 메타포들로 인해 영화가 어렵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한석규는 이와 같은 평들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이수진 감독이 넘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 또한 창자자의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우상’이 스토리로 보면 워낙 치밀하기 때문에 어려운 느낌이 든다. 저도 ‘왜 저렇게 넘치는 것을 싫어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게 반응이다. 창작자의 반응이기 때문에 과한 표현들이 싫은 것이다. 사실 저도 제 연기가 제일 꼴 보기 싫을 때가 달 떠있는 나의 연기를 볼 때 아주 싫다. 그런 과한 표현을 저도 싫어하니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우상’은 그런 과정들의 작업이었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상’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 내면에 짙게 깔려 있는 욕심을 정치인, 서민,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 말한다. 이는 한석규가 ‘우상’과 이수진 감독을 칭찬하고 “새로운 영화”라고 말한 이유다.

“지금 대한민국의 인간, 사람을 얘기하는 영화가 ‘우상’이다. 그래서 영화가 새롭지는 않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우리의 잘못된 모습들을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지 않나. ‘우상’은 진솔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이수진 감독이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설경구, 천우희와 함께 연기해서도 좋았다. 연기는 액션과 리액션이니까. 제가 반응한다고 하지 않았나. 연기는 반응할 뿐이다. 어떻게 하면 생생하게 반응하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한석규의 배우 인생에도 고비는 있었다. 인터뷰 줄곧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던 한석규는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가진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당시 그는 다시 역으로 생각해 ‘나는 왜 그런 반응을 했나’로 돌아갔다. 그리고 초심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연륜이 있고 경력이 있다고 완성도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 처음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처음 했던 게 미완성이고 치기어린 게 아니다. ‘초발심에 벌써 깨달음이 왔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만큼 초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연기를 다시 생각했다. 원래 갖고 있는 것이 퇴화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도 연기하기 위해 좋은 재료를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상’에서 구명회는 죽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인물이며 가장 비겁한 인물이다. 이번 작품에서 구명회의 지질함, 더러움을 여실히 드러낸 한석규는 다음 작품에선 구명회와 전혀 반대되는 인물을 맡아보고 싶다고 욕심을 드러냈다.

“기회가 된다면 구명회와 반대인 죽고 싶지만 영원히 사는 인물을 하고 싶다. 실존 인물이다. 저는 기회가 되면 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하고 기다린다. 구명회가 왜 그런 반응을 했는지 이제야 알게 된 것처럼 완전 반대가 되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의 위대함을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구명회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최련화(천우희)까지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 오는 20일 개봉한다.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CGV아트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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