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 쉽게 풀어낸 '돈'의 맛, 긴장감이 아쉽다
입력 2019. 03.20. 09:14:48
[더셀럽 안예랑 기자] 한 순간에 7억을 손에 쥐었지만 서울에 집 한 채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내 실망하는 등장인물, 그 어떤 비유보다 현실적이고 쉽다. '돈'은 어렵기만 한 금융의 세계를 쉽게 풀어내며 유쾌한 오락 영화를 완성했다. 그러나 쉬운 구조는 영화적 긴장감을 반감시키는 양날의 검이 됐다.

20일 개봉을 알린 영화 ‘돈’은 오직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 하나만으로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한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이 전설적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난 뒤 위험한 작전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담았다.

조일현은 주식 종목 코드를 모두 외울 정도의 열정으로 신입 주식 브로커가 된다. 그러나 인맥, 학벌, 외모 뭐 하나 특출나지 않은 그에게 주식브로커의 일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래서 조일현의 머리 위에는 항상 ‘0’이라는 숫자가 떠있다. 실적 제로, 수수료 제로의 삶. 여기에 매수와 매도를 헷갈리는 기본적인 실수로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궁지에 몰린 조일현은 결국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번호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조일현이 해야 하는 일은 단 하나. 때에 맞춰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화 속 인물이 시키는 대로 매수와 매도를 이행하면 끝. 그의 엔터 한 번, 클릭 한 번에 작전의 성공이 달려있다.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이 조일현에게 몰리고 조일현의 클릭과 엔터 소리가 화면을 채우는 순간 ‘돈’의 긴장감이 살아난다.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는 조일현의 손가락이 마치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되는 냥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의 손짓 한 번에 수백억이 오가고 그의 실적이 전광판에 숫자로 뜨는 순간은 쾌감을 선사한다.

이처럼 영화는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주식 시장을 조일현의 클릭과 전광판 속 숫자로 단순하게 풀어냈다.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돈의 액수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작전을 통해 관객들은 쉽게 ‘돈’을 쫓아갈 수 있다. 여기에 돈의 맛을 알아가는 조일현의 일상 속 모습을 적당한 긴장감과 유쾌함으로 풀어내며 오락 영화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초반의 속도감 있는 전개를 지나면서 영화는 돈을 통해 변하는 조일현의 모습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범죄의 냄새를 맡은 금융감독원의 수석검사역 ‘사냥개’ 한지철(조우진)은 느긋하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조일현을 압박한다. 한지철이 범죄의 실마리에 가까워지는 동안 조일현은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키운다. 불안과 욕망이 고조되면서 그는 점차 실경질적으로 변한다. 초반의 열정과 웃음이 사라진 채 날카로움만 남는다. 그런 조일현의 모습은 돈이 사람 위에 군림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며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무엇보다 류준열은 돈에 대한 욕망에 눈을 뜬 뒤 극적인 변화를 겪는 조일현의 모습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단조로운 장면에서도 류준열의 눈이 빛을 발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67회차 중 60회차에 출연했다는 류준열은 영화의 기승전결을 이끌어 나가며 훌륭한 원맨쇼를 보여준다.

다만 '돈'이 조일현의 변화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영화가 지닌 긴장감이 옅어진다. 초반 김장감을 고조시켰던 작전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이를 대체할 번호표, 조일현, 한지철의 대립은 생략되고 압축된 서사 안에서 다뤄지며 긴장감을 채우지 못한다.

이에 더해 영화는 주식 시장이라는 배경에서 기대되는 치열한 두뇌 싸움도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범죄의 이야기는 영화 속 주식 시장 만큼이나 단조로운 구조로 다뤄진다. 번호표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조일현, 상황이 아닌 인물들의 서술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번호표의 비범함, 과정이 생략된 작전 설계가 그렇다. 서로를 속고 속이는 긴장감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돈' 속 범죄는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돈’은 전국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안예랑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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