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설경구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아서 출연 결심” [인터뷰]
입력 2019. 03.19. 21:03:00
[더셀럽 김지영 기자]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맞는 게 일반적인 영화의 서사, 캐릭터의 감정선이다. 그러나 영화 ‘우상’ 속 설경구는 위기와 절정을 오가고 혼자만의 뉘우침이 있을 뿐이다.

극 중 유중식(설경구)은 철물점을 운영하며 정신지체를 가진 아들 부남과 성을 쌓은 듯 살고 있는 소시민적 인물이다. 부남이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엉겨 붙는 성욕을 대신 풀어주기도 하고 마사지샵에서 근무하는 조선족 련화(천우희)와 짝을 맺어줄 만큼 아들을 향한 사랑은 유별나다.

유중식은 영화 초반부터 위기를 맞이한다. 그토록 끔찍하게 여겨온 부남이 신혼여행을 간 사이 교통사고를 당해 쓸쓸한 부검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잠시, 부남의 사고와 얽혀있는 구명회(한석규), 갑자기 사라진 련화를 찾기 나선다.

유중식 역을 제안 받고 시나리오를 읽어본 설경구는 처음부터 캐릭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런 선택을 해서 계속해서 위기에 직면하는 것인지 답답함이 몰려왔고 도리어 이는 영화를 하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셀럽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설경구를 만나 ‘우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유중식이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역으로 그것 때문에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 배우로서 욕심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사실 ‘우상’은 배우가 연기를 잘 할 수 있게 떠먹여주는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한 인물이지만 설경구는 유중식으로 분해가면서 그를 찬찬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욕심을 내고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들이 이해가 됐다. 더불어 이는 설경구가 영화 촬영 내내 몰입을 최고도로 끌고 간 이유였다.

“유중식의 이름 자체가 조식, 중식, 석식 할 때의 중식이다. 아침은 건너뛰고 바쁜 일상을 살면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는 중식인 것이다. 그래서 유중식은 숨을 헐떡이는 것으로 시작해 부남이가 없어지고 난 뒤 더 헐떡인다.”

유중식은 ‘아들로 추정되는 사람이 사망했으니 와서 확인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황급히 병원으로 향하는 것에서부터 매 순간마다 다급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무엇 하나 유중식의 힘으로 제대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럴 때마다 유중식의 순간적인 감정들에선 성숙한 어른의 모습보다는 정신지체인 아들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한다.

“처음에 부남의 시체를 확인한 후 화를 내는 장면,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 모두 부남으로 비춰지길 바랐다. 아들이 장애가 있기 때문에 중식에게 부남의 모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중식과 부남은 견고한 성을 쌓은 듯 둘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죽음을 쫓던 유중식이 또 다른 사건에 직면하게 된다. 부남과 반강제로 결혼을 시켰던 련화가 임신을 하고 있었고 이는 곧 유중식의 핏줄을 뜻했다. 이때부터 유중식의 노선은 이전과 달리한다.

“유중식은 잉태하고 있는 련화 조차도 부남이 애로 생각하고 있고, 나만 속이면 내 아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모른다. 그러면서 유중식은 파국으로 치 닿게 되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여러 가지 선택사항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 하나뿐이다. 그것에도 답답함을 느끼긴 했다.”

‘부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것’에 남을 속이고 스스로도 간과하고 간다면 내 핏줄이 된다는 말은 영화를 보지 않고서라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는 유중식 아들의 이름이 부남인 이유와 맞닿아있다.

“유부남. 아들이 유부남이 됐으면 해서 지은 이름이다. 보통은 흔한 이야기지 않나. 그런데 부남에겐 누군가와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장애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중식은 자신의 핏줄을 갖고 싶었던 것이 본심이다. 그래서 억지로 련화를 엮어 놓지만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자신의 핏줄을 갈망했던 유중식은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해 비로소 무너진다. 구명회와 련화가 영화의 말미까지 계속해서 뜨겁게 폭주하는 것과 달리 유중식은 서서히 식어간다.

“가장 뜨겁게 시작해서 가장 차갑게 끝나는 인물이 유중식이다. 세 인물 중에서 그래도 깨우친 인물은 중식이 아닐까 싶다. 저는 영화를 하면서 ‘몹쓸 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좀 더 확대하면 저도 몹쓸 병에 걸려있을 것이고 다들 그럴 것이다. 마음의 병이든, 외상이든 걸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맹목적인 믿음과 신념을 이야기하는 ‘우상’의 의도를 설경구는 정확히 간파했다. 그리고 다채로운 해석이 나오는 ‘우상’의 모든 메시지들을 다 인정하기로 했다며 “다 맞는 말”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사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우상도 실체가 없는 것 아니냐. 교육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구명회의 마지막 방언 연설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다. 그런데 관객들은 아주 잘 듣고 있다. 믿음이 강해지면 눈과 귀를 막는다. 그런 관점에서의 우상이라고 생각한다. 우상에 대한 맹목적인 세 사람들이 우상을 받드는 게 아니고 맹목적으로 쫓는다고도 본다. 사실 이 영화는 틀린 게 없다. 각자 생각한대로가 맞다.(웃음)”

유중식이 아닌 설경구에게 우상은 무엇일까. 설경구는 잠시 골똘히 생각한 후 “맹목적인 것은 아니지만 연기가 그런 것 같다”며 연기에 대한 소신을 펼쳤다.

“맹목적이면 완성이 돼야 하는데 연기에 완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캐릭터에 조금씩 다가가려고 하는 건데 그렇다고 해서 완성이 된, 연기로 완성된 것은 없다고 본다. ‘캐릭터 자체로 완성했다’라는 말에 100% 완성하는 배우가 있을까. 집착, 집요해야하고 맹목적일 수도 있지만 그게 연기인 것 같다. 계속 고민하는데 답은 모르겠고. 그게 맹목적인 것 아니냐. 사실 정말 모르겠다. 나이먹으면 나아져야 하는데 더 모르겠다. 오히려 멋모르고 했을 때가 편했을 때인 것 같다. 지금도 멋모르긴 하다.(웃음)”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구명회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최련화(천우희)까지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 오는 20일 개봉한다.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CGV아트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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